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작은 연가

작품명
작은 연가
저자
박정만(朴正萬)
구분
1970년대
저자
박정만(朴正萬, 1946~1989) 1946년 8월 26일 전북 정읍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8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신춘시>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집 <잠자는 돌>(1979),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1986), <무지개가 되기까지는>(1987), <저 쓰라린 세월>(1987), <혼자 있는 봄날>(1988), <슬픈 일만 나에게>(1988) 등을 발표하였다. 1981년 5월 한수산 필화사건에 휘말려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죽음을 예견한 듯 말년에 혼신의 힘을 다해 1년 사이 여섯 권의 시집을 내고 세상을 떠났다. 고전과 전통의 미학 속에 우리말의 리듬을 살린 탁월한 서정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유고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1988)이 있으며, 1990년 외길사에게 <박정만 시전집>이 발간되었다.
리뷰
시인 박정만, 그는 이미 내게 낡고 흘러가버린 옛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그 이름은 내게 있어서 저 젊은 날을 지배하던 잊지 못할 광기와 그리움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한 대명사이기도 하다. 60년대 후반 ‘서울 1964년 겨울’의 음울한 기류가 이 땅을 뒤덮고 있던 우리의 문청(文靑)시절, 명동 뒷골목에 허물어져 가던 술집 ‘은성’이나 ‘청일집’ 부근을 허기져 헤매던 저 목마름 속에서, 시가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주절거리던 그때의 유치함과 맹목의 순수를 일깨워 주는 소중한 이름의 하나가 바로 박정만인 것이다. 그 사이에 벌써 온갖 소용돌이 속에서 시간이 흘러 20년이나 지나가버렸고, 그 시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만 남아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그때 시를 논하던 많은 친구들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이름 높은 명사들이 되고, 날렵하고 솜씨 있게 살아가는 그 무엇들이 되어 우리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렇지만 유독 한 사람 박정만, 그만은 아직도 옛모습 그대로 정읍에서 갓 올라온 것처럼 무모하고 순진한 채로, 남루한 입성과 어렴풋한 취기를 그냥 데불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가 낡은 옛이름처럼 어느 산모퉁이 헐벗은 골목길 속에서 읊어대는 애끓는 애원성 한가락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그를 아끼고 있는 우리를 애타게 한다. (……) 그의 한 대표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작품 <오지 않는 꿈>은 박정만의 시세계를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적인 소멸의 미학이며, 부정적인 생의 인식이자 비극적인 세계관이다. 그리고 빛나는 비애의 감각이며, 섬세한 은유의 아름다움이자 치렁치렁한 애조의 가락이다. ‘어둠’과 ‘울음’, ‘빈 산’과 ‘빈 하늘’ 그리고 ‘잠’과 ‘꿈’이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소멸의 미학과 비극적 세계관은 한국시의 중심부를 관류하는 기본 정조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한 마장 거리의 기원사(祈願寺) 가는 길도/ 산허리 중간쯤에서 빈 하늘을 감고 있다”라거나 “은밀한 꿈들이 순금의 등불을 켜고/ 어느 쓸쓸한 벌판길을 지날 때마다”라는 활물변질의 은유와 빛나는 감각의 구사능력이야말로 박정만의 깊디깊은 애상이 센티멘탈리즘으로 떨어지고 말 위험을 예리하게 절제해 주는 박정만 시학의 황금 부분인 것이다. 그와 함께 “허공의 저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아마도 삶이 그러하리라/ 어찌 그리 따뜻하고 눈물겹지 않았더냐/ 사랑이여” 등의 다양한 율문 교차는 시 속에 치렁치렁한 정감의 율조를 살려줌으로써 그의 시로 하여금 비애미의 따뜻함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박정만의 시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 율감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예리한 절제와 극기의 아름다움으로 고양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비극적인 세계관의 아스라한 깊이를 심도 있게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극기의 미학으로 아름답게 이끌어 올리려는 가난한 작업을 통해서 개인적인 허무와 시대적인 적막을 이겨내려는 안간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상 박정만의 이러한 참담한 절망의 시편, 황홀한 한의 시편들이 한국 현대시에 있어서 한 중심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 그 어느 곳에 가서라도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비정상인 박정만, 그러면서도 지은 죄 그리 없이 이리 터지고 저리 얻어맞아 아주 별볼일 없는 사내(?)가 되어 버린 그이고 보면 새삼 산다는 게 무엇이며 또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 의문이 든다. 그리곤 문득 이 세상에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고 산다는 일이, 또 그러려고 몸부림치는 일들이 왜 그리도 허망해 보이고 부끄럽게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보다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세상 사는 일에서 내가 그만큼 더 때가 많이 묻었고, 눈치 보며 살기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리라. 실상 몇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그와 나 사이이지만, 몇 년만이고 만나면 오히려 덤덤할 뿐이고, 또 못 만나면 문득 나쁜 소식이라도 들려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그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들어 그는 “한 세상 살다 보니 병(病)도 홑적삼 같다”(<죽음을 위하여>에서)라고 노래하는걸 보니 쉬 포기하지는 않을 모양이다. 실상 우리 현대시사를 위해서도 그가 오래 살아 목숨 걸고 시를 쓴다는 일은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전에 첫 시집 <잠자는 돌> 해설에서도 지적했지만, 그의 시에는 생래적인 강인한 부활의지가 지속적으로 분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현대시사에서 그리 많지 않았던 괴팍한 시인 박정만, 고 박용래, 김종삼, 천상병처럼 진짜 순종 한국 서정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이제부터 죽음을 통과하여, 죽음을 뛰어넘어 시를 쓰는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시인의 한 사람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박정만: 한(恨)의 시인, 떠돌이 시인’, 김재홍, <한국현대시인비판>, 시와시학사, 1994
작가의 말
그리하여 저물도록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안개 짙은 봄밤에 새벽을 꿈꾸는 것은 헛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애초부터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어쩌면 날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설령 어느 황량한 모래펄에 새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모래의 몫일 뿐 새의 몫은 아니다. 새의 부재와 그로 인해 각인된 40새의 황야. 이제까지 내 가슴속에서 꽃비늘처럼 반짝이던 것이 한 때의 철없는 봄햇볕과 안개의 몽상에 불과했던가. 건듯 부는 꽃바람 며칠, 아련한 아지랑이 며칠, 연두빛 그리움 며칠, 아까운 가을볕 며칠, 결국 대지의 사랑과 신의 뜻이란 겨우 그것뿐이었던가. 앞으로 더 많은 고통과 불면에 시달리고 싶다. ‘자서’, 박정만, <잠자는 돌>, 고려원 1979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박정만 시전집>, 박정만, 해토, 2005 <한국현대시인비판>, 김재홍, 시와시학사, 1994 <잠자는 돌>, 박정만, 고려원, 1979
관련멀티미디어(전체2건)
이미지 2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