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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찬욱에게 묻다! - 제57회 KOG 아카데미 강연 -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올드보이’라는 파격적인 영화의 출현을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잔인하지만 아름다웠던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대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박찬욱 감독은 화제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꾸준히 잡으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를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를 잠시나마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지난 11월 13일, 노보텔 엠버서더 대구에서 박찬욱 감독이 제57회 KOG 아카데미의 강연자로 섰습니다. 강연은 ‘게임이 영화에게 묻다’라는 주제로 KOG 시니어 개발자와 박찬욱 감독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KOG 아카데미는 김성근’ ‘한비야’ 등 분야별 최고 전문가를 강사로 초청해 지역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유명인사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으로 대구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연 프로그램 중 하나 입니다. 누구나 무료로 참여 가능하며 사전참가 신청 및 자세한 사항은 KOG 홈페이지(www.kog.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두 사람이 주고받은 질문(KOG 시니어 개발자)과 답변(박찬욱 감독) 내용을 살펴 볼까요?

제57회 KOG 아카데미 포스터 ⓒ 문화포털 기자단 이아름

강연 일시와 장소 안내 ⓒ 문화포털 기자단 이아름
Q : 우선 오늘 모이신 분들께 인사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A : 처가가 대구라서 자주 오고는 하는데 오늘 생각보다 매우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습니다.
Q : 영화 ‘박쥐’에서 대명동 계명대학교(대구)에서 찍은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다 알고 촬영하신 건가요?
A : 대구에서 살다가 대학 때 서울로 이사 갔던 터라 익숙하고 데이트도 대구에서 자주 했었어요. 대구에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장소들이 많은데 특히 계산성당을 아주 좋아합니다.
Q : 영화 ‘설국열차’ 제작에 참여하셨는데 제작자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요?
A : 어렸을 때는 사실 영화 제작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그때는 인터넷 같은 매체도 없어서 정보도 없었고 영화라는 게 배우가 다 하는 줄로만 알았어요. 차츰차츰 영화계에 몸담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우선 영화의 각본을 완성합니다. 각본가가 따로 있어서 이것을 감독이 손질하기도 하구요. 우리나라는 유독 감독이 각본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훌륭한 각본가가 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본가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유럽과 한국의 경우 감독이 가진 권한이 큽니다. 감독 중에서 유능한 스토리텔러가 많기도 하지만 이것이 각본가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각본이 준비되었으면 그다음으로는 스텝을 꾸리고 촬영 구상을 합니다. 저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의 그림을 계획적으로 짜놓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누가 와도 그대로 찍을 수 있게끔. 이것은 감독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편이라 홍상수 감독 같은 경우에는 각본도 없고 콘티나 스토리보드도 없어요. 촬영 당일 날 아침이 돼서야 콘티가 나오는 스타일인 거죠. 촬영 구상 후에는 장소를 섭외하고 리허설한 후 촬영, 편집, 스토리 라인, CG의 단계를 거칩니다.
제작자는 감독을 섭외하고 투자자도 섭외해야 합니다. ‘설국열차’의 경우에는 400억의 투자를 받으러 다녔어요. 또 배우와 스텝들이 다국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과 인건비의 총비용을 가늠해야 했습니다. 즉, 사람과 돈을 모으는 것, 영화가 무사히 완성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제작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감독을 영화의 어머니, 제작자를 영화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Q : 어릴 적에 미술사학의 꿈을 꾸셨고 전공은 철학이셨어요, 결정적으로 감독이 되고자 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막연히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영화는 거의 깡패 건달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래서 감히 생각조차도 못했어요. 속으로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미술사학 혹은 철학이었습니다. 공부를 해서 교수나 연구 쪽으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결국엔 제 인생을 찾아가게 되더라구요. 그것을 유도하는 일이 살면서 몇 개씩 생겼고 그것들이 영화로 이끌었어요.
서강대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주요 학풍이 영미 쪽 분석철학이었어요, 그것이 저와는 맞지 않아 흥미가 떨어졌고 사진학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좋아해서는 아니었고 훗날 돌이켜보니 영화와 비슷해서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강연 시작 전 무대 모습 ⓒ 문화포털 기자단 이아름
Q :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모습의 리더가되고 싶으신가요?
A : 저는 엄청난 카리스마의 보유자도 아니고 혼자 영감을 받아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끄는 타입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통해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에요. 스텝들과 이야기하면서 영감을 얻고는 하는 데 이것의 장점은 고독하지 않다는 거예요. 사람의 인생사가 외로울 수밖에 없는데 일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자기 혼자만의 재미와 감정에 갇힐 수 있거든요.
