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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

작품명
벙어리 삼룡
저자
나도향(羅稻香)
구분
1920년대
개요
1925년 7월 <여명>에 발표된 나도향의 단편소설. 무지하지만 순진한 인간의 숭고하고 애절한 애정을 승화시킨 작품이다. 나도향의 후기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초기의 낭만적 감상주의를 극복하여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구원의 의미를 보여준다. 돈과 신분위주의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라는 인물이 상전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성 속에 숨겨진 인간다움의 진실성과 순박성이 추구되는 일련의 바보문학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서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지는 이면적 공략으로 볼 수 있다.
내용
청엽정(靑葉町)을 연화봉(蓮花峰)이라고 부를 무렵, 그 동네에는 인심 좋고 존경받는 오생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오생원의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있다. 볼품없는 외모에 흉한 걸음의 삼룡이는 마음이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해서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버릇없고 성질이 고약한 주인 아들은 삼룡이를 골탕먹이고 괴롭히나 삼룡은 언제나 참는다. 주인 아들은 정숙한 처녀에게 장가를 들고, 매사에 훌륭한 신부와 비교되자 자기 아내를 미워한다. 삼룡은 남편에게 구박받고 매질당하는 아씨를 안타까워하다가 그 감정이 연정으로 변하여 새아씨를 사모하게 된다. 새아씨는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삼룡에게 부시쌈지를 하나 만들어 주는데, 그것이 말썽이 되어 삼룡은 주인 아들에게 죽도록 맞는가 하면,결국 목을 매려는 아씨를 구하다 오해를 받고 내쫓기게 된다. 그날 밤 주인집에 불이 나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든 삼룡은 주인을 구출해낸 다음 불 속에 누워 있는 아씨를 찾아안고 지붕으로 올라간다. 새아씨를 가슴에 안은 삼룡은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저자
나도향(羅稻香)
생애(1902~1927)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서울 출생.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권유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문학수업을 위해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학비를 마련할 수 없어 귀국한 후 1919년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생활을 했다. 1921년 <배재학보>에 <출학(黜學)>을 발표하고, 뒤이어 <신민공론>에 단편 <추억>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가족의 생계를 맡았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죽자, 경제적으로 빈곤해졌다. 1923년 조선도서에 입사한 뒤, 1924년 <시대일보> 기자로 일했지만 여전히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여관이나 친구의 하숙방을 전전하며 무절제한 방랑생활을 계속했다. 1926년 공부에 뜻을 품고 다시 일본에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후 폐병으로 요절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21년 <출학>을 발표한 이후, 죽을 때까지 6년 동안 3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1922년 박종화, 홍사용, 이상화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1922)을, 제2호에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1922)을 발표했다. 또한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환희(幻戱)>(1922)를 연재하여 소년 문사로 주목을 받았다. 1923년 단편 <십칠원 오십전>, <은화>, <춘성> 등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다가 <여이발사>, <행랑자식> 등을 발표하면서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전환한다. 1924년 <자기를 찾기 전에>,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을 발표하고 1925년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 등의 완숙한 작품을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다. 1926년 일본에서 다시 귀국한 후 <피 묻은 몇 장의 편지>, <지형근>, <화염에 쌓인 원한> 등을 발표했다. 사후에 장편 <어머니>(1939)가 출판되었다. 그의 소설은 초기에는 백조파 특유의 감상적이고 환상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여이발사>(1923) 이후 사실 경향으로 변하여 사소한 사건이라도 냉철하게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사실주의 소설의 전형인 <뽕>,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 같은 수작을 남겼다. 이 작품들에는 본능과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갈등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객관적 사실 묘사에 의해 부각되어 있으며, 등장인물의 치밀한 성격 창조를 기반으로 한국 농촌의 현실과 풍속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리뷰
