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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저자
윤동주(尹東柱)
생애(1917~1945)
아명은 해환(海煥).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처녀작은 15세 때 쓴 시 <삶과 죽음>, <초한대>이며, 발표된 작품을 살펴보면, 중학시절 당시 간도 연길에서 나온 <가톨릭 소년>에 실린 동시 <병아리>·<빗자루>(1936), <오줌싸개 지도>·<무얼 먹구 사나>(1937) 등과, 연희전문학교 시절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에 시 <자화상>, <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1948년 그의 유고를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되면서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시 76편, 동시 35편, 수필 5편 등 총 116편의 작품을 남겼다. 윤동주의 시세계는 동심지향과 실향의식, 그리고 속죄양 의식으로 특징지어지는데, 그의 많은 작품에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양심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아에 대한 ‘부끄러움’이 내재되어 있다. 습작기라고 할 수 있는 1934년부터 1936년까지의 시 중에서는 <삶과 죽음>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삶과 죽음, 또는 빛과 어둠의 갈등이 묘사되고 있는데, 시적 짜임새에 있어서는 다소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1937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불안감과 자기 성찰의 시를 보여준다. 그는 자전적이고 내성적인 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을 둔 실존적 윤리의식, 그리고 시대와의 갈등에 성실했던 민족의식을 나타낸 시를 썼으며, 이러한 주제를 고도의 상징과 은유적 기법으로 독특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한국시사에서 귀중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가 민족저항시 범주에 속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다소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육사와 함께 일제강점기 말기 민족문학의 부재 상태, 소위 암흑기를 훌륭히 극복한 민족저항시인으로 평가되는 것이 통설이다. 1942년에 씌어져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으로, 윤동주의 시에서 자주 보이고 있는 ‘양심의 거울’을 통한 자기 성찰의 시로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춰진 자아의 모습은 욕되다. 왜냐하면, ‘만 25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라는 절망적이고 ‘부끄런 고백’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뉘우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이면 밤마다’, 즉 어두운 현실이 거듭될지라도, 그 자기 성찰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말한다. 아무리 욕된 모습일지라도 그 ‘거울’을 통하여서만이 본질적인 자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닦아보면 민족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자책과 회한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목숨을 유지하고 사는 자의 모습이 ‘나타나 온다’고 노래하고 있다. - <한국명시해설>, 송하균, 국학자료원, 1998 (······) 윤동주는 내성적이며 자성적(自省的)인 시인으로 생각되어왔으며 그의 시에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논의하려는 내향적 의식은 시에 나타난 의식의 지향이 자아내적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의미한다. 비교적 초기작인 1935년 1월에 쓴 <거리에서>라는 시에서 윤동주는 외부 세계의 풍경과 자아 내적 심정을 대조적으로 시화하고 있다. (······) 이러한 자아 내적 세계와 외부 세계와의 대비가 특징적으로 내향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1939년 9월에 쓴 <자화상>이다. (······) 윤동주 시에서 우리가 이러한 내향적 의식의 연장선을 이어보면 1942년 1월에 쓴 <참회록>이 문제가 될 것이다. <자화상>에서 <참회록>에 이르는 의식의 흐름은 내향적 지향성이 개인의 내면적 세계에서 시대적·사회적 의미를 포용하는 자성적 세계로 심화·확대되고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시(<참회록>)의 1연에서 화자는 자아의 욕됨이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러한 시인의 의식을 조명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것은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 녹슬어 불투명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리워져 있거나 오손되어 있는 거울은 자아를 밖으로 분명히 드러내려는 현재의 의식을 암시하는 매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내포적 의미는 제2연에서 ‘욕되다’라는 시어를 자성적인 성찰과 종교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참회”라는 시어 속에 함축시키고 있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참회는 비합리적인 세계를 사는 시인이 자아를 드러내는 역설적인 자기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의 복합적 의미는 지금 한 줄에 줄이려는 참회의 글에 미래의 즐거운 날에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는 심층적 의식에 있다. 현재의 참회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참다운 참회는 아니지만, ‘부끄런 고백’이라는 최소한의 영역에 자성적인 삶의 내면성을 확보한 시적 공간을 형성한다. (······) 그러므로 이 시는 참회의 진정한 의미가 현재의 자성적인 참회 자체가 반성되어야 한다는 내향적 의식 지향이 현재로 반향되어 되돌아 부딪쳐옴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전개가 어떤 작위적인 수사로 끝나지 않는 것은 다음에 오는 시의 후반부에서 느낄 수 있는 삶에 대한 인간적 성실성과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흐린 거울을 전심전력으로 닦아낸다는 화자의 진술은 자아 성찰의 성실성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러한 노력에 의하여 드러나는 ‘슬픈 사람’은 분열된 자아의식을 통합한 전체적인 것으로 제시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슬픈 사람의 ‘뒷모습’이 거울의 전면에 나타난다는 것은 자아를 인식하는 윤동주의 특징적인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곧 슬픈 사람은 시대적 상황에 의하여 표면에서 사라져가는 내성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제시되어 홀로 걸어가고 있다. (······) 전체적으로 보아 시적 자아의 통합적 심상이 결국 배면(背面)으로 사라져가는 인물로 거울의 전면(前面)에 제시된 것은, 현실이나 시대와 일치하지 못하는 서정적 자아의 내향적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에서 분석한 윤동주 시 의식의 지향성이 <자화상>에서 <참회록>의 세계로 결론되고 있음은 시사적이다. 