제가 각본을 쓰는 방식은 독특한데, 작가와 하나의 컴퓨터 본체와 두 개의 모니터, 자판을 공유합니다. 그러고서 하나의 파일을 함께 만드는 거죠.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서 쉼표 하나에도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떤 의미인지 논쟁을 해가며 글을 씁니다. 그렇게 하면 뇌를 더 자극하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의 미술과 음악도 모두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다. 상대가 지겨울 정도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구할 때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지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곤 합니다.
배우들은 신입부터 보아도 아주 다른 종족 같아요. 전혀 다른 인류 같다고나 할까요? 영화계에 나름 오래 있었는데도 카메라가 돌면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들을 보면 저 속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강호 씨 같은 경우도 영화를 찍을 때 거의 자고 있어요. 자다가 일어나서 펑펑 운다든가 밥을 먹다 와서 미친 듯이 날뛰는 연기를 할 때는 참 신기 해요. 사람에 대한 관찰력과 통찰력, 몰입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그것은 책으로도 얻을 수 없고 인생경험에서 얻은 것도 아니에요. 스스로 관찰하고 사유하고 깨달아서 얻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찍기 전에 배우들과 친해지는 작업을 반드시 거칩니다. 친해진다는 것은 거창한 인생사나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놓고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거에요. 결국에는 작품을 위한이 한 줄의 문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수 천 가지의 가능성이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에 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리허설이라고 하는데 이 리허설이 많을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스토커’를 찍을 때에도 니콜 키드먼과 샌드위치를 일주일간 먹어가며 영화의 처음부터 끝을 이야기 했습니다. 흔히 알던 리허설이 아닌 영화에 대해 토론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하더라구요.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 ⓒ KOG INSIDE 네이버 블로그
Q : 복수, 폭력, 살인과 같은 조금은 불편한 주제의 영화가 많은데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지?
A : 저는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크게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어요. 철 들고서는 누구와 한 번도 싸워본 적도 없는 그저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 용감한 친구들은 정치적으로 맞서 싸우다 피해를 당하곤 했어요. 나 같은 겁쟁이는 정신적으로 영향받고 꿈에 나오는 식으로 시달렸던 것 같아요. 제 영화가 정치적인 것을 다루진 않지만 그때의 경험에 기인한 공포를 다루고는 합니다. 공포 자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아요. 폭력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의 전후, 폭력이 일어나기 바로 전의 두려움과 죄의식을 그리는 것이죠.
왜 폭력이 중요한가 생각해 봐야 해요. 사랑, 희망, 행복과 같은 긍정적 요소도 좋지만, 현실은 그런 것들로만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폭력, 전쟁, 고통, 죽음, 갈등도 존재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지만 미디어는 보여주기를 외면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은 것도 빛이 나고 살아나는 것이니까요.
Q : 많은 영화를 흥행시키셨는데 영화흥행 성공을 위한 한 가지가 있다면?
A : ‘복수는 나의 것’ 경우에는 24시간 만에 먹지도 자지도 않고 썼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같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대중을 깔보며 그들의 눈높이에 내가 맞춰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훌륭한 영화란 좋은 장면이 3개 있고 나쁜 장면이 하나도 없는 영화다.’ 좋은 장면은 3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쁜 장면을 하나도 안 넣는 게 힘든 거죠. 의외의 순간, 독특한 장면을 만들고 싶은 어설픈 과잉이 종종 실패를 만들고는 하거든요. 그렇다고 시도 안 하는 것은 아니에요. 진부한 것은진부한대로 나쁜 장면이니까요. 이 말을 염두에 두면서 대중과 공감할 것들을 찾는 편입니다.
Q : 마지막으로 제57회 KOG 아카데미에 참석한 분들께 한 마디
A : 80년대 초는 학생운동과 정치 생각밖에 없던 때에요. 영화를 보는 것은 생각 없고 사치스러운 행동으로 치부됐었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에요. 헌데 정치라는 것이 곧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에요. 타인에 대한 관심이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한 관심인 거죠. 우리 모두가 관계의 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냥 남의 일이 아닌 겁니다. 우리 사회에 포함된 모든 것이 정치입니다. 이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시민들 ⓒ KOG INSIDE 네이버 블로그
이번 강연을 통해 만나본 박찬욱 감독은 시종일관 진솔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재적인 감독으로 불리는 그였기에 작업 과정이 꽤 독단적일 줄만 알았던 것도 한낱 편견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대화와 소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냥 신비롭게만 보였던 그의 작품들은 사실 끊임없는 고뇌와 철저한 준비의 산물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가 의도한 행간을 살짝 이나마 엿본 강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참고 사이트>
KOG 공식 사이트: http://www.kog.co.kr/
KOG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kog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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