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사이트맵

예술지식백과

  • 연극
  • 음악
  • 무용
  • 미술
  • 영상
  • 문학
  • 건축
  • 축제·문화
  • 예술용어사전

연극

여인극장

단체명
여인극장
장르
극단
개요

1966년의 연극계에는 새로 생겨난 극단이 13개나 될 정도로 연극의 발전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여인극장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나온 단체인데, 여성들로 이뤄진 집단이라는 점에서 창단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려 시도했으며, 사실주의 계열의 번역극을 지속적으로 공연했다.

해설

신협 출신인 강유정은 동국대학 시절부터 창단 준비를 했다. 여인극장은 1966년 10월 3일 당시 후원회 회장이었던 김미회 회장 자택에서 창단식을 갖고 극단을 조직했다. 조직원은 다음과 같다. 대표 : 강유정 운영위원 : 강유정, 김정수, 이옥경 단원 : 전윤희, 강추자, 임영자, 김혜숙, 선우용녀, 정은숙, 김복희, 서계영, 김성진, 김영애, 김화자, 진랑, 이순녀 후원회장 : 김미회 여인극장의 창립공연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로, 이진순이 연출해 1966년 11월 국립극장에서 올렸다. 창립 공연부터 남자 연기진의 문제가 야기됐다. 그래서 극단 광장과 KBS 배우들의 찬조를 받았다. 여인극장은 창립공연때부터 리얼리즘 극으로의 의지를 표명했는데, 이에 대해 여인극장의 대표 강유정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 어떤 연극 양식이건 복합적인 현실의 리얼리티가 압축되어 있어야 한다. 서구의 방법론을 한국의 리얼리티에 대한 논의 없이 무대에 올린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연극은 약속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행해진 연극 양식이 이 사회의 성숙도(질서라는 차원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면 다수의 관객은 연극을 통해 혼란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양식이 허락되는 현대에 일련의 서구식 부조리극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질서가 단단한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논리의 비약을 통해 진실을 꿰뚫어보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 - ‘강유정 인터뷰’, <한국연극>, 1982년 10월 여인극장은 이후 <셰익스피어의 여인들>에서 오필리어, 쥴리엣, 클레오파트라, 데스데모나, 캐서린, 포셔 등 여섯명의 여자들이 줄리엣의 집에 모여 로미오와 사랑에 빠진 줄리엣에게 충고를 해준다는 설정의 작품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그대로 튀어나오고 있다. 이 작품은 1967년, 1969년, 1972년에 공연돼 여인극장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다. 여인극장은 주로 여성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작품들을 공연했다.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윌리암 깁슨 작, 조민 연출)의 경우 어렸을 때 병으로 청각과 시각을 잃은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무대화해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올페의 후예>, <이구아나의 밤>, <지난 여름 갑자기>, <고해> 등을 되풀이해 공연했다. 심정순은 연출이 “인물간의 갈등의 본질을 통찰력 있게 파악, 섬세하게 무대에서 구체화하고 있다”고 하며, “블랑쉬와 스텔라 간의 장면들에서 보여주는 여성세계와 여성의 문화는 여성 연출가가 아니었으면 간과했을지도 모르는 부분들로 자연스럽게 무대화”했다고 설명했다. 여인극장의 또 다른 레퍼토리인 서머셋 모옴의 <아내란 직업의 여인>(강유정 연출)은 “오도독한 수법으로 차분하게 밀고 나갔다. 우선 연출의 에이비시라는 문법적인 기본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무대에 형상화해 놓았는데, 특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부정할 때 그 앞을 가로지르는 동작선은 훌륭했다”(김경옥, <한국연극>, 1976년 8월)고 평가받았다. “여성을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 속에서의 여성으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여성 표현에 주력했다”(강유정 인터뷰, <한국연극>, 1982년 10월)는 여인극장은 1940년대 활약했던 여성들의 연극 단체 여인소극장과 연극사적 맥을 함께하는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산국

