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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맹과니 노래

작품명
청맹과니 노래
저자
윤금초(尹今初)
구분
1970년대
저자
윤금초(尹今初, 1941~) 1941년 8월 7일 전남 해남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에 재직 하였으며, 경기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및 오늘의 시조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내재율 5>로 1966년 공보부신인예술상 수상, 1968년 <동아일보>에 <안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윤금초는 시조가 현대시와의 차별성을 견지하면서도 현대성을 얻어 새로워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시조의 형식미와 율격을 갖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시집 <어초문답(漁樵問答)>(1978), <네 사람의 얼굴(공저)>(1983), <해남 나들이>(1993) 등을 간행한 바 있다. 그의 시세계는 생성의 율격과 활성적 상상력을 통해서 얽힌 것에 대한 풀이와 진혼의 의미망을 구성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리뷰
(……) 윤금초의 시조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시적 소재와 형식 실험은 하나의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수렴되고 있는데, 역사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관심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인의 시 세계는 “국방색 성난 악령등 발 구르며 달려”(<일과 몽상 2>)와 “조지고 비틀고, 작신작신 할퀸 세월”(<청맹과니 노래>)인 한국근현대사의 그 처절한 상처와 쓰라린 아픔과 엄밀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윤금초의 시에 나타나는 역사 또는 역사의식이 지나가 버린 종결된 과거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그 상처와 아픔이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과 상호조응하고 있는 여전히 살아있는 과거로서의 역사를 시인은 주지하고 있다. 천의 다리, 천의 팔이 비비꼬인 이 매듭을 재갈 물린 한 역사의 넌덜머리 이 결박을 실꾸리 가닥을 풀 듯 아, 아픔의 끈을 풀라. - <청맹과니 노래> 부분 매듭과 결박은 가혹한 폭력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음을, 재갈은 그 아픔의 호소나 표현이 금지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인이 바라보는 고통은 상징적 차원에서 해소될 가능성조차 원초적으로 차단된 고통이다. 매듭과 결박, 재갈로 대변되는 부정적인 역사에 대한 시인의 윤리적 태도는 명료하다. 매듭과 결박을 풀기 전에는 결코 역사의 아픔이 사라질 수는 없다는 점, 따라서 아픔의 매듭을 풀어내는 것이 치유의 방식이라는 점, 따라서 ‘풀이’는 윤금초의 시조가 설정하고 있는 의미론적인 원점이다. ‘풀이’는 “아직도 이가 시린 저 바람 사금파리/ 어느 먼 애정의 누적 이 아픔을 달랠까.”(<겨울 나들이>)나 “비정의 칼을 씻고,/ 오만상 아픈 못자국, 앙금마저 푸소서.// (……) 우리 할배 간구의 손/ 후루룩 숭늉 한 모금, 이 심령을 달래고”(<전단>)와 같은 시구에서 알 수 있듯이 ‘위로와 달램’의 의미로 나타나기도 하며, ‘우리 할배 간구의 손’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능한 방식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윤금초에게 있어서 ‘풀이’는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폭력으로부터 상처입고 처절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하고 달래는 위령의 방식이다. 이를 두고 풀이의 의미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과 위령으로 대변되는 ‘풀이’의 의미망이 서사적 장시의 형식을 경유하여 제의의 양식으로 집약된 작품이 <청맹과니 노래>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람의 설움이 어지간해야 눈물이 나오는 법이지, 기가 차고 멱이 꽉 차면 미치고 환장을 하는 법이렷다”라는 판소리 <심청전>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는데, 도저히 풀 길 없는 한과 설움을 안고 형극의 세월을 살다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노래이다. 마지막 장인 ‘지노귀새남: 우리네 진혼무가’에서 시인은 “이적도 잠 못들어 항간을 헤매는” 온갖 사연의 귀신들을 다 불러내고는 “그 누가 아픈 혼백 다 거두고 수렴할꼬, 거두어 수렴할꼬”(<청맹과니 노래>)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윤금초 시의 의미망이 ‘풀이’와 ‘진혼’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억울한 원혼의 한을 풀고 넋을 달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억눌린 영혼들의 “애간장을 다 녹”(<청맹과니 노래>)일 정도로 신바람 나는 장단이며 노래와 춤이다. 얼마나 오랜 날을 움츠린 목숨인가. (······) 돌아라, 휘돌아라. 숨이 가쁜 종이 고깔. 더러는 눈칫밥에 한뎃잠 설쳤기로, 논틀 밭틀 한을 묻고 거리죽음 뜬쇠들아, 아픔의 응어리로 북을 때려 시름 푸는, 풍물잡이 시나위는 민초들 앙알대는 목소리다. 짓밟고 뭉갤수록 피가 절로 솟구치는, 투박한 그 외침은 뚝배기 때깔이다. 앙가슴 풀어헤쳐서 열두 발 상모를 돌려라. - <청맹과니 노래>에서 북을 때리고 장단에 맞추어 숨가쁘게 휘돌아가는 춤은, 그 자체가 민초들의 앙가슴을 ‘푸는’ 제의이다. 중요한 것은 장단과 춤, 달리 말하면 민초들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여러 방식들이 “민초들의 앙알대는 목소리”에서 연유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민초들은 자신의 원한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자기위안의 방식을, 교유한 장단과 몸짓과 가락의 형태로 지니고 있었다는 것. 이 대목은 민초에 대한 시인의 일방적인 애정이 표현된 지점이어서가 아니라, 시인이 민초들의 삶과 문화 속에서 민초들의 삶에 내재한 자생적인 가락과 몸짓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풀이’의 의미망은 위령과 진혼의 단계를 거쳐, 자신들의 삶에 내재해 있는 자생적인 가락과 춤으로 자신들이 걸머진 원한을 스스로 풀어가는 민초들의 이미지로 수렴되고 있다. (……) ‘풀이의 의미론, 생성의 현상학’, 김동식, <땅끝>, 태학사, 2000
작가의 말
부끄럽습니다. 헤진 베잠방이 사이로 속살이 드러난 것처럼, 어줍잖은 시편들을 묶어 세상에 내어 놓는다는 일이 이토록 부끄럽고 섬뜩할 뿐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을 건성으로 새길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수 책을 꾸려낸다는 것, 다시는 삼가해야겠다는 사실을 새삼 터득했습니다. 엄살이 아닙니다. 저는 이따금 밤을 지새워 시를 다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건성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구미마저 잃는 곤혹을 겪게 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곤혹의 의미를 같이 나눌 수 있다면 글쎄, 저의 아픈 작업은 전혀 무모하고 건달의 짓이 아닐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런 객기로 글러먹고 글러먹은 문학을 앞으로도 계속해 볼 작정입니다. 따라서 죽어서도 고운 명주실을 마련해 주는 누에의 선견지명, 그런 장한 슬기를 깨달아서 호연지기로 삼을 셈입니다. 아무래도 누를 끼친 것만 같습니다. 감히 고산과 공제선조를 한 자리에 모셔다 욕되게 한 것이나, 이 책의 제작을 위해 뒷바라지 해주신 문중에 곱빼기로 누를 끼친 것만 같습니다. (……) ‘후기’, 윤금초, <어초문답>, 지식산업사, 1978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땅끝>, 윤금초, 태학사, 2000 <미로에서 길찾기>, 장경렬, 문학과지성사, 1997 <어초문답>, 윤금초, 지식산업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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