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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아 점아 콩점아

작품명
점아 점아 콩점아
구분
1987년~1992년
작품소개
<점아 점아 콩점아>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죽어간 총각과 6·25 당시 숨진 북한 처녀를 혼례시켜 그들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망자 혼례굿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은 굿의 연극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를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분단을 거쳐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줄기로 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이 작품은 1990년 ‘굿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하다. 당시 이 작품과 <오구 – 죽음의 형식>(연희단거리패)가 연극평론가 이상일로부터 “굿은 연극예술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으며 연극계의 격렬한 논쟁이 펼쳐졌다. 이 작품은 1990년 5월 9일부터 31일까지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공연된 후 ‘통일 문제작 시리즈’로 기획되어 재공연 되었고, 대구에서 열린 제3회 민족극한마당에 참가했으며 미국 PBS에서 방송되기도 하였다. 극작·연출 노트 “점아 점아 콩점아 술 사줄께 나온나 술 사줄께 나온나” 내가 이 단순하고도 흥미로운 민요를 처음 들은 것은 10년 전쯤의 일이다. 광주항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던 그 시기에 이 민요는 어디선가 불려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대학가로 번져 나갔다. 역사의 격변기에 불려지는 동요나 민요는 대개가 깊은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들은 저항적 요소도 함께 지니고 있으며 그와 함께 주술적 요소와 예언적 요소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것은 굿이 지니고 있는 이중적이고도 복합적인 구조와 흡사하다. (……) <점아 점아 콩점아>는 광주항쟁이라는 소재를 씨줄로 삼고 통일이라는 주제를 날줄로 삼아 진행되고 있다. 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내는 방법으로 굿의 원초적이고도 총체적인 구조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었다. (……) 그리고 굿이 지니고 있는 사회성과 역사성과 현실성, 주술성과 영성과 초자연성을 상호 갈등하는 관계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파악하여 구체적 사실의 전달보다 그 사실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의 형상화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이 굿이 맺힌 혼들을 위한 진혼굿이 되고, 그 맺힘을 풂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자 하는 씻김굿이 되고, 우리 6천만 민중이 통일의 초례청에서 만나는 대동굿이 되고, 우리 국토의 흙과 흙에서 모든 쇠붙이를 걷어내는 싸움굿이 되며, 통일을 가로막는 모든 살과 액을 물리치는 통일굿이 되며, 인간의 신명과 신들의 신명이 한데 어우러지는 한판의 천지굿이 되어 주십사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 - ‘작·연출의 말’, 김명곤, <극단 아리랑 10주년 기념 희곡집 2 – 격정만리>, 극단 아리랑 편, 공간미디어, 1996
작품내용
[앞풀이] 상쇠가 등장하여 노래를 부른다. 남자들 여자들도 함께 부른다. [제1장] 어머니의 꿈 배우들이 <점아 점아 콩점아>를 부르며 등장한다. 어머니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죽은 아들 영덕이 자꾸 꿈에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제2장] 해몽 박수가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듣고 북쪽 여자와 망자혼례를 시켜야 한다며 아들의 유골을 깨끗이 수습하라고 이른다. [제3장] 무덤 어머니가 아들의 무덤을 파자 영덕이가 나타나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 한다. [제4장] 궁합 박수가 무당을 찾아가 영덕의 신부감을 찾아 달라고 한다. 무당이 6·25 때 죽은 처자 순애를 골라 점을 치니 둘은 궁합이 잘 맞다. 박수와 무당은 남북의 굿이 어우러진 통일굿을 하기로 한다. [제5장] 판씻이 영덕의 넋대를 잡을 친구 대성과 순애의 넋대를 잡을 조카 지영이 등장한다. 무당과 박수, 배우들이 어우러져 노래를 부른다. [제6장] 동티 무당과 박수가 굿을 하자 넋대잡이들이 쓰러진다. 깨어난 대성과 지영은 영덕과 순애를 보았다면서 그 둘이 만나려고 하는 데 누군가 방해를 했다 한다. [제7장] 광주와 6·25의 원혼 인형들이 등장하여 광주의 영덕과 미군에게 겁탈당하는 순애를 보여준다. [제8장] 분단귀 무당과 박수가 무엇이든지 갈라놓으려는 분단귀를 막기 위해 신장귀를 부르기로 결정을 한다. [제9장] 신장놀이 신장들이 나온다. 동학혁명 당시 죽은 삼돌이, 일제 때 억울하게 죽은 꽃분이, 분신 사망한 불똥이, 직업여성으로 죽은 가르보 최 등이 등장하여 분단귀와 맞서 싸울 위원회를 조직하며 구호를 외친다. [제10장] 거북아 거북아 박수와 무당이 나와 문제를 지신밟기로 풀기로 한다. [제11장] 지신밟기 무당과 박수가 무가를 부르며 신랑 신부 장승을 불러들인다. 무당과 박수가 넋대를 잡고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른다. 넋대잡이들도 춤을 춘다. [제12장] 합방 노래가 나오며 신랑과 신부가 합방을 한다. 사람들이 신혼방을 들여다 본다. [제13장] 통일둥이 아기가 태어난다. 어머니는 아이의 이름을 통일둥이라 명한다. [뒤풀이] 남녀 배우가 북을 메고 나와 흥겨운 북춤을 춘다.
