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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탈놀이

흐름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전승되는 탈놀음으로 오래 전부터 음력 정초마다 마을 사람들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서낭신에게 지내는 별신굿의 일부로 진행되었으며, 해서지역의 탈춤이나 산대놀이, 야유, 오광대 등의 산대도감(山臺都監) 계통의 탈춤들이 장터 등에서 독립적으로 연행되던 것과는 달리 따로 탈놀이가 별도로 독립되어 연행되지 않는다. 하회별신굿탈놀이와 비슷한 서낭제탈놀이가 연행된 곳은 하회마을과 그 이웃의 병산 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의 별신굿, 강릉의 관노탈놀이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탈놀이 뿐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사용되는 탈은 오리나무로 만들어진 목제탈인데, 이 탈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고려 중엽 이전까지 하회마을에는 허씨들이 살았다. 이 마을의 허도령은 꿈에 신에게서 탈을 만들라는 명을 받아 금줄을 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 채 탈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허도령을 사모하는 처녀가 보고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허도령의 얼굴을 보려고 휘장에 구멍을 뚫고 방안을 엿보자 허도령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허도령이 죽기 직전에 만들던 탈이 이매탈이었는데,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이매탈은 미완성인 채 턱이 없는 탈이 되었다고 한다. 처녀가 이 때문에 고민하다가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처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서낭신으로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 하회마을의 별신굿은 이 서낭신에게 올리는 제의로 해마다 정월 보름과 4월 8일에 올리는 평상제(平常祭, 동제 또는 제사라고도 함) 외에 임시대제(臨時大祭)로 지내는 것이다. 10년에 한번씩(戊辰年에는 5년 만에) 지내며, 탈놀이는 이 기간 중에 연행된다. 별신굿은 신탁이 있어서 서낭신이 원하는 경우와 마을사람 중에 정신이상자가 나올 경우 등에 하게 되는데, 별신굿을 차고 나면 병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경비와 인원, 기원할 일들과 신탁이 모두 갖추어져야 별신굿을 거행하게 되는데 갑자년(甲子年, 1923년)과 서낭신의 회갑년인 무진년(戊辰年, 1928년)에 별신굿을 진행한 뒤 중단되었다. 별신굿이 중단되면서 함께 전승이 중단되었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76년에 1차로 복원공연이 이루어진 뒤, 1978년에 전국민속예술공연대회에 참가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고, 198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지정받아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내용
하회마을의 별신굿은 강신(降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구조로 진행되며 탈놀이는 그 가운데 신을 즐겁게 하는 절차인 오신(娛神) 행위에 해당한다. 즉 신을 즐겁게 함으로써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받고자 한 것이다. 별신굿이나 탈놀이는 하회마을에 거주하는 각성의 마을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유씨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또 무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들이 맡았다. 섣달 29일에 부정이 없는 사람 중에 배역에 맞춰 광대 12명과 산주 외에 유사 2명, 대메는 광대와 청광대, 무동꾼 등을 선정하고 광대로 선정되면 섣달 그믐날부터 모든 행사가 끝나는 만 15일간 합숙을 하게 된다. 따라서 광대로 참여하는 동안은 각 가정에서 모시는 정초 차례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채록본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무속신앙을 통해 재앙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것과 주지춤을 통한 벽사 행위, 승려의 타락상 풍자, 양반계급에 대한 조롱과 모욕, 관리들의 수탈에 대한 고발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탈놀이에 사용되는 탈은 오리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것인데, 이 가운데 양반, 중, 이매, 선비, 백정 등의 탈은 턱을 움직여 표정을 바꿀 수 있다. 초랭이와 이매탈은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탈인데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각시와 부네, 이매탈은 완전히 한국화한 탈로 여겨진다. 이 탈들은 평소에는 동사에 보관되나 별신굿을 지낼 때에는 오장치(짚으로 만들어 메는 용구, 오쟁이라고도 함)에 넣어서 청광대가 관리한다. 섣달 그믐날 광대들이 서낭당에서 하산하여 동사 앞에 이르면 오장치에서 탈을 꺼내 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춤은 문화재 지정 당시 기능보유자였던 이창희옹의 증언에 의하면 덧뵈기춤(몽두리춤 : 탈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듯이 추는 춤)이나 오금춤 정도였고, 가락은 세마치가락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사용되는 악기는 북 1개, 장고 2개, 징 1개, 꽹과리 8개(이 중 4개는 소리나지 않는 뚱매구임), 제파리 등이다. 또 풍물만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탈을 쓰는 광대들이 교대로 가락을 치고 무당들도 꽹과리와 장고를 치면서 탈놀이판의 장단을 맞추었다.
