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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거대한 역사의 흔적 고인돌

제작
관리자
재생시간
6분 27초
등록일
2015-10-20
조회수
12617
자막보기

고인돌은 커다란 자연석이나 가공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로 선사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고인돌은 흔히 거석문화의 산물로 불리는데 거석문화는 인간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구조물을 축조하여 숭배의 대상물이나 무덤으로 이용한 문화를 말한다. 대체로 농경 생활에 기초한 정착사회단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고인돌에 대해 알아보고 구조의 특이함을 소개한다.
 

----------대본----------

제목 : 거대한 역사의 흔적 고인돌

자막 > 고창군 고인돌 유적지

내레이션 >
10월에 찾아온 태풍이 체 피지도 못한 코스모스들을 할퀴고 지나간다. 거친 표면에도 심술궂은 태풍은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쓰지만 왠지 오래전부터, 이들에게는 늘 자신이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태풍은 결국 기억해 낸다. 태풍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 지는 공간. 전라북도 고창군 고인돌 유적지에는 긴 시간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존재한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돌을 고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인돌은 단순한 바윗덩이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움직여진 흔적이 분명히 발견되는 일종의 구조물이다. 대부분의 청동기는 고인돌에서 출토되는데 연구자들은 고인돌을 지석묘라고 부르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형식으로 파악한다.

인터뷰 >
이영문 /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장 목포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고인돌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는 당시 사람들이 거대한 바위를 자신들의 무덤 또는 기념물로 사용하여 거석을 이용한 건조물, 암석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그것을 통해 모든 장례의식이 치러지고 이와 같은 모습은 당시 농경사회의 결집을 요구하는 하나의 의식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인돌 부장유물의 의미는 무기, 돌검이라든지 비파형 동검 또는 돌화살촉 같은 무기 성격이 강한데 무기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고 당시의 사회적인 지위를 뜻하는 의미를 가지는 유물입니다.

내레이션 >
박물관이 아닌 자연현장에서 마주치는 유일무이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며 그 축조 시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으로 추측된다.

자막 > 고인돌의 축조과정 1. 고임돌 세우기, 2. 고임돌 사이 흙 채우기, 3. 덮개돌 올리기, 4. 흙 제거하기

내레이션 >
고인돌의 축조과정에는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고임돌 세우기, 고임돌 사이에 흙 채우기, 덮개돌 올리기, 흙 제거하기 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막 > 고인돌의 형태
탁자식 고인돌 ? 잘 다듬어진 판돌을 세워 땅위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
바둑판식(기반식) 고인돌 ?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주의에 여러 개의 굄돌을 놓아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
개석식 고인돌  ?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

내레이션 >
고창은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가장 조밀하게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각종 형식의 고인돌이 다양한 크기로 존재하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들은 고창 외에 강화와 화순에 존재한다.

자막 > 강화군 부근리 고인돌

내레이션 >
특히,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형태로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추고 있다.

SC . 덮개돌 규모 6.4미터, 너비 5.23미터, 두께 1.12미터, 무게50톤

내레이션 >
높이가 2.45미터나 되는 고임돌 두 개가 땅위로 솟아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위에 길이 6.4미터, 너비 5.23미터, 두께 1.12미터, 무게가 무려 50톤이나 되는 덮개돌이 얹혀 있다. 덮개돌 과 2개의 대형 고임돌이 이어진 형태가 긴 통로를 가진 구조물을 연상시킨다. 지면으로부터 높은 곳에 수평으로 놓인 덮개돌의 형태가 위태로우면서 안정적이어서 신비하기까지 하다. 시신이 안치되는 돌방이 땅 위에 노출된 형태의 탁자식 고인돌은 대부분 일찌감치 도굴당하거나 훼손되어 부장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부근리 고인돌 역시 부장품이 없다. 무덤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어느 집단을 상징하는 기념물이거나 제단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자막 > 화순군 고인돌 유적지

내레이션 >
화순 고인돌은 비교적 최근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화순군은 고인돌 발굴 당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대신리 고인돌 발굴 보호각을 만들어 현장보존에 힘쓰고 있다. 화순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규모가 세계 최대라 할 수 있는 핑매바위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길이 7.3m 폭 5m 두께 4m 무게는 무려 28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자막 > 핑매바위 고인돌 길이 7.3m, 폭 5m, 두께 4m, 무게 280톤 고인돌 채석장

내레이션 >
화순 고인돌 유적지가 최근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고인돌 주변에서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채석장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채석장 아래에는 덮개돌의 채석 흔적과 채석하다 중단한 석재 등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여러 형태의 고인돌이 있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이나 고인돌 축조에 따른 일련의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밀집도나 규모면에서 세계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고인돌 문화를 가지고 있다. 초기 공동체 사회의 힘과 결집, 협동의 산물이었던 고인돌. 단순히 거대한 바위가 아니라 고인돌은 고대인이 행했던 움직임의 흔적이며 유구한 우리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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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포털 gre******* 2013-11-01 14:47:45

    고창은 청보리 축제 때 가보곤 못 가봤는데 언제 고인돌 보러 답사도 한 번 다녀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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