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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조선의 향기가 흐르는 곳
문화포털 기자단
2015-09-14
성북구, 조선의 향기가 흐르는 곳
- 조선 최초 왕비의 능에서 흥천사를 거쳐 북악스카이웨이까지 -
4호선 지하철역인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려 북악산을 향해 서면 경사진 언덕에 자리 잡은 많은 아파트와 주택이 보입니다. 성북구 돈암동과 정릉동의 경계가 되는 아리랑고개를 지나 서쪽의 언덕(북악산 줄기)을 따라 걸으면 마주치는 곳, 바로 정릉입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인 조선왕릉 중 하나인 정릉을 시작으로 왕후를 향한 태조의 사랑이 담긴 흥천사를 거쳐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에 이르는 길까지, 조선의 향기가 흐르는 곳을 소개합니다.

정릉 입구(좌), 금천교(우)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정릉에 들어서면 키가 나무들의 그늘이 드리워진 작은 광장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정릉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산책로가 나옵니다. 정릉으로 가는 길에는 금천교라는 작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금천교는 왕릉으로 다가가는 길에 있는 다리로 신성한 공간과 속세의 경계가 됩니다.
정릉의 능침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정릉은 조선 제1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입니다. 신덕왕후의 가문은 고려 권문세가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성계의 첫 번째 아내는 신의왕후였지만 조선 건국(1392년) 직전인 1391년(고려 공양왕 3년)에 죽었기 때문에 조선 최초의 왕비는 계비인 신덕왕후입니다.
* 계비 : 임금이 다시 장가를 가서 맞은 아내를 말하며, 임금의 첫 번째 아내는 ‘정비’라고 합니다.

홍살문(좌), 참도(우)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조선왕릉은 성격에 따라 3개의 공간으로 구분됩니다. 죽은 자가 머무는 능침공간, 산 자가 있는 진입공간, 그리고 이 둘이 만나는 제향공간입니다. 진입공간과 제향공간을 구분하는 경계가 홍살문입니다. 홍살문이란 신성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문이라는 뜻이며 홍살문을 지나면 참도가 이어집니다. 참도는 2개의 길로 나뉘는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신도)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어도)이라고 합니다.

정자각(위), 비각·수복방·수라간(아래 왼쪽부터)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참도를 따라 걸어가면 정자각이 나옵니다. 정자각은 정(丁)자 형태로 지은 건물로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제향공간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능침을 바라보고 만들어진 정자각 주변에는 비각, 수복방, 수라간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표석을 세워둔 곳이며,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이고, 수라간은 왕릉에 제향에 쓸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정릉 숲길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능 자리와 관련한 조선 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정릉의 주인인 신덕왕후는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이라고 전해지는데, 이성계의 첫 번째 아내인 신의왕후의 여섯 아들을 제치고 자기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할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태조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신덕왕후의 원래 능 자리는 궁궐과 가까웠던 현재 중구 정동이었지만 태종 시기에 지금 자리(정릉동)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태조의 첫 번째 아내(신의왕후)의 아들이었던 태종은 두 번째 아내(신덕왕후)가 살아 있을 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아버지가 사랑했던 신덕왕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태종은 능을 둘러싼 병풍석을 뜯어 청계천 광통교를 복구하는 데 썼으며 신덕왕후의 신주를 종묘에서 제외했다고 합니다. 이후, 현종 시기에 송시열의 건의로 신덕왕후 능이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되고 다시 종묘에 신주를 모시게 됩니다.
흥천사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신덕왕후가 가졌던 정치적 영향력의 가장 큰 뒷받침은 왕후를 향한 태조의 사랑이었습니다. 신덕왕후가 병으로 위독할 때 승려 50명을 불러 불공을 드렸고 1396년(태조 5년)에 신덕왕후가 승하했을 때, 통곡하며 직접 능 자리를 찾았다고 합니다. 또한, 흥천사를 세워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태조가 세운 흥천사는 정릉의 원찰로 170여 칸의 큰 규모로 완공되었지만 1409년(태종 9년)에 없어졌습니다. 이후 1669년 현종 시기에 정릉 근처로 암자를 옮기고 신흥사라고 하였다가, 1794년(정조 18년)에 현재 돈암동 자리에 다시 짓고 1865년(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의 후원으로 ‘흥천사’라는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흥천사와 정릉은 가까워서 함께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 원찰 :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거나, 소원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을 말하는데 주로 왕족들이 건립합니다. 흥천사의 경우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원찰입니다.
아름다운 흥천사의 기왓장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정릉과 흥천사에 담긴 신덕왕후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초기 계보와 정치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던 가문 출신의 신덕왕후, 그리고 첫 번째 아내였던 신의왕후의 아들 태종 간의 세력 다툼은 정릉과 흥천사의 입지 변화에서 드러납니다.
흥천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북악산에서의 향합니다. 북악산은 서울의 중심을 방어하는 자연적인 마지막 요새로 한양 천도 이후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현재도 북악산은 청와대로 바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보안이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북악산의 남쪽은 등산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능선을 따라서 걸으면서 서울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가 있는데, 바로 북악스카이웨이입니다.

북악스카이웨이4교(좌), 팔각정(우)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북악스카이웨이는 흥천사 옆의 북악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북악산의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북악스카이웨이는 성북구 종암동부터 종로구 부암동까지 이어지는 도로로 산책로와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1968년에 있었던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 이후 서울의 경계 수준을 높이고 북악산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북악하늘길이라고도 불리는 북악스카이웨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서울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팔각정입니다.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위), 팔각정에서 바라본 서울(아래)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
하늘전망대는 정릉동에서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팔각정으로 가는 길에 있는 또 다른 조망 명소입니다. 하늘전망대에서는 동대문구 방면이 잘 보이고 팔각정에서는 중구 방면이 잘 보입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걸으면서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조선의 역사를 느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중에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조선왕릉. 500년이 넘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유교적 통치이념 아래 엄격하게 관리되어온 덕분에, 역대 왕과 왕비의 왕릉이 모두 보존되어 조선왕릉은 더욱 빛납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중 하나인 정릉을 시작으로 흥천사를 거쳐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지는 길 위에 조선의 향기는 밤이 늦도록 퍼져갑니다.
* 정릉 관람 정보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 찾아오시는 길 :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 6번 출구 → 아리랑고개 방향 버스 승차
※ 버스 번호 : 2115(정릉 입구 하차), 마을버스 성북 22(정릉 정문 하차) 등 링크 참조
- 이용시간 :
1) 06:00-18:00 (2월-5월, 9월-10월)
2) 06:00-18:30 (6월-8월)
3) 06:30-17:30 (11월-1월)
- 입장료 : 만25세~만64세 개인 1,000원, 단체(10인 이상) 800원
- 문의 : 02-914-5133
- 관람요금 및 시간 상세 정보 링크 참조
* 참고 자료
[문헌]
서울지명사전, 2009, 서울특별시 편찬위원회
[웹사이트]
- 문화재청(세계유산 조선왕릉)
- 문화재청(정릉) : http://seoul.cha.go.kr/n_seoul/index.html
- 성북구 문화관광(흥천사) : http://www.seongbuk.go.kr/tour/tourism/temple/heungchunsa.jsp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손휘주(글) / 장수영(편집)
손휘주의 문화공감
출처
문화포털 기자단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