각 마당별 내용 및 등장인물(이두현 채록본, 1980 참조)
하회별신굿탈놀의 연희자 수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잃어버린 탈까지 고려한다면 대략 15명 이내로 볼 수 있다. 주지가면을 쓴 사람 2명, 무녀, 중, 각시,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떡다리, 할미, 별채, 총각 등이다. 이 가운데 떡다리, 별채, 총각 탈은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대내림(降神) : 강신마당음력 초이틑날 아침에 산주와 무녀, 광대 등이 서낭당(上堂)에 모여 제물을 차려놓고 내림대와 서낭대를 세워놓고 강신을 빈다. 서낭이 내리면 서낭대와 성주대를 모시고 국신당(國神堂, 中堂), 삼신당(三神堂, 下堂)을 다니면서 동네 안으로 들어와 별신행사를 거행할 장소에 서낭대를 세워 신령이 울리면서 극이 시작된다.무동마당 (舞童마당)탈놀이를 시작하려면 청광대가 마련한 섬에서 각자의 탈을 받아쓰고 탈놀이 준비를 하고, 자기 차례가 되지 않은 광대들은 농악을 울린다. 각시광대는 탈을 쓰고 무동을 탄다. 꽹과리와 채를 들고 구경꾼 앞을 돌면서 걸립을 한다. 걸립은 탈놀이 전마당을 마칠 때까지 수시로 행하여졌다. 각시광대는 무동을 타지 않을 때는 업혀 다녔다고 한다.주지마당주지는 곧 사자를 뜻하며, 주지놀이는 개장(開場)의 액(厄)풀이 마당이다. 누런 상포같은 것을 머리로부터 쓰고 두 손으로 꿩털이 꽂힌 주지탈을 든 한 쌍의 암숫주지가 나와 한바퀴 돌고 맞보고 춤을 춘다. 백정마당(白丁)마당백정이 나무로 만든 도끼와 칼을 넣은 망태를 메고 나와 한참 춤을 춘다. 이때 멍석을 사람이 써서 만든 소가 나온다. 백정이 ‘워, 워’하고 소 둘레를 돌다가 도끼를 꺼내어 땅을 두 세번 내리치면 소가 쓰러진다. 백정은 이어 칼을 꺼내어 우랑을 끊어 들고, 구경꾼들을 향해 ‘우랑사소’한다. 아무도 사지 않으면 더욱 큰소리로 ‘소부랄 사소’하고 외친다. 구경꾼들은 돈을 건네주고 우랑을 받는척 한다. (이것도 걸립의 일종으로 별신굿행사에 쓴다)할미마당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수건을 쓰고 허리를 들어낸 할미광대가 등장하여 살림을 산다. 베를 짜면서 한 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베틀가에 얹어서 부른다. 실제 베틀은 없었고 북만 쥐고 베짜는 시늉을 한다. 할미는 넋두리 같이 베틀가를 외우다가 말고 한숨을 쉬고 허공을 바라보고는 혼잣말로 ‘영감 어제 장 가서 사다 준 청어는 어제 저녁에 영감 한 마리 꾸어주고, 내 아홉 마리 먹고, 오늘 아직에 영감 한 마리 꾸어주고 내 아홉 마리 다 먹었잖나’ 하고 천천히 일어나서 춤을 추다가 구경꾼들 앞으로 다가가서 쪽박을 들고 걸립한다. 파계승(破戒僧)마당부네가 오금춤을 추면서 등장한다. 이어 오줌 눌 자리를 찾다가 사방을 살핀 후 엉거주춤 앉아서 치마를 약간 들고 오줌을 눈다. 이때 중이 등장하여 이 광경을 엿보고 염주를 만지며 합장한다. 이어서 부네가 오줌 눈 자리에 가서 흙을 긁어 모아 양손으로 코 가까이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으며 ‘허허허’ 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웃는다. 중은 손을 털고 부네에게로 다가가서 날렵하게 부네를 옆구리에 차고 도망간다. 이 놀이마당은 서로 대사가 전혀 없이 진행된다. 양반선비마당양반은 부채를 부치며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거만한 팔자걸음으로 나오면 하인이 초랭이가 뒤따르며 까불거린다. 이따금씩 양반의 뒤통수를 치는 시늉도 한다. 선비가 같은 방향으로 등장하면 부네가 뒤따른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서면 초랭이가 두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양반에게 말한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문자를 써가며 지체와 학식에 대한 문답으로 서로 다투다가 결국 양반이 선비에게 욕을 먹고 진다. 그러다가 양반과 선비가 서로 화해하고 부내와 초랭이까지 한데 어울려 신이 나게 춤을 추며 논다당제(堂祭)정월 15일 아침밥을 먹고 나서 서낭대를 모시고 서낭당에 올라가 당제를 베푼다. 제수로는 백설기 서너 말, 깍지 않은 삼실과(대추, 곶감, 밤)과 제주(祭酒)가 놓이고 참기름에 종이심지를 박아 불을 켠다. 산주와 유사 외에 부정이 없는 洞內 어른들이 제사에 참여한다. 당제가 진행되는 동안 구경꾼들은 멀리 서낭당을 둘러 싸고, 당제와 탈놀이를 구경한다. 당제행사를 마치면 서낭대와 내림대를 당 처마에 얹고 광대들은 각기 탈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유사와 광대 1명과 양반광대, 각시광대만 남는다. 혼례(婚禮)마당동네입구 밭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장고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그 위 꽃 갓을 하나씩 놓고 혼례상을 마련한다. 각시가 절을 두 번 하고 신랑이 절 한번하면 혼례마당이 끝나게 된다.신방(新房)마당신방마당도 같은 멍석 위에서 진행되는데, 절이 끝나니 신랑광대가 각시광대 위에 올라타면 각시광대가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면 신방마당이 끝난다. 신랑과 각시의 초야의 성행위를 모의(模擬)하는 것이다. 이 혼례마당과 신방마당은 17세 처녀인 서낭신을 위로하기 위해 치러지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豊饒儀禮의 뜻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신방마당이 끝나면 모든 광대들이 탈을 반납하고 귀가한다헛천거리굿신방마당이 끝나면 유사의 책임 하에 동리입구에서 무당들의 헛천거리굿이 진행된다. 