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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진 예술의 비전을 탐색하다 -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

대구사진비엔날레 부대행사로 대구예술회관 내 설치된 포토 북 라이브러리 전경.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자, 인증샷 한 장!” 현대는 한 줄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력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면서 이미지가 텍스트의 위치를 점령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진은 기록의 수단이거나 예술의 표현 어느 쪽으로든지 그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정작 사진의 역사를 돌아보면 2세기가 채 되지 않습니다.
사진의 정체성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진의 다양한 표현 방식들이 과감하게 시도되었던 자리, 『2014대구사진비엔날레』가 38일간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9월 12일부터 10월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현대사진예술의 비전을 가늠하는 전시들이 열렸습니다.
올해 5회째를 맞은 대구사진비엔날레가 <Photographic Narrative(사진의 서사)>이라는 주제로 세계 31개국 250여 명 작가들의 의미 있는 작업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각 지역 사진작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사진술의 기원에서부터 현대사진예술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이 선보였습니다. 이들은 사진 매체를 콜라주, 비디오아트, 대형 포토그램 등과 접합하여 예술로서의 사진의 영토를 다차원으로 확장한 듯 보입니다.
행사 기간 중 주 전시 ‘기원, 기억, 패러디’ (Origins, Memories & Parodies)와 ‘이탈리아 현대사진전’, ‘만월- 하늘과 땅의 이야기’, ‘전쟁 속의 여성’, ‘ENCOUNTER Ⅲ-2012우수 포트폴리오 선정 작가전’ 등 특별기획전시, 포트폴리오 리뷰와 함께 각국의 사진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제사진심포지움이 개최되었습니다.
그 외 봉산문화회관의 마음열기 바라보기 in market, 2014 국제젊은사진가전 ‘Eternal Eye’와 대구 다큐멘터리 사진전(대구예술발전소), 시내 20여 개의 화랑의 갤러리 한마당(갤러리와 화랑 기획전) 등 다양한 전시와 행사들이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는데요. 대구 시내 중심가에서 열린 ‘소소한 행복사진관’, ‘맛있는 사진관’과 대구근대골목 촬영 투어, 꿈꾸는 나다르(항공촬영시연회) 등 일반 시민들을 위한 부대 행사가 함께 마련되었습니다.
2014대구사진비엔날레 행사 개요
- 주제: Photographic Narrative(사진의 서사)
- 기간: 2014. 9. 12(금) ~ 10. 19(일) 38일간
- 내용: 주 전시, 전시, 포트폴리오 리뷰, 국제사진심포지엄, 부대행사 등
- 장소: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예술발전소, 봉산문화회관 등 대구시 일원
기원, 기억, 패러디 (Origins, Memories & Parodies)
2014대구사진비엔날레 주 전시실의 ‘로베르토 후아르카야’ 열대 우림 포토그램 시리즈.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2년 만에 돌아온 대구사진비엔날레에 관람객들이 입장하면 첫 번째 암흑의 방으로 인도됩니다. 어둠에 적응하고 나면 눈앞에 거대한 크기의 흑백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로베르토 후아르카야(Roberto Huarcaya, 페루)의 30m 감광지에 담긴 무성한 수풀과 열대 우림의 생물 작품들입니다. 작가는 포토그램의 기법과 오랜 열대 우림의 모티브 작업을 통해 사진 그리고 존재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번 주 전시는 ‘기원, 기억, 패러디’을 주제로 국제적 사진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스페인 출신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Alejandro Castellote)가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에 사진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이는데요. 자고이래(自古以來) 기억은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기질입니다. 기억을 재가공하고 분석하는 도구이자 표현 수단으로서의 사진, 특히 오늘날 작가들은 아카이브, 가족앨범, 시각 기록들에 주목합니다. 이들은 각각의 개별적 기억들이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경제적 해석을 통해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간파합니다. 이를 통해 현대사진의 주요 양상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합니다. 주 전시관에는 총 18개국 32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요. 구동희, 최원준, 구본창, 한성필, 이명호 등 명망 있는 국내 작가와 마르코스 로페즈(아르헨티나), 알프레도 데 스테파노(브라질), 시게유키 키하라(뉴질랜드), 안젤리카 다스(브라질), 보무(중국) 등 주목할 만한 해외 신진 작가가 포함됩니다.