두 아이를 데리고 왜병을 피해 피난을 떠난 유생의 가족들은 도중에 흩어지게 된다. 할머니와 며느리는 친척집을 찾아나서고 몸종은 없어진 유생을 찾아 나선다. 몸종은 선비가 두 아이들과 함께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맨손으로 땅을 파서 그 시체들을 묻어 주고 돌아오게 되는데, 현장을 목격한 농부아내와 그의 딸에게 그 일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한다. 피난 도중 왜병들에게 거의 들키게 되자 몸종은 자신을 희생해서 나머지 일행을 구한다. 농부는 할머니의 계속되는 면박에 참다 못해 유생과 아이들의 죽음을 발설한다. 며느리는 비보를 듣고 벼랑에서 자살한다. 여자들은 왜병들이 의병을 포위하려는 것을 알고 봉화불을 신호한 뒤 할머니는 자살하고 농부 모녀는 왜병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

(……) 비교적 공감 있게 진행됐으며, 클라이막스에선 작품이 갖고 있는 감동도 무리 없이 전해준 무대였다. 연출자는 마지막 부분 헬렌의 첫발음의 감흥을 무대 위에서 직접 펌프질을 해서 물길을 쏟아져 나오게 함으로써 묘한 촉매제 역할을 하게 했다. 다만 2층 무대와 양편에 놓인 작은 세트를 조명으로 옮기면서 진행한 연출은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선 무리가 있었고, 간혹 삽입된 해설부분과 제임스와 그의 양어머니인 케이트 사이의 얘기 등은 극 전개에 구태여 필요없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에선 이주실의 열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어필되는 연기를 보이지 못했고, 김미영 또한 열 대여섯 살의 아역으론 무리가 있었다. 케이트 역의 김유선이 오히려 극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간 감이 있었다. (……) - <한국연극> , 1978년 1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극단 여인극장의 대표적 레퍼토리. 여인극장의 제 10회 공연으로 국립극장에서 상연됐다. 10회째가 되는 여인극장의 이번 공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이제까지 별로 뚜렷한 작품을 보여주지 못한 듯한 인상을 준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어 줄 만한 공연이었다. 잘 짜여진 무대, 자신의 역을 잘 소화해 준 여러 연기자들의 앙상블, 무리 없는 동작선은 극 분위기를 부드럽게 감싸 준 음악 효과와 함께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줄 만하였다. 특히 최선자(블랑쉬), 신구(스탠리), 그리고 김혜숙(스텔라)의 호연은 괄목할 만하다. 연출에 대해서는 다소 불만이 있다. 예컨대 블랑쉬의 숨겨졌던 과거를 폭로하는 장면에서 스텔라의 반응이 너무 희미하고, 미치가 블랑쉬를 질책하는 심정의 농도가 너무 엷기 때문에 그 뒤 블랑쉬가 정신분열을 일으키게 된 과정의 계기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든지, 미치와 결별하기 직전의 블랑쉬의 내적갈등을 묘사한 판토마임이 좀 길어져 모처럼 잡은 관객의 긴장감을 해이하게 한 것 등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퍽 성공한 공연이었다. (……) - <서울신문>, 김문환, 1969년 12월 9일

풍금소리

윤조병 작, 강유정 연출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올라간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탄광 사고로 외팔이가 된 천덕이는 사고 후 아내가 도망치자 연일 술만 마시고, 창호는 그를 위로한다. 탄광촌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풍금할멈 길녀는 마을에 신기료 영감이 들어오자 갈 곳 없는 그를 따뜻하게 대접한다. 길녀와 소꿉친구였던 감꽃할멈 분이는 자신의 며느리인 젊은 과부 영재네의 행실이 좋지 못하다며 길녀에게 하소연한다. 길녀의 손녀딸 신옥은 기다리던 교사 발령이 났다며 기뻐하고, 길녀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축하파티 준비로 분주해진다. 길녀의 다방에 풍금 소리를 들려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길녀는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전화 수화기에다 풍금을 연주해 준다. 다방에서 일하는 옥희는 창호를 좋아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애만 태운다. 파티 준비로 분주한 다방에 길녀의 아들과 창호가 일하던 갱도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길녀의 아들과 창호는 가까스로 구출되지만 결국 죽고 만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천덕이의 만가 소리에 맞춰 상여에 실려 나간다. 분이는 큰 사고에도 동요없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길녀를 독한 사람이라며 욕하기 시작한다. 분이는 길녀의 과거를 들추어 내어 비방하며 동네 처녀들이 일곱 명이나 정신대로 끌려간 것은 길녀의 짓이라고 말한다. 길녀와 분이는 서로 묵은 감정에 북받쳐 부둥켜 안고 운다. 분이가 밝힌 길녀의 과거 때문에 교사 발령을 받은 신옥이 곤란을 당한다. 길녀는 자신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놓고 일제 시대와 미 군정 때 자신이 행한 일들은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음을 밝힌다. 길녀는 신기료 영감이 당시에 정보원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 지난 일을 다 밝힌 길녀는 다시 풍금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강유정 (1932~ )

