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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호텔방, 세 개의 살인사건

문화포털 기자단 2015-08-10
하나의 호텔방, 세 개의 살인사건

하나의 호텔방, 세 개의 살인사건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

 

 

1934년 시카고. 이곳에는 렉싱턴이라는 이름의 호텔방에 살고 있는 닉 니티와 말린 부부가 있습니다. 닉에 비해 어리고 아름다운 말린은 자유롭게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데도 갇혀 사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그것도 조직에서 보스의 뒤를 잇는 부두목이기 때문에 언제나 몸을 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인 앞에선 한없이 다정하고 그녀를 위하는 남자 닉이지만, 호텔 방 밖으로 나가면 그 누구에든에게라도 총을 쏠 수 있는 남편 닉 니티. 그 때문에 부인은 항상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놀랍게도 말린이 느끼는 답답함과 두려움은 이 연극을 보는 관객들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관객들 역시 호텔 방 안에 갇혀있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연극을 보기 위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호텔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극장에 들어서면 자신의 좌석이 무대에서 50센티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그야말로 코앞에서 관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싸우는 장면에서는 까딱하다가는 관객들의 무릎 위로 배우들이 넘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 도면 ⓒ Story P
 

 

이 연극이 특별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연극의 제목인 <카포네 트릴로지>는 카포네라는 인물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트릴로지, 즉 3부작이라는 의미입니다. 3개의 이야기는 렉싱턴 호텔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지만 사건의 발생 년도는 1923년, 1934년, 1943년으로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한 개의 사건 당 한 개의 연극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3부작 이야기를 전부 보려면 70분씩 세 번의 연극을 관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연극에서는, 극의 흐름에 걸맞은 장소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의 막이 끝날 때마다 세트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각 사건 별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사건의 장소가 같은 호텔이라는 점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세 종류의 연극 전체에 등장하는 배우는 올드맨, 영맨, 레이디 이렇게 세 배우뿐입니다. 어떤 연극에서는 한 명의 역할을 했다가, 다른 연극에서는 한 명이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세 배우들의 연기 합은 보는 내내 관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조직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는 닉 니티 ⓒ Story P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3부작마다 소제목이 존재하는데요. 이 연극의 소제목은 ‘루시퍼’, 즉 악마입니다. 주인공 닉 니티는 부인 말린과 함께 소박하고 행복하게 조직을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싶지만, 사회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게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와 대립하는 인물은 사랑하는 말린의 친척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칠 수도 없습니다. 말린 또한 범죄의 도시 시카고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남편 닉은 자신의 직업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건만 잘 처리하면 자신의 조직도, 말린과의 행복한 삶도 곧 눈앞에 펼쳐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연극은 주인공인 닉의 심경 변화에 따른 행동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닉이 말린의 수호천사에서 루시퍼로 변모하게 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롤라킨 앞에 갑자기 나타난 광대들 ⓒ Story P

 

 

두 번째 연극의 소제목은 ‘로키’입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롤라킨이라는 여자인데요. 다음 날 있을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 묵게 된 호텔방에서 잠을 자다가 깨보니 두 명의 광대로부터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광대들의 시달림에 지쳐 그녀는 자신의 직업인 쇼걸처럼 하나의 쇼를 시작하게 되고, 그 이후로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과연 롤라킨은, 사람을 죽인 진짜 살인자인 걸까요?




 

복수를 꿈꾸는 빈디치 ⓒ Story P

 

 

마지막 연극의 소제목은 ‘빈디치’입니다. 주인공 빈디치는 앞서 말한 두 연극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묵고 있는 렉싱턴 호텔에서 어떤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복수를 꾸미고 있는 빈디치. 과연 이 복수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세 가지 연극의 장르는 모두 다릅니다. 첫 번째 이야기 ‘루시퍼’는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서스펜스, 두 번째 이야기 ‘로키’는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코미디, 세 번째 이야기 ‘빈디치’는 눈뜨고 보기 힘든 잔인한 신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장르입니다. 호텔방이라는 배경과 연기하는 배우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각 연극을 연달아보면 마치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탁월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신기했던 사실은 세트와 소품에 변화가 없는 똑같은 호텔방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연극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따라 그 호텔방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루시퍼’에서는 마치 관속에 누운 것처럼 답답한 느낌이 드는가 하면, ‘로키’에서는 관객이 드나드는 출입구이기도 한 호텔방 문을 열고 나가면 드넓은 복도가 나타나고, 창문을 열면 페스티벌이 열리는 떠들썩한 시카고의 밤이 펼쳐질 것 같은 화려함이 느껴집니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포스터 ⓒ Story P

 


연극이 끝나고 나면 무대의 주요 소품인 침대를 지나서 출구로 나가게 되는데요. 침대 옆에 공간이 매우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좁은 곳에서 어쩜 그렇게 폼나는 액션과 섬세한 감정연기, 그리고 웃기는 연기까지 할 수 있을까 놀라웠습니다. 몇 마디 언급되는 문장을 제외하고는 세 가지 연극의 접점이 없어 어느 한 가지 연극만 보아도 무방 하지만 되도록이면 세 연극을 모두 보면서 각각의 연극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선사하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연극을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장마가 지나고 찾아오기 시작한 더위. 이번 주말에는 대학로에 있는 렉싱턴 호텔에 갇혀서 색다른 피서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요?



* 공연 안내
- 공연명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 기간 : 2015년 7월 14일(화) ~ 9월 29일(화)
- 제작 : ㈜아이엠컬쳐
- 문의 : 02-541-2929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김현정(글) / 정미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