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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이야기, 연극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
문화포털 기자단
2015-05-14

신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이야기
- 연극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 -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익숙한 이름의 책 제목이지요. '변신이야기'는 15권으로 이루어진 서사시로, 기원전 43년에 태어난 오비디우스가 쓴 이야기입니다. 수십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필독도서로 읽히는 가장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중 하나인데요. 이 서사시가 한국에서 신선한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무대 한가운데 가로 5.4미터 세로 3.6미터의 커다란 수조가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이 범상치 않은 연극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공연장에서는 공연장에 물을 가지고 입장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공연장과 물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연극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이하 변신이야기)는 다릅니다. 한가운데 커다란 수조가 설치된 무대에서 배우들은 그 수조안에서 연기를 하고, 가끔은 너무 열연을 하는 덕분에 앞 열의 관객에게 물이 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자리에는 물이 튈 수 있으니 주의하라’ 글귀를 읽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공연 시작 전에는 단순히 연극의 몇 장면에서만 물이 사용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연은 제 예상을 완전히 빗겨나갔습니다. 배우들은 대부분의 공연 시간을 수조안에서 물을 사용하며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거대한 파도를 만난 사람들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단순히 물을 연극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 방식 또한 매우 창의적입니다. 수조안에 있는 물은 현실 속 물과 마찬가지로 목이 마를 때 마시거나 수영을 하는데 사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것,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장소가 달라졌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나는 파티에서의 화려함을 나타낼 때 역시 배우들이 물속에서 춤을 추면, 그 어떤 파티장보다 화려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이 여기저기 튀다보니, 막 사이에는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배우들이 직접 수조 밖으로 나온 물을 청소하는-심지어 자연스럽게 대화가 함께 이루어지는-진귀한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극 <변신이야기>에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및 기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천지창조, 마디아스, 알퀴오네와 케윅스, 에뤼식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뮈라, 파에톤, 에로스와 프시케, 바우키스와 필레몬이라는 10가지 신화가 그려집니다. 이 중 몇 가지 신화를 짚어보면서 이 연극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파에톤과 관련된 이야기는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예로, 시작부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선사합니다. 수조 속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튜브가 등장하고, 파에톤은 그 위에 떡하니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거들먹거리면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파에톤의 모습을 보자니 강남 어딘가에서 파에톤과 마주치게 되도 놀라지 않을 만큼 신화라기보다는 드라마 속 장면 같은 세련된 느낌이 재미있습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이야기는 숲의 요정 포모나와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의 이야기입니다. 포모나를 보고 사랑에 빠진 베르툼누스가 포모나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고군분투기 이지요. 막이 시작하고 한동안은 얼마간 포모나의 이목을 끌기 위해 베르툼누스가 농부, 목동, 군인으로 변장하면서 구애하지만 사랑에 전혀 관심이 없어 눈길조차 주지 않는 포모나와 굴하지 않는 베르툼누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느샌가 그의 편이 되어 얼른 그녀가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현명한 베르툼누스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할머니로 분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서 저는 <변신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변신이야기> 속 신화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너무나 먼 세상처럼 느껴져 읽는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신화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설이 100% 진실일 수는 없지요. 이야기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은유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며 선물합니다.
<변신이야기>도 수십 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화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책과 공연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죽은 남편 케윅스를 기다리다 새로 변하는 알퀴오네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연극과 책의 제목인 ‘변신이야기’라는 제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게 보면 포모나와 베르툼누스의 이야기에만 ‘변신’이라는 테마가 차용됩니다. 그러나 넓게 생각해보면 연극 <변신이야기>의 10개의 신화 이야기 속 75개의 역할을 배우 10명이 돌아가며 연기하는 것 역시 ‘변신’ 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몸을 움직여 새와 나무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잠이라는 존재를 형상화한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매우 탁월해서 무릎을 치며 배우들의 연기를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이처럼 연극 <변신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텍스트로 읽던 신화보다 더욱 생생한 이야기가 관람객에게 전달되어 신화 속에 숨겨져 있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고래야' 밴드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각종 배경음악과 효과음은 ‘고래야’라는 밴드가 직접 연주를 하며 들려줍니다. 고래야는 6인조 밴드로 대금, 거문고, 장구 등을 이용하여 국악과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 <변신이야기>에서도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음악으로 수십 세기 전 이야기지만 현대적이고, 그리스의 신화이지만 한국적인 연극의 분위기를 한층 돋워줍니다.
연극 <변신이야기>는 단순히 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들은 하늘 아래 인간과 교류하고, 인간으로 변장하는가 하면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화 속 신들은 종종 그 어떤 사람보다 미숙하거나 어리석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신화에는 화자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비유나 상징 속에 숨어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극을 보면서 신화 속 신들이 아닌 저와 제 주변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설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샤리아 왕은 셰헤라자데가 하는 이야기에 빠져 여자를 죽이지 않고 계속 살려두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왕은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며 밤이 새면 다음 밤을 기다립니다. 연극 <변신이야기>를 보고 난 후 저는 마치 샤리아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0개의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제가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왜 벌써 이야기가 끝나버렸지?' 하며 아쉬움에 자리를 쉬이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로운 연극입니다.
* 공연 안내
- 공연명 : 연극 ‘변신이야기’
- 기간 : 2015년 4월 28일(화) ~ 5월 17일(일)
-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 공연시간 : 110분
- 관람료 : 전석 4만원
*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변신 이야기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002.4.1, 가람기획)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김현정(글) / 정미리(편집)
김현정의 문화공감
출처
문화포털 기자단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