안젤리카 다스의 휴마네 프로젝트(Humanae Project_Work in Progress_1 ⓒAngelica Dass)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이 많은 사람을 네 개의 색깔로만 구분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안젤리카 다스(브라질)는 세상 사람들이 흰색, 검은색, 노란색, 붉은색 네 가지 피부색으로 타고난다는 믿음이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관습임을 지적합니다. 그는 ‘휴마네 프로젝트’에 지원한 사람들을 각각 촬영한 다음, 자원 모델들의 피부에서 11*11픽셀 크기의 표본을 뽑았습니다. 이것을 작품의 배경색에 입히고, 사진 하단에 색에 해당하는 팬톤 컬러 코드를 적어 넣었습니다. 이 방식은 모든 모델에게 같게 적용합니다. 작가는 개인경험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을 사진 작업을 통하여 풀어냅니다. 즉 성격이나 문화 정체성처럼 피부색도 사회나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는 국적, 나이, 미의 기준, 경제력 등 사회적 기준을 벗어나 각자가 가진 고유의 색을 되찾기를 바라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시게유키 키하라(Shigeyuki Kihara, 뉴질랜드)의 자화상 시리즈, ‘Fa’afafine; In the Manner of a Woman’.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보무(BoMu, 중국) - 흑백 젤라틴 실버 프린트, 먹, 동물 뼈, 레진, 네온 튜브 등을 사용한 대형 설치 작품.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로스트 앤 파운드 프로젝트 - 2011 일본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자원봉사자들이 쓰나미 피해로 유실된 가족사진을 정리하고 주인을 찾지 못한 사진들로 제작 전시한 작품.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이탈리아 현대 사진전
2014대구사진비엔날레의 ‘이탈리아 현대 사진전’ 주제 전시관. 대구문화예술회관.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사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진 전시회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만, 한 나라의 특징적인 경향을 조명해보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한국,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히 이탈리아 현대 사진전을 기획하였습니다. 이탈리아 현대 예술의 특징은 일반적인 기준을 따르지 않고 독특한 개성을 지닙니다. 참여 작가들이 다양한 기법을 통해 세계 각국의 모습과 인물을 이탈리안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전시 관람의 포인트는 작품의 시적 감수성이나 독특한 내용에 있습니다.
현대사진 속에 나타나는 과거의 지속 ⓒ 바스코 아스콜리니, 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제공
만월: 하늘과 땅의 이야기 (Full Moon: A Story of Sky and Earth)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의 만월 주제전시관,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른 듯 입구를 들어서자 천장에 드리워진 만월의 이미지가 관람객의 시야를 압도합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하늘과 땅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월 전시장입니다. 전시는 동양적 사유의 근본인 ‘마음’에서 바라본 아시아의 하늘과 땅, 인간을 주제로 삼습니다. 중국,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작가를 포함 총 7개국 14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영이 서린 듯한 작품들이 옆 전시실의 이탈리아 현대 사진가들의 감성적인 시각과 눈에 띄는 대조를 이루는데요. 이들의 작품은 아시아인의 정신과 순환, 공존의 세계관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생명에 대한 경외, 소멸에 대한 기억들을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국내 참여 작가들은 이갑철, 강영호, 고현주, 정에스김, 이정록, 이소영 등입니다. ‘만월’을 주제로 한 전시는 서구 일색의 현대사진예술의 패러다임 속에서 존재하는 자연 자체를 중히 여기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사진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부여합니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순) ‘Tree of Life 5-4-3’ 이정록, ‘서클2’ 정에스김, 이소영,’아버지와 아들’ 이갑철 작품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만월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신비한 아우라를 발하는데요. 그중 이갑철은 한평생 그가 주시해 온 한국인의 모습을 “서러움 속에 굽히지 않고 일어서려는 욕망과 꿈틀거림의 모습”으로 담아냅니다. 정에스 김의 써클 2시리즈는 한국의 권선징악적 전래 동화와 전설에 나오는 인물을 작가의 주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예술사진으로서의 다양한 방향성을 시도하는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작품.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전쟁 속의 여성 Women in War