무당 1명, 男覡 3명으로 별신굿을 하는 동안 묻어 들어온 잡귀 잡신들을 동네에서 몰아내는 굿이다. 한편, 유한상 채록본(1959)에서는 모두 12마당으로 강신-> 주지-> 삼석놀이-> 파계승-> 양반·선비-> 살림살이-> 살생-> 환재-> 혼례-> 신방-> 헛천굿-> 당제 순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에서는 강신->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 혼례마당 -> 신방마당-> 당제 순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승자 정보
현재 하회별신굿의 기능보유자는 이상호(백정), 임형규(상쇠, 초랭이), 김춘택(할미)이다. 이들 이전의 기능보유자는 이창희(1913~1996, 아명은 재수(再壽)) 옹으로 그는 1928년에 마지막으로 연행된 무진년 공연에서 각시탈로 참여하였다. 1959년, 1960년, 1964년의 세 차례 하회마을 조사 당시 마을에는 별신굿탈놀이에 참가했던 연희자가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었으나 1977년에 이르러 인근 마을로 이사하여 거주하고 있던 이창희 옹을 찾아내 그의 지도로 지금과 같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모습에 이르렀다. · 이상호(백정, 1945~ ) 30년째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에 힘을 쏟고 있으며, 백정으로 예능보유자에 지정되었다. 1973년 하회 가면극 연구회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88년에 보유자에 지정된 뒤 1996년에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 임형규(상쇠/초랭이, 1954~ ) 이상호와 함께 1973년 하회 가면극 연구회 창립 멤버로 활동했으며, 2000년 7월에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보존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전승과 보존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 김춘택(할미, 1950~ ) 이상호, 임형규와 함께 1973년부터 활동해왔으며, 2000년 7월에 할미역으로 예능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연계정보
· 재구성 <무형문화재지정보고서 제133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두현·심우성,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 6집 : 129~143, 문화재관리국 편저, 한국인문과학원, 1998 <한국예술사전(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 박진태, 새문사, 1990
관련도서
<무형문화재지정보고서 제133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두현 심우성,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 6집 : 129~143, 문화재관리국 편저, 한국인문과학원, 1998 <한국예술사전(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 박진태, 새문사, 1990 <구비문학개설>, 장덕순 외, 일조각, 1971
용어해설
별신굿 : 주로 동해안 지역에서 하는 마을제사로 유교식으로 진행되는 동제와는 달리 무당을 불러서 동제를 한다. 대게 3년마다 한번씩 일정한 계절에 한다. 제사를 지내는 달이나 날짜가 정해져 있거나 봄여름가을겨울 중의 한 계절이 정해져 있다. 마을에 따라서는 1년, 5년, 10년에 한번씩 하는 곳도 많다. 별신이란 특별신사(特別神祀)라는 뜻이 이어서 유교적이고 정기적인 동제와는 달리 특별한 의례라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덧뵈기춤 : 경상도 지방의 야유(野遊)나 오광대(五廣大) 등 탈놀이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춤사위를 말한다. 덧보기, 덧배기, 덧배기춤이라고도 하며, 6박의 굿거리 장단으로 무속음악의 살풀이 장단과 비교되는 잔 가락이 많은 흥겨운 춤이다. 들놀이나 대중놀이로서의 춤으로 의의가 크며, 양반이 추는 춤과 문둥이, 말뚝이가 추는 춤으로 구분된다.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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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관련사이트
하회동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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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 공방
관련사이트
탈춤/풍물 한마당
관련사이트
한국의 탈 (디지털 한국학)
관련사이트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재석 교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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