1955년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콜롬비아대 사범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연극반에서 연극을 시작했으며 1950년 신극협의회에 입단했다. 1966년 여성 극단인 ‘극단 여인극장’을 창단했다. 1978년 <산국>으로 대한민국연극제 작품상, 희곡상, 연극상을 수상했고 1984년에는 <모닥불 아침 이슬>로 백상예술상 대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세계여성연극인협의회 이사, 한국여성연극인회 회장, 세계여성극작가대회 한국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극단 여인극장의 대표 겸 연출가로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무대에 올리고 있다. · 대표작품 <모닥불 아침 이슬> <풍금 소리> <키 큰 세 여자> <아름다운 여인의 작별> <마스터 클래스>

리뷰

연극이 연극인만의 전유물은 아니고 특정인의 애완품도 아니며, 오직 사회정신의 샘터로서의 대중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출범한 여인극장은 연극활동을 통하여 범국민 운동 · 범문화 운동으로서 국내외로 폭넓게 뻗쳐나갈 것을 다짐하는 취지문을 발표하였다. 여인극장은 그 취지문에서 “폭넓은 활동을 통하여 사회 명랑화 운동으로부터의 벅찬 작업에 커다란 봉사를 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극단 여인극장은 이름 그대로 여인들만이 뜻을 모아 모인 극단입니다. 여인이라 해서 연약한 자가 아닙니다. 여성만이 지닌 섬세한 끈기를 바탕으로 하여 살림꾼의 지혜를 총동원하자는 것이 이 집단의 자랑이라고 스스로 내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나라가 살림을 잘해야 하듯이 대중문화 운동에도 역시 살림꾼의 마음씨가 요구되지 않을까요? 우리 여인극장은 바로 그 살림하는 살림꾼의 집단을 자처하면서 좋은 살림살이, 보다 나은 살림꾼을 널리 펴나가자는 모토를 모두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여인극장은 연극을 위한 연극에만 심취할 유한계급이 아니며 또 그러한 유체집단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보다 생산적이고자 합니다. 밝은 사회, 웃음이 넘치고 생기가 도는 사회를 이룩하는데 힘이 되고 보탬을 준다면 얼마나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연극 중흥에 박차를 가하는 여인극장의 추진력은 연극의 효용증대에도 크게 작용할 것이라 굳게 믿는 것입니다. 좋은 일, 올바른 뜻이라면 연극은 얼마든지 수단으로 동원될 수 있는 일입니다. 목마른 대중이 있다면 그들의 목을 축여줄 것이요. 웃음을 잃은 민중이 있다면 그들의 표정 속에 미소를 담아주는 일이 바로 여인극장의 할 일”이라고 그들은 천명하였다. - 여인극장의 창립취지(정리 유민영, <한국연극>, 1982년 10월) 1966년 여류 연출자 강유정씨에 의해 창단, 운영되고 있다. 창단 당시 여성단원들로만 구성, 현재도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공연작품에 카워드 작 <장난꾸러기 유령>, 모옴 작 <아내란 직업의 여자>, 레오나르 작 <다> 등이 있고, 1979년에는 황석영 작 <산국>으로 미국 내 한국교포들을 위한 순회공연을 가졌다. 특히 윌리엄즈의 주요 작품을 연속 공연하여 한국 극계에 윌리엄즈를 널리 소개했다. - 1981년 제5차 제3세계 연극제 및 회의 프로그램

관련도서

‘극단 여인극장 史’, 유민영, <한국연극>, 1982년 10월 ‘강유정과의 인터뷰’, <한국연극>, 1982년 10월

연계정보
관련 멀티미디어
탑으로 이동
컨텐츠 상단으로 이동

이벤트에 참여하시려면 로그인하셔야 합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이벤트 페이지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