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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느끼는 따뜻한 바람 [어둠 속의 대화]

문화포털 기자단 2015-03-31
어둠 속에서 느끼는 따뜻한 바람 [어둠 속의 대화]

어둠 속에서 느끼는 따뜻한 바람
[어둠 속의 대화]


차가운 바람 사이를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는 봄 햇살 덕에 사람들의 옷가지도, 발걸음도 모두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하늘 아래 가득 퍼지면 바야흐로 또다시 봄이 찾아옵니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나들이’일 것입니다. 봄기운에 피어난 꽃과 함께 하는 꽃놀이도 좋고, 산으로 강으로 여유롭게 떠나는 소풍 역시 봄이 오면 어김없이 생각 나는 반가운 이름들입니다. 또한 겨우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나서는 외출에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라면 매일이 더없이 멋진 하루로 변신하는데, 이렇게 봄이 오면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꽃들을 만나러, 피어나는 새싹으로 푸르러지는 봄을 보러 문을 나섭니다. 

하지만 만약에, 봄나들이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눈’을 감아버리게 된다면 어떨까요? 아마 온 세상이 깜깜한 중에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여흥은 거의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팡팡 피어나는 옅은 분홍색 벚꽃도 볼 수 없고,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도, 돋아나는 새파랗고 어린 새싹으로 푸르러진 들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봄을 ‘보기 위한’ 사람들에게 이런 나들이는 상상조차 못할 일입니다. 마치 앙금 없는 팥빵과도 같은 ‘눈을 감은’ 나들이. 과연 소용없는 헛걸음인 것일까요?


눈을 감은 나들이라면 자칫 정말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바깥 걸음이 되겠지만, 오늘 소개할 전시는 눈을 감아야만 눈을 뜨는 것 이상으로 값지고 예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보는’ 것보다 더욱 많은 감정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둠 속의 대화] 포스터 ⓒ[어둠 속의 대화] 공식 홈페이지



오늘 소개할 [어둠 속의 대화]전은 1988년 독일을 시작으로 30개국 130여 개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전시이며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1월,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상설전시장으로서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신촌에서 그 문을 열었으나, 현재는 북촌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는 수많은 관람객과 전시에 대한 호평을 받으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체험전시의 일종으로 전시물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을 전시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전시는 실제로 100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들어오는 대로 모든 사람의 입장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수의 관람객을 받아 진행하기 때문에 사전예약이 꼭 필요한 전시입니다. 예약한 시간 15분 전에 도착하여 어둠 속으로의 여행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나와 함께 전시를 체험할 사람들과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둘씩 짝을 지어 서로 의지하고 버팀목이 되어 걷기 때문에, ‘내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밖에서 본 [어둠 속의 대화] 건물 ⓒ 문화포털 기자단 정종화


[어둠 속의 대화]는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는 길 역시 즐거운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3호선 안국역에서부터 한옥마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좁은 골목길을 사뿐히 넘나드는  봄기운을 만끽하며 산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시를 함께 할 사람들과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꽃집, 그리고 TV에 심심찮게 나오는 맛집들로 가득한 골목을 가볍게 즐기다 보면 어느새 깔끔하고도 단정한 분위기를 뽐내며 앉아있는 전시장에 도착해있습니다. 



예약을 확인하고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프론트와 로커 ⓒ 문화포털 기자단 정종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로비와, 들어가기 전 온전히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휴대폰과 반짝이는 귀중품 등의 소지품을 보관하는 로커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음에 있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함께 온 사람들과 재잘대는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나 역시 새삼 들뜨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기 중인 사람들이 모이는 의자와 완전한 어둠 속으로 가기 위한 엘리베이터 ⓒ 문화포털 기자단 정종화


몇몇 의자들에서 같은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들어갈 채비가 되면,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의 좁은 통로에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어둠으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땅을 짚을 지팡이를 건네주지만 앞사람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용도일 뿐, 방향과 균형은 오로지 옆에서 나와 손을 잡고 나아가는 옆 사람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둠으로 들어갈 준비를 모두 끝마치게 되면, 생면부지인 몇몇 사람들과 지금 내 옆에서 나의 지팡이가 되어줄 사람이 어둠 속의 생경한 감각으로의 나들이를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는 것이 역시 나을 것 같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전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은 모두 똑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자 다른 감각, 상상, 회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사람조차 나와는 전혀 다른 것을 전해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때문에 곤두세워야 했던 다른 감각들로 느끼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푹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훌쩍 지난 100분이 아쉬워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와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해 한발 한발 딛는 내 사람. 시력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조차 무서워지고 혹여나 떨어지게 되면 내가 딛고 있는 땅조차 너무나도 큰 두려움으로 엄습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찾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 내 옆에서 나와 같은 어둠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시력의 상실로 인해 내가 얼마나 의존적으로 변하는지, 그리고 나머지 감각으로 옆 사람과 얼마나 많은 교감을 하게 되는지는 그 어둠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옆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교감은 더욱 생소하지만 끈끈하게 엮여들 것입니다.




로비에 구비된 방명록과 포토존 문화포털 기자단 정종화

 

 

어둠 속으로의 나들이가 끝나면 분명 아쉬운 마음도 들고 새삼 안에서 느끼게 되었던 많은 무언가에 잠깐 취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전에서는 체험을 모두 마치고 난 뒤, 이 감정을 선물하기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해두었습니다. 바로 특별한 포토존입니다. 포토존 옆에는 전시를 한마디로 요약하여 쓴 뒤 찍을 수 있도록 기다란 종이가 구비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느꼈던 감정을 요약하기 위해 궁리하다 보면, 방금 전에 나왔을지라도 새록새록 되새겨지는 그 감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한 사람과 고르고 고른 뒤에 선택해서 쓴 한마디를 들고 사진 한 장으로 남긴다면, 이 전시를 통해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꽃을 보고 햇살을 보고 따뜻한 기운에 겨워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이후에는 새롭게 느꼈던 그 감각에, 눈으로는 절대 느끼지 못할 벅찬 무언가에 오히려 따뜻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을 맞아 눈으로 꽃놀이, 물놀이를 만끽하는 것 역시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기운을 타고 집에만 계셨던 부모님의 손을, 서로 눈치만 보느라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웠던 좋아하는 그 사람의 손을, 언제나 꿀밤을 먹이기만 했던 친구의 손을 잡고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무엇보다 따스한 어둠 속으로의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정종화(글) / 정승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