전심전력의 자아탐구가 흐린 구리 거울에 투영되고, 그것의 욕됨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시대적인 번민과 더불어 욕될 수밖에 없을 시인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윤동주의 자아의 욕됨을 인식하는 것도 현실에서의 일이며, 그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현실에서의 일이라는 자의식의 이중성이 추출되며, 이러한 이중성이 현실에 대한 의식의 복합성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그러나 윤동주의 내적 자아는 도덕적 가치로도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었으며 현실에서의 정당한 자아실현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내적 자아는 외향적 의식과 동력적인 관계를 이루어 실존적 자아의 복합적 모습을 함축하게 되며, 부끄럼이나 욕됨은 이러한 심층적 의미를 포괄하는 도덕적 가치를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윤동주가 <참회록>을 쓰면서 적지(敵地) 일본으로 유학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한 듯하며, 그가 도달한 비극적 세계 인식에서 의식의 중심점이 자성적인 자아완성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는 시대적인 삶의 현실적 요구라는 관점에서는 안으로 내향화하는 성향을 가지면서, 자신을 지킨다는 근본적인 관점에서는 그것이 불합리한 시대를 사는 도덕적 인간의 내면적 자기 고백으로 수렴된다. 합리적인 세계에 도달하려는 인간적 노력이 현실을 영위하는 비합리적인 자아의 도덕적인 자기 반성을 통하여 투철하게 실존하려는 시적 승화를 윤동주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윤동주 시의 의식 현상’, 최동호, <윤동주 전집 2 : 윤동주 연구>, 문학사상사, 1995
작가의 말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濃灰色)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氣流) 가운데 자조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배태(胚胎)되고 이 어둠에서 생장(生長)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 속에 그대로 생존하나 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기는 나는 세기의 초점인 듯 초췌하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내 바닥을 반듯이 받들어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내 머리를 갑박이 나려 누르는 아모것도 없는 듯하다마는 내막은 그렇지도 않다. 나는 도무지 자유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없는 듯 있는 하로사리처럼 허공에 부유하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하로사리처럼 경쾌하다면 마침 다행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구나! 이 점의 대 위치에 또 하나 다른 밝음의 초점이 도사리고 있는 듯 생각한다. 덥석 웅키였으면 잡힐 듯도 하다. 마는 그것을 휘잡기에는 나 자신이 둔질(鈍質)이라는 것보다 오히려 내 마음에 아무런 준비도 배포치 못한 것이 아니냐. 그리고 보니 행복이란 별스런 손님을 불러들이기에도 또 다른 한가닥 구실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가 보다. (……) 나무가 있다. 그는 나의 오란 리웃이오, 벗이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성격이나 환경이나 생활이 공통한 데 있어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극단과 극단 사이에도 애정이 관통(貫通)할 수 있다는 기적적인 교분의 한 표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처음 그를 퍽 불행한 존재로 가소롭게 여겼다. 그의 앞에 설 때 슬퍼지고 측은한 마음이 앞을 가리군 하였다. 마는 오늘 돌이켜 생각건대 나무처럼 행복한 생물은 다시 없을 듯하다. 굳음에도 이루 비길 데 없는 바위에도 그리 탐탁치는 못할망정 자양분이 있다 하거늘 어디로 간들 생의 뿌리를 박지 못하며 어디로 간들 생활의 불평이 있을소냐, 칙칙하면 솔바람이 불어오고, 심심하면 새가 와서 노래를 부르다 가고, 촐촐하면 한 줄기 비가 오고, 밤이면 수많은 별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할 수 있고- 보다 나무는 행동의 방향이란 거치장스런 과제에 봉착하지 않고 인위적으로든 우연으로써든 자리를 지켜 무진무궁(無盡無窮)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햇빛을 받아들여 손쉽게 생활을 영위하고 오로지 하늘만 바라고 뻗어질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스럽지 않으냐. 이 밤도 과제를 풀지 못하야 안타까운 나의 마음에 나무의 마음이 옮아오는 듯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랑을 자랑치 못함에 뼈저리는 듯하나 나의 젊은 선배의 웅변이 왈(曰) 선배도 믿지 못할 것이라니 그러면 영리한 나무에게 나의 방향을 물어야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東)이 어디냐 서(西)가 어디냐 남(南)이 어디냐 북(北)이 어디냐 아라!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저야 할 곳에 떨어저야 한다. - ‘별똥 떨어진 데’, 윤동주, <정본 윤동주 전집 원전 연구>, 문학과지성사, 2004
관련도서
<정본 윤동주 전집>, 홍장학 편, 문학과지성사, 2004 <한국대표시인초간본총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남호 편, 열린책들, 2004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 황신영 외 편, 민음사, 1999 <윤동주 전집>, 권영민 편, 문학사상사, 1995 <현대시의 상상력과 동일성: 정지용, 백석, 윤동주, 전봉건의 시>, 박민영, 태학사, 2003 <윤동주와 한국문학>, 오오므라 마스오, 소명출판, 2001 <윤동주 평전>, 송우혜, 세계사, 1998 <윤동주>, 김학동 편, 서강대출판부, 1997 <윤동주>, 이건청 편, 문학세계사, 1992 <윤동주 시론집>, 마광수 외, 바른글방, 1989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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