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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과 이별하는 100일간의 특별한 여행 <문화공간 100프로젝트>
어릴 적 집 앞 골목길은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놀이터였습니다.
골목길과 ‘너의 집 그리고 나의 집’이란 구분은 숨바꼭질할 때면 무의미해지곤 했지요. 친구네 옥상으로 올라가 담장 너머로 술래인 친구 모습을 숨어 보며 들킬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렇듯 어릴 적 기억은 추억이 되어 마음속 보물상자에 담겨 있습니다. 골목길에서 뛰놀던 추억은 생생한데 추억의 배경이 되었던 공간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이젠 추억의 보물상자마저 봉인되어 버리는 건 아닐지 마음 한켠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지명만으로도 설레는 춘천의 한 골목길. 꼬불꼬불 휘어진 길을 따라 걷다 마주한 춘천 기와집골은 현재 사라져 가는 공간과 시간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모여 의미 있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6월 11일을 기준으로 100일 후면, 재건축이 확정되어 기와집골은 헐리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있고, 그때는 없을지 모를’ 기와집골 마을에서 예술작가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가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춘천 기와집골 전경 ⓒ 문화포털 기자단 장은진
춘천 기와집골은 찬바람이 불 즈음이면 사라지게 됩니다. 2017년 철거를 앞두고 곧 사라질 예정인데요. 13년 동안 재건축에 대한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시공사 선정 및 잦은 조합 설립과 변경으로 사업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다 올해 초 최종적으로 재건축 사업이 확정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이제 아파트가 들어서게 됩니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역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과거가 되어가는 셈이지요. ‘아직’ 남아 있을 때 조금 더 기억하고자 기와집골로 향했습니다.

문화공간100 전시 공간 현수막 및 입구 ⓒ 문화포털 기자단 장은진
춘천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와집골이 있습니다. 높게 올라선 아파트 사이에서 낮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기와집들이 보입니다. 기와집 사이로 전시가 진행 중인 공간을 찾아가는 골목길이 재미있습니다. 막다른 골목길을 만나기도 하고,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계신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마주한 골목길과 풍경, 사람들의 모습은 또 다른 전시를 보는 듯했습니다.

동네 주민 얼굴 그리기 및 릴레이전시 ⓒ 문화공간100
전시 공간은 원래 비어있는 주택이었습니다. 비어있는 주택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춘천시 문화재단이 후원하고 민족미술인협회 강원지회 춘천지부의 주관으로 사업은 시작되었는데요. 기와집골 철거 전 100일 동안 사라져 가는 아쉬움을 주민들과 함께 달래고자 '문화공간100'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전시 및 프로젝트는 기와집골 주민들과 지역의 예술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체험 및 전시를 진행하게 되며, 6월 11일부터 9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100일간의 특별한 이별식이 거행되는 것이지요.

먹!먹!프로젝트 ⓒ 문화공간100
여는 마당을 시작으로 동네 주민들의 얼굴 그리기 및 릴레이 전시를 시작으로 전시의 문을 열었는데요. 그 밖에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주민들과 작가들이 다르게 바라본 마을의 풍경지도를 제작하는 ‘눈 안의 풍경전(展)’, 기와집골에서 사용했던 목재나 못 쓰게 된 나무를 이용하여 작가들과 함께 새롭게 해석하고 고쳐나가는 ‘환생목(還生木)’, 벽에 설치된 캔버스에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뿌리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자유롭게 속마음을 표현하는 ‘먹!먹!프로젝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수 및 바느질 조각보를 이어서 만든 후 벽과 대문, 공동 공간에 설치하는 '마음 짓다' 등 하나같이 주민들의 삶과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프로그램입니다.

풀이마켓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전시장의 모습 ⓒ 문화포털 기자단 장은진
전시가 진행 중인 집에 들어서니, 시골 할머니 댁을 방문한 듯 포근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소박한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전시장을 바라보니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자뭇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날은 ‘우리 동네 풀이마켓’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풀이마켓은 얽매이고 있는 것을 풀어준다는 의미의 풀이마켓으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연이 담긴 물건을 작가들과 함께 새롭게 만들거나 교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버리기는 아깝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 케이스를 가지고 갔었는데요. 작가님들의 조언을 듣고, 여러 가지 단추, 실, 장신구 등을 사용하여 케이스 뒷면을 꾸며보았습니다. 쓸 수 없다고 내버려두었던 물건에 새 옷을 입혀주니 물건 또한 새로운 쓸모가 생겼습니다. 오래된 물건도 공간도 애정을 갖고 다가갈 때 생명력을 얻게 되는 건 아닐까요.

(왼쪽부터) 사라져 가는 것들의 이야기 / 주민 인터뷰와 제작 과정 영상이 담긴 전시 공간 ⓒ 문화포털 기자단 장은진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다른 공간에서는 주민들의 인터뷰와 프로젝트 제작 과정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상 마지막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지나간 삶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지켜냈던
지난 세월들로 그들의 아이들이 자랐고
또, 그들의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2016년 여름 기와집골-”
어느 한 공간, 그들이 살아갔던 집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사라져 가는 마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주민들과 함께 추억을 간직하고 만들어가고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기와집골이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 무심하게 지나쳤던 물건,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교류하고 소통하며 아름다운 ‘안녕’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기와집골에 남아 있는 옛 건물 / ‘겨울연가’ 준상이네 집 표지판 ⓒ 문화포털 기자단 장은진
전시장에서 멀잖은 곳에 수선집과 약국, 결혼복과 맞춤복을 만들어주던 양장점 등 오래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기와집골에서도 특히 이곳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주인공 배용준이 살았던 집이었다고 합니다. 길에서 마주친 마을 어르신께서는 “예전에는 이 골목이 사람들로 꽉 찼었다”며 사람들의 발길 끊긴 이곳이야말로 어르신의 연가(戀歌: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된 듯이 말을 줄이셨습니다.
풀이마켓을 진행하시던 작가님께서는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점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와 예술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늘 함께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꾸미는 것, 오늘 아침 무엇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늘 디자인과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공간에서 색다른 전시와 프로젝트를 주민들과 함께 그려나가며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앞으로 이런 마을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특징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문화공간100’ 프로그램 일정표 ⓒ 문화공간 100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지를 향하는 동안 등 뒤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지 못한 채 살고 있구나’. 습관적으로 휴대폰에 시선을 두고 있는 동안에도 풍경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텐데 말이죠. 발 딛고 선 곳에서 한 번쯤을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본다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우리 주변의 많은 모습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춘천행을 택하셨다면, 기와집골에 들러 골목골목에 발걸음을 남겨 보세요. 사람과의 헤어짐에 이별을 감당할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을 담은 공간과 헤어짐에도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옛 모습을 점점 잃어가는 마을의 모습과 그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문화공간100’ 프로젝트는 9월 10일 토요일까지 진행됩니다. 그곳에선 잊고 지낸 또 다른 이름의 ‘기와집골’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문화공간 100 프로젝트 관련정보
-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gallerymin
- 문의 : (사)민족미술인협회 강원지회 춘천지부 (010-4167-2038)
- 찾아가는 길 :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2가 93-9 (기와집길 21번길 7)
- 관람일정 : 6월 11일 (토)~9월 10일 (토) / 오전 11시~오후 5시 (프로그램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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