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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민예극장

단체명
민예극장
장르
극단
개요

민속극을 포함한 전통 문화 속에서 연극의 소재와 형식을 빌려와 무대화하는 작업을 지속한 극단이다. 전통연희의 형식적 요소의 발견을 통해 그 현대화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다. <서울말뚝이>,<물도리동>, <다시라기> 등의 작품에서 민속극이자 총체극의 형식미를 보여주었다. 창단 대표인 허규는 민예극장의 사명을 ‘전통문화 가운데 연극적 유산을 현대적 한국 극장 예술로 정립’하는 것이라 밝혔다.

해설

1973년 5월 3일 국립극장장을 역임(1980)한 허규를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연극인들이 민족극 정립과 전통예술의 현대적 조화, 그리고 연극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목표로 창단하여 명동예술극장에서 <고려인 떡쇠>를 공연함으로써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서울 말뚝이>, <놀부뎐> 등을 통해 한국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였고, 가면극, 인형극, 판소리 연구에 힘쓰는 한편 전통, 의례, 민속, 설화, 민속놀이 등을 소재로 전통극적인 요소들을 발굴하여 현대적으로 수용하고, 재창조작업을 하여 민속극 정립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1987년 대학로에 마로니에 극장을 마련, 현재까지 운영해 오면서 연극인들에게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고, 전 단원이 탈춤, 판소리 등 전통예술을 전수하면서 우리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70년대 민족극 정립을 목표로 출발한 이러한 활동은 한국 연극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88올림픽을 전후하여 국민 모두가 우리의 전통과 우리의 것 찾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됨에 따라 글 결실을 맺게 되면서 한국연극사 및 예술사에 큰 획을 긋는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30여 년의 세월의 흐름 속에 창단대표인 허규에 이어 정현, 손진책, 구자흥, 강영걸, 공호석, 이태훈 등이 대표직을 맡아 극단을 운영하였으며, 2004년 현재 정현이 대표직을 맡아 그 이념을 펼치고 있다.

고려인 떡쇠

극단 민예극장의 창립 대공연 <고려인 떡쇠>는 고려시대 함길도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그러나 왕실이나 정치적 표면에 나타난 눈에 띄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 저변을 차지하고 있는 백성들 쪽에 초점을 맞춰 거기서 현대 정신으로 이어지는 백성의 외침을 부각시키려 한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다. 고구려말 국세가 기울면서 외세의 침입이 잦고 민심은 흉흉한데 왜구를 치러간다고 속이고 군사를 일으켜 왕위를 노리는 사또 이숭 일당과 주체의식이 확고하고 자유의지를 지닌 한 고려인 떡쇠가 결국은 맞부딪치게 된다. 이숭은 떡쇠의 칼에 목숨을 잃고 떡쇠는 군졸들의 칼에 무수히 찔리고 베여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 어지러운 틈을 이용하여 왕을 자칭하고 나선 이숭의 부하 방가이는 떡쇠의 시체를 장거리에 내걸고 백성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명한다. 그러나 사면에서 날아오는 돌은 모두 떡쇠가 아닌 방가이를 향하고 있었다.

물도리동

<물도리동>은 국보 제121호인 경북 안동 하회동의 별신굿탈 제작자로 전해진 허도령 설화를 극화한 것이다. 고려 말엽 지금의 경북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물이 돌아 흐르는 마을)에서 죽은 총각 혼령에게 새색시가 시집가게 된다. 그녀가 비관 끝에 자살하려고 강물에 뛰어들 때 마침 이 마을에 사는 허도령이란 총각이 그녀를 구해주어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즈음 우연하게도 별신굿재비를 보관해 두는 동사가 원인 모르게 불타 별신굿 탈이 모두 타버리고 온 마을에 괴질이 돌아 지옥같은 형국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각시와 도령의 불륜 때문에 일어난 흉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별신굿을 주재하는 산주에게 정결한 총각을 뽑아 별신굿탈을 만들어 바치라는 서낭님의 내림이 있게 된다. 마을의 총각 여럿 중에서 허도령이 내림을 받아 산중에 장막을 쳐놓고 그 속에 갇히게 된다. 산주에게 내린 현몽에 의하면 탈을 만든 총각은 탈이 완성된 후 죽게 된다는 믿기 어려운 그러나 믿어야 하는 비극적 결말이 전제돼 있다. 도령은 인간이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때 죽음의 불안을 극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하고, 혼신의 힘으로 탈을 완성한 후 영원한 평화와 자유를 찾아 저승으로 떠나게 된다.

서울말뚝이

무주 구천동 어느 양반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종놈 말뚝이가 양반들의 못된 짓에 분격하여 종문서를 훔쳐들고 서울로 도망을 오는 데서부터 극은 시작된다. 이어 양반 형제가 말뚝이를 잡으러 뒤쫓아와 곳곳을 헤매다 우연히 술집여자 덜머리네를 만나게 되어 말려들고 덜머리네의 권유로 말뚝이를 대신 잡아줄 그녀의 기둥서방 천하 한량을 소개받는다. 천냥에 말뚝이를 잡아주기로 약속한 한량은 마침내 말뚝이를 잡으나 오히려 그에게 설득당하고 말뚝이와 함께 사자탈을 쓰고 양반 형제를 골탕먹이고 재산을 몽땅 빼앗은 후 쫓아버린다. 그러나 갑자기 돈이 많아진 천하 한량이 견물생심으로 말뚝이를 그의 종으로 삼으려 하자, 분기탱천한 말뚝이는 인간은 원래가 평등한 법이라면서 한량과 돈만 아는 덜머리네를 말채찍으로 쳐서 뻗게 하고 죽어서라도 참된 인간이 되라며 회심곡을 불러준다. - 1981년 제5차 제3세계 연극제 및 회의 프로그램