출연/스태프
출연 고동업 박남희 권태원 김진희 송영탁 이은숙 스태프 작·연출/김명곤 무대감독/조형준 기획/김영순 기획보/양윤정 조명/김영찬 의상/현애란 소품/김경숙 진행/신혜정·현애란 장승제작/김준태 인형·무구제작/박남희 비디오촬영/변영주
예술단체
극단 아리랑 극단 아리랑은 1986년 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명곤이 박제홍, 윤인근, 조항용, 문병옥, 이성재 등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연극반 출신들을 중심으로 창단했다. 창단 공연은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을 각색한 연극 <아리랑>(김명곤 작, 조항용 연출, 미리내 예술극장)이다. 이후 <점아 점아 콩점아>(1990)와 <격정만리>(1991), <숙부는 늑대>(1994) 등 연극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을 만들었다. <점아점아 콩점아>는 연극계 내부에서 격렬한 ‘굿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격정만리>(김명곤 작, 조항용 연출)는 연극사 왜곡과 이적성 여부를 문제 삼아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 측이 서울연극제 참가 취소를 결정하는 파문을 빚기도 했고 <숙부는 늑대>(최일남 원작, 방은미 연출)는 내용과 상관 없이 제목이 외설스럽다며 그해 사랑의 연극잔치 참가작 선정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또 1989년 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극단 등록이 취소되어 극단 이름을 ‘아리랑 극단’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1990년대 들어 극단 아리랑은 <마법의 동물원>(1992), <첫사랑>(1998)을 비롯한 아동청소년연극, <목민심서>를 극으로 푼 <정약용 프로젝트> 등 새롭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술가
김명곤 (1952~ )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뿌리깊은나무> 편집기자, 배화여자고등학교 교사 등을 거쳤다. 김명곤은 배우, 극단 대표, 극작가, 연출가와 예술감독 등 연극 활동뿐 아니라 영화 출연과 각색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예술극장 한마당 대표, 1986년부터 1999년까지 극단 아리랑 대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의장을 지내며 마당극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극 활동에 간여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중앙극장장을 역임했으며 2006년 문화관광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마법의 동물원>으로 제1회 어린이연극제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1992), 영화 <서편제>로 영화평론가협회 남우주연상 ·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1993), 1994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등을 수상했으며 작품 <어머니>는 연극평론가협회 1996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기도 했다. - 대표작 연출 <밤하늘의 별처럼> <어머니> <갑오세 가보세> <마법의 동물원> 극작 <창작판소리 금수궁가>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아리랑> 시나리오 각색 <서편제> <춘향뎐> 연극 출연 <아벨만 이야기> <장사의 꿈>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유랑의 노래> 영화 출연 <서편제> <태백산맥> <정> 저서 <광대열전>, <김명곤의 광대기행-限>, <비가비 광대>
비평
(……) 걸쭉한 남도 사투리를 쓰는 박서방(박수)의 구수한 재담과 황해도 출신 무녀 황주댁이 춤과 무가로 엮어내는 굿판은 이승에서 억울하게 죽어 구천에 떠돌고 있는 모든 원혼들을 달래기에 충분할 만큼 실감이 있었다. 그리고 두 망자의 죽음의 내력을 밝히는 인형극이나 혼례 성사 후 첫날밤을 묘사한 그림자극 등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함께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 ‘광주항쟁의 무대화, 그 가능성과 한계’, 박영정, <월간 말>, 1990.6 (……) 무당과 박수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구경꾼들의 힘을 빌어 함께 해결한다는 것이 이 극이 지니고 있는 강점이다. 이것은 민중의 단결된 힘만이 이 땅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음을 잘 알게 한다. 이를 위해 관객들을 망자 혼례굿을 구경 온 사람들로 삼아 극에 자연스레 개입시키고 있다. 