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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작품/자료명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장소
삼일로 창고극장
작/연출
프란츠 카프카
장르구분
1970년대
출연/스태프
* 출연 피터/추송웅 (1인극) * 스태프 장치/추송웅 분장/추송웅
내용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를 각색한 작품으로 추송웅의 연극배우 생활 15년을 자축하는 공연이었다. 추송웅이 제작, 기획, 연출, 장치, 연기 1인 5역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이 작품은 1977년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시작하여 1985년 까지 500회 이상 공연되었고 15만명 이상의 관객이 동원되었다. 아프리카 황금해안에 살던 원숭이가 하겐베크라는 회사가 이끄는 사냥탐험대의 총을 맞고 생포되었다. 원숭이는 빠져나갈 구멍이 아무데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인간세계에 적응하기로 결정하고 인간 세계의 모든 습성들을 배워간다. 조금씩 원숭이의 본성을 잃어가나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된 것도 아니다. 철창으로 된 동물원이 싫어 서커스를 택하나 그곳도 찾고 있는 출구는 아니다. 밀림에서 잡혀와 서커스의 스타가 된 원숭이, 빨간 피이터가 학술 회원 앞에서 그가 인간화하기까지의 수많은 노력과 좌절을 보고한다.
예술가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883~1924)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한 극작가. 1901년 프라하대학에 입학, 아버지의 뜻대로 법률을 공부하여 법학사가 되어 민사재판소에서 법무실습을 하면서 법관과 작가의 진로를 놓고 고심하다가 1908년 노동자 상해보험협회에 취직하여 평생을 이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1909년 <어떤 싸움의 수기>를 발표하고 1916년에는 <변신> <판결>을 출간하였다. 1917년 폐결핵 판정을 받고 요양생활을 하며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집필하였고 1924년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추송웅(1941~1985) 1941년 9월 3일 경남 고성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9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첫회 입학생으로 들어가면서 ‘은하수극회’ ‘섹스피어 클럽’ ‘화이트웨이’ 등의 연극 동아리를 조직하여 연극활동을 시작하였다. 63년 극단 ‘민중’ 창립공연인 <달걀>로 데뷔하였다. 그 후 <빠담빠담빠담> <대머리 여가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세빌리아 이발사> <보이체크> 등 다수의 연극에 출연하였다. 특히 <보물섬> <올리버> <파랑새> 등의 어린이뮤지컬에도 출연하였다. 71년<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와 73년<세비야의 이발사>로 동아연극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79년에는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으로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연극영화상 최우수남자연극연기상을 수상하였다. 82년 ‘추송웅 액터즈 스튜디오’를 개설하였고 영화와 TV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85년 12월 급환으로 타계하였다. 대표작품 <동물원 이야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세빌리아의 이발사>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우리들의 광대>
작품평가
추송웅의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은 제작부터 연출, 연기까지 추송웅 본인이 직접 담당함으로 인해서 ‘추송웅이 혼신의 힘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은 인정받았으나 객관적인 연출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카프카 작품에 대한 진지한 해석 없이 원숭이 동작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배우 한 사람만의 공연으로 한 해 163회 공연, 8만 5천명의 유료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한 이례적인 공연이 되었지만 이것으로 인해 ‘상업주의 연극의 원흉’ ‘관객의 거짓 욕망에 야합하는 배우’라는 호된 비판 또한 받게 된다.
수상현황
- 1979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최우수 남자연기상 수상
재공연
- 1977년 10월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김승수 연출, 극단 프라이에 뷔네 - 1977년 11월 11일~29일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삼일로 창고극장, 추송웅 연출 - 1980년 4월 21일~6월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쌀롱 떼아뜨르 추, 추소웅 연출 - 1982년 3월 10일~31일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추송웅 연출, 현대극장 - 1982년 11월 11일~12월 10일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추송웅 연출, 현대극장 - 1985년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새로운 보고> 김승수 연출, 우리극장 - 1985년 8월 20일~9월 2일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추송웅 연출, 극단 떼아뜨르 추 - 1987년 6월 9일 <침묵의 빨간 피터> 한국현대마임농아극단 - 1988년 6월 24일~30일 <피터가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 문예회관 소극장, 백진기 연출, 에저또 - 1988년 11월 24일~1989년 1월 4일 <빨간 피터의 고백> 김인성 각색, 류중열 연출, 배우극장 - 1990년 1월 7일~10일 <빨간 피터의 고백> 손상권 연출, 현대극장 - 1993년 11월 12일~12월 9일 <빨간 피터의 고백> 손상권 연출, 현대극장 - 1996년 7월 26일~ <빨간 피터의 고백> 뚜레박 소극장, 이재환 연출, 뚜레박 - 2001년 <빨간 피터의 고백(재구성)> 소극장 떼아뜨르추, 추상록 연출, 떼아뜨르추 개관기념공연, 디지털 영화와 라이브 음악의 이색 공연.
평론
1백 50석 정도의 소극장에서 한 배우가 1인극을 하여 한 달 동안에 1만 명 이상의 유료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은 확실히 놀랍고 이상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연극 관객이 폭넓은 나라에서라면 몰라도 불과 2만명도 안 되는 우리 실정에 추송웅의 이번 공연은 기적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추송웅 ‘모노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면에서 분석될 수 있으리라. 첫째는 그의 무대배우로서의 개인적인 마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그로테스크’한 용모, 즉 희극적인 면과 비극적인 면, 허약함과 공포스러움의 양면성, 그리고 어딘가 한구석이 부족한 듯한 몸짓으로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연기가 ‘팬’을 만든다. 비록 그가 독특한 마스크에다 독특한 발성을 갖고 가장된 표현을 하지만 그래도 그는 무슨 작품의 무슨 역을 맡아도 독자적으로 해석·소화해 내는 문학적 감각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평범하지 않는 추송웅의 매력이 평소부터 많은 팬을 갖게 한 것이다…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1981년, 유민영) 카프카 원작 <빨간 피이터의 고백>은 추송웅이 혼신의 힘으로 만든 작품이다. 빽빽이 둘러싼 관객들의 열기와 추송웅의 온몸에서 풍기는 땀냄새가 짜릿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작품이 주는 감동이기에 앞서 연극예술을 만드는 예술가의 인간적인 열의가 주는 감동이다. 실제로 이 연극은 관객수나 추송웅의 열연에 비하면 작품 자체의 예술성은 그다지 높이 평가할 수 없다. 사람으로 바뀐 원숭이를 통해 변신이라는 주제를 나타내 보이려고 하였지만 우선 그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무대에 형상화시키기 위한 구조적인 설명조차 빈약한 편이다. 연기자 한 사람의 주관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제삼의 눈이 필요하다. 그것을 연출이라고 부른다면 추송웅의 경우에는 연출마저 스스로 맡고 나섬으로써 작품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통로를 막았다. 그런 점에서 대국적으로 작품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므로 추송웅은 오직 자신의 연기를 창고극장에 제물처럼 바친다. 그러니까 예술로서는 미진한 작품을 정성스럽게 공연함으로서 관객들을 전율하게 한 셈이다… (<뿌리깊은나무> 1977년 10월호, 이상일)
관련도서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마르트 로베르, 동문선, 2003. <카프카의 편지> 프란츠 카프카, 변난수/권세훈 역, 솔, 2002.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추송웅, 기린원, 1981. <추송웅 연구> 안치운, 청하, 1980.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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