2014대구사진비엔날레 ‘전쟁 속의 여성’ 주제 전시관, 대구예술발전소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전쟁과 여성' 기획이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전시 중 사진의 정통성을 가장 잘 활용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근. 현대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전쟁의 현장을 사진으로 포착, 보는 이들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전달합니다. 전시는 여성 사진가의 시각으로 담은 ‘전쟁의 기억’ 전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한 ‘진실의 기억’ 전으로 구성됩니다. 석재현 기획자(대구미래대 교수, 독립큐레이터)는 전시 주제를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처지 에서 본 전쟁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성을 재확인하고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고 밝힙니다. 세부 전시는 어쩔 수 없이 전쟁 속으로 내몰린 여성들을 찍은 ‘전쟁과 여성’, 종군 여기자의 눈에 비친 전쟁을 담은 ‘여성종군기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조망하는 ‘정신대’을 각각의 소주제로 나뉩니다. 김영희(미국), 안세홍, 정은진 등 한국인 출신 작가와 첸칭강(중국), 애미 비탈레(미국), 하이디 리빈(미국) 등 총 8개국 18명의 여성사진 작가들이 참여하여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을 조망합니다.
'전쟁 속의 여성’ 기획 출품 작품, 안드레아 브루스(미국).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대구사진비엔날레 사무국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직도 전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 있어요.” 이 전시에 하이디 리빈(미국)의 활약으로 가장 최근 자행되고 있는 전쟁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으로 참혹한 현실이 계속되는 가자 지구 사진들을 공개하였는데요. 여성 사진가의 눈으로 지구 위에 아직 전쟁이 멈추지 않았다는 가혹한 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그 외 전시 작품들로 1966년부터 87년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분쟁 지역을 취재했던 캐서린 르로이의 기록들, 한국의 여성 사진가 정은진이 전하는 강간 성폭행을 전쟁에 이용하는 콩고 내전 사진과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파키스탄의 염산 테러 악습 등 상상하기조차 힘들 만큼 여성이 겪는 전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2014대구사진비엔날레 ‘전쟁 속의 여성’ 주제 전시관, 대구예술발전소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종군위안부의 참상을 기록한 전시 작품들, 김영희 ⓒ 문화포털 기자단 변경랑
“나의 어머니일 수도 나의 할머니일 수도 있는 이야기” 한국계 미국인 사진가로 활동해오던 김영희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접하고, 같은 여성으로 분노와 연민을 느낍니다. 그녀가 1996년 타임지와 서구 유명 매체에 종군위안부의 참상을 폭로하면서, 국제사회에 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한 여성 인권 피해 사례가 처음 알려지게 됩니다.
이 밖에도 전쟁과 여성의 시각으로 기획된 ‘진실의 기억’은 한국땅을 넘어 중국, 아시아의 지역으로 확대 기록합니다. 안세홍의 ‘겹겹’ 프로젝트(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세월의 겹, 한의 겹을 마음에 담은 사진 기록), 일본인 사진가 이토 다카시의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에 의해 피해를 당한 아시아 사람들의 사진 등에서 아직 아물지 않은 전쟁 속 여성들의 뿌리 깊은 상흔을 발견합니다. 이들이 평화와 안식을 되찾을 날이 언제쯤 올까요? 미래의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이 염원 속에 들어 있습니다.
관련 문의 - 대구사진비엔날레 사무국 053-655-4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