연극 자체가 굿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경우 관객들은 관찰자의 임장이기도 하면서, 또한 굿을 주관하는 한 구성원이 된다. (……) - ‘‘굿’의 형식과 생명력을 잘 이용한 공연’, 김재석, <객석>, 1990.6 굿 논쟁 (……) 굿은 굿이고 연극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제의이며 따라서 굿에서 원시종합예술의 씨앗을 본다고 해도 씨앗을 키워서 예술로 만들지 못하면 결국 굿은 굿이고 그 굿은 지난 생활문화의 잔존일 뿐이다. 나는 1990년대 산업화 사회의 비탈길에서 새삼스럽게 굿의 예찬론을 민족극 형식에다 결부시키면서 신대처럼 깃발을 흔들어대는 젊은 세대의 자가당착을 애써 외면할 수가 없다. 굿의 신앙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굿의 미학이 격상되는 이 시대는 분명히 역설의 시대다. 그런 역설이 대학가의 놀이마당에서 연극 전문 무대로 횡행하게 되는 것 또한 반어적 시대가 아닐 수 없다. (……) - ‘굿의 헤픈 웃음과 한풀이 - <오구 – 죽음의 형식>과 <점아 점아 콩점아>’, <한국연극>, 이상일, 1990.7 (……) 이상일 님의 이러한 굿에 대한 관념론이 굿에 현상적으로 심취하고 학문적 얼개로 이해하려 한 우리 문화계의 굿 전문 학자들의 상당수 견해임을 근래에 들어 느끼고 있다. 무서운 관념의 오류다. 바로 이런 관점이 더욱더 굿과 연극, 굿과 일상의 거리를 멀게 해 버린다. 단적으로 말해서 굿은 우리 민족의 원형 연극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굿은 바로 연극 그 자체였다. 굿이 부첩, 쉽게 말해서 부적의 기호학이 아닌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굿이 바로 우리의 연극이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술로 승화시키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라 억지로 서구 예술 미학적 규범에 적용시킨다 하더라도 이미 당대 예술로 만들어져 있던 연극이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 - ‘굿과 연극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하여’, 이윤택(극작가, 연출가), <한국연극>, 1990.8 (……) 양 씨의 논쟁은 ‘굿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놓고 “굿은 굿일 뿐이다”라는 이상일 씨의 주장과 “굿은 연극이었다”라는 이윤택 씨의 주장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올바른 논쟁 구도는 당연히 ‘연극이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굿 정신은 곧 리얼리즘 정신이다. 굿 정신과 리얼리즘 정신이 하나로 이해될 때에만 굿은 단지 연극 ‘이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연극 ‘이며’, 마찬가지로 연극 또한 굿일 수 있다. (……) - ‘굿과 리얼리즘 – 이상일, 이윤택 씨의 논쟁에 부쳐’, 조준현(연출가), <한국연극>, 1990.9 (……) 우리가 삶으로부터 억압과 고통을 느끼게 될 때 본능적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작용하게 되며 이 욕구는 바로 굿의 원천이 된다. 삶에서 맺힌 고통을 풀어주는 것이 굿의 원리이며 이 고통을 풂으로써 굿판은 응집력을 발휘하게 되고 역동감과 생명력을 갖추게 된다. 종교적 제의의 형태를 빌리건 또는 예술적 유희의 형태를 빌리건 본질적으로 해방에의 욕구가 그 모든 행위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욕구는 신명이라는 현상으로 분출된다. 고통이 깊으면 해방되려는 욕구도 강해지고 따라서 신명도 높아지게 되는데 한 것 높아진 개개인의 신명은 한데 모아져서 집단적 신명풀이로 진행되고 이 집단적 신명은 민중들의 해방을 위한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된다. (……) - ‘굿, 민족극, 리얼리즘’, 김명곤(극작가, 연출가), <한국연극>, 1990.10 (……) 김명곤 씨의 반론에 뒤이은 이상일 씨나 다른 연극인들의 공식적인 재반론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어 ‘굿과 연극’ 논쟁은 일단락된 듯하다. 공교롭게도 1990년대의 첫머리에 벌어진 이번 논쟁은 앞으로 전개될 한국 연극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1990년대에 더욱 활발해질 남북 교류나 통일 논의와도 관련되어 주목된다. 그리고 민족극을 통일을 향한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하는 젊은 연극인들과 아직은 미숙한 듯이 보이는 이들의 연극행위에 대한 기성 연극인들의 ‘불신과 비판’이 침묵을 깨고 표출됨으로써 양측의 입장이 분명해지고 앞으로의 보다 활기차고 진전된 논의의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 - ‘민족극의 새 단계 … 굿 논쟁’, 정지창, <한국논단>, 1991.1
관련도서
<극단 아리랑 10주년 기념 희곡집2 – 격정만리>, 극단 아리랑 편, 공간미디어, 1996 <한국연극>1990년 7월~10월호, 한국연극협회
연계정보
-오구-죽음의 형식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유랑의 노래
-정약용 프로젝트
-극단 아리랑
-연희단거리패
-마법의 동물원
-갑오세 가보세
-아리랑
관련사이트
극단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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