고추말리기

극단 민예의 28주년 기념공연으로, 선욱현 작, 정현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남아선호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 황씨 가문의 8대 독자, 황수남. 그는 스무살에 장가가 지금이 서른인데 벌써 딸만 내리 다섯을 보았다. 하지만 극성스런 수남의 모친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무조건 밀어붙일 셈이다. 그런데 모친은 다섯째 손주딸이 태어나던 산부인과에서 해괴한 일을 접한다. 딸을 낳으면 순산인데, 아들을 낳는 산모는 중태에다가 아이는 무조건 죽어 나오는 것이다. 이 변고를 보고는 곧장 단골 주치의 아닌 주치무당인 홍장군을 찾아간다. 홍장군, 홍씨는 미연이라는 낙태귀의 소행이라고 알려준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축생을 떠돌고 천신만고 끝에 태중에 들어갔으나, 딸이라고 중절하여 그 혼이 폭발할 지경에 이른 이 여자 귀신이 그런 해꼬지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게다가 삼신할매까지 세상 바깥으로 나와 현재는 녹번 전철역에서 구걸 행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새는 사람들이 삼신할매 몫을 다 해버리니 화가 나서 아들 딸 점지의 본분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와 버렸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녹번역에는 늘 “미연이 못봤어?”라고 외치는 괴할매가 있다. (……) - <고추말리기> 팸플릿

허규 (1934~2000)

1934년 경기도 고양 출생. 서울대 농대 임학과를 거쳐 경희대 국문과를 1970년에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연극회에서 연극연출을 수업하고 제작극회 연구동인, 실험극장 창립동인, 청주여사대 강사를 거처 1973년 극단 민예의 대표가 되었다. 1960년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으로 연출가로 데뷔하였으며,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연극제에서 실험극장의 <리어왕> 연출의 성공으로, 같은 해 국립극단 공연 <순교자> 연출을 맡았다. 1960년대의 그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 영향을 받아 비사실주의 경향의 연출수법을 시도했으며, 1960년대 말부터 한국고유의 연극술을 도입하는 등 현대연극에 우리의 전통극을 수용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민예극장을 창단하면서 그는 단원들에게 탈춤, 판소리, 무속예능, 시조 등의 실기를 훈련시켜 우리의 고유하고 독창적 연극을 창안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1977년 <물도리동>으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으며, 1979년 <다시라기>로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연극 외에도 KBS, MBC, TBC에서 PD 겸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 대표작품 <수업> <돈키호테> <허생전>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고려인 떡쇠>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강영걸 (1943~ )

1943년 서울 출생의 연출가. 1970년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 <버스 스탑> 연출로 데뷔하였다. 극단 민예극장의 대표와 한국연극연출가 그룹 회장을 역임했으며 극단 민예극장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였다. 1989년 한국연극예술상, 1990년 백상예술상 연극연출상과 LA 올해 예술가상, 1994년 국립극장 올해의 연출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대표작품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불 좀 꺼주세요> <돼지와 오토바이> <피고지고 피고지고> <그 여자의 소설>

민예극장의 창단 선언

1. 우리는 연극예술을 통하여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고, 관객과 함께 자기를 계발하고 초극하기를 열망한다. 2. 우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극예술을 창조하기 위하여 독창적인 연극기호를 창안한다. 3. 우리는 이제까지 인류가 이루어놓은 모든 연극의 역사적 기술을 창조의 소재로서 수용한다. 4. 우리는 이념, 행동, 기술의 삼위일체로서의 자기 능력을 연마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의 영원한 승리를 확신하는 적극적 행동으로서의 연극을 행한다. 5. 우리는 관객을 진정한 사랑으로 고무시켜 감동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6. 우리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력을 신뢰하여 총화의 노력으로 예술무대를 창조한다.

1973년 5월 민족연극의 정립을 위한 전통연극의 현대적 조화를 목표로 창립한 이래, 대소 56회의 공연을 가졌으며 한국의 독자적인 연극을 위한 작업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민속놀이와 전통극적 요소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민예소극장을 중심으로 발표하면서 그것의 연극적 기능을 분석, 검토해 오고 있다. 이외에도 수차의 마당극(야외 공연)과 전국 각지 순회 공연 등으로 관객의 폭을 넓히고 있다. 주요 공연작품에 한국의 독창적인 판소리극 <놀부뎐>, 탈춤극 <서울 말뚝이>, 전통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 창작 판소리 인형극 <토생전>, 한국적 음악극을 시도한 <한네의 승천>, 창작 탈놀이극 <창포각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수상작 <물도리동>, 진도의 민속놀이를 극화한 <다시라기>, 강원도 민요를 극화한 <애오라지> 등이 있다. - 1981년 제5차 제3세계 연극제 및 회의 프로그램

관련도서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연극인 허규 연구’, 윤현식, <연극학과> 제32호, 동국대학교연극영화학과,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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