(……) (<벙어리 삼룡>은) 일인칭 소설로 쓰여진 작중화자의 시점을 통해 오생원 댁 머슴 ‘벙어리 삼룡’이와 주인집의 ‘삼대독자 외아들’, 그리고 ‘주인집 아들의 색시’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삼각관계를 축으로 인간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 <벙어리 삼룡>은 도향의 궁핍 속의 낭만을 시대 환경적인 배경과 유기적 상호 조응을 하면서 전형화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동시대의 한 불행을 극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로맨스(주인 아씨는 유부녀인 데다가 신분상 주인과 머슴이라는 조건 때문에)지만 본능적으로 자연 발생하는 정을 억누르려는 내적 갈등과, 주인 아들의 오해와 학대로 극한 상황적인 터무니없는 억눌림을 당하게 되는 외적 갈등 속에서 결국은 무섭게 폭발하고 마는 줄거리의 개연성은 픽션으로서 낭만적이지만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의 제목을 <벙어리 삼룡>이라고 명명한 데에서 우리는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제목을 통하여 작품의 전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암시를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벙어리’는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여 오해받고, 주위에서 모순된 판단을 하여도 자기를 올바르게 표현하고 변명할 수 없는 구속된 인간의 비극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미천한 한 특수 인물의 극단적 비극을 묘사한 것은 동시대나 특수 환경 속의 삶을 배경으로 하여 시대적 비극과 아울러 인간사회의 보편적 모순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도향 소설시학(小說詩學)의 가능성은 현상을 초월한 내면 의식과 사회 제약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다. (……) 작품 중간에서 작가가 삼룡이의 내면 세계를 암시한 대로 “마치 언제 폭발이 될는지 알지 못하는 휴화산(休火山) 모양으로 그의 가슴에는 충분한 정열을 깊이 감추어 놓았으나 그것이 아직 폭발할 시기가 이르지 못한 것이다” 같은 대목은 가끔씩 사건이나 대화 속에서도 중복되는데, 이것은 언젠가 충분히 폭발 지점이 있다는 것을 복선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비굴과 부당한 인간적 대접에도 굴종하고 체념한 벙어리에게 생명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극한 상황의 설정은 하나의 가설적인 조건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벙어리의 전격적인 전환은 결국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회복을 의미하며 가장 미천한 자의 고귀성을 역비례하여 상승시켜 나타냄으로써 인간의 평균화를 모색하는 장치인 것이다. 삼룡이의 마지막 미소는 순간적인 것이었지만 독자들에게는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영원한 순간이다. (……) 이 작품의 핵심적 의미는 가장 소외되고 부자유스럽고 비천한 인간의 모순된 삶을 불로 타파하려는 상징성에 있다. 벙어리와 주인집 색시의 관계라든가 벙어리의 인간 회복 정신은 지나친 낙차 때문에 리얼리티의 근거를 찾기 힘든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보편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만남을 구현하였다는 점에서 수긍된다. 벙어리와 주인 아씨는 본질적으로 동차원의 인물이지만 동시대 윤리의식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금기의 벽을 불로써 파괴하여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였다는 점에서 새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 <나도향>, 윤홍로, 건국대출판부, 1997
작가의 말
글이라고 쓰기를 시작하기는 이럭저럭 한 6, 7년이 되었으나 글다운 글을 써본 일이 한 번도 없고 남 앞에 그 글을 내어놓을 때마다 양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다. 첫째, 마음에 느끼는 바나 충동을 받은 바를 그릴 때마다 써본 일이 없고 다만 남의 청에 못이겨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쓴 일이 많으니 글로써 글을 썼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작년 일 년 동안에는 몸이 매인 데가 있어서 그 일을 하느라고 글 쓸 여가는 물론이요, 어떤 때는 밥 먹을 틈이 없었던 일까지 있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잡지나 어느 신문에서는 가끔가끔 ‘소설을 써주오’ ‘무슨 감상을 써주오’ 하고 청구를 하면 한두 번은 거절을 하여 보기까지 하나 그래도 셋째 번에는 마음이 약한 탓인지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하고 대답을 하여 놓기는 놓으나 사실 하루일을 하고 또 친구들과 어울리면 늦도록 돌아다니다가 밤중에야 집에 들어가니 몸이 피곤하여 붓을 잡으려 하나 붙잡을 힘이 없어 그대로 자리에 누운 채 잠이 들어버린다. 참으로 우리의 생활을 아는 이들은 어느 점까지 동정할 것이다. 원고 수집기한은 닥쳐온다. 사실 몇 사람 안 되는 글 쓰는 이 가운데서 나 한 사람의 창작이면 창작, 감상문이면 감상문을 바라고 믿는 잡지는 경영자들의 조급한 생각을 모르면 모르거니와 알고 나서는 그대로 있지 못할 일이라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눈을 뜨면서 붓을 잡는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모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약간의 힌트를 얻어두었던 것으로 덮어놓고 붓을 잡으니 마치 지리학자나 탐험가들이 약간의 추상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것 같다. 자기가 지금 시작한 첫 구절, 그 뒤에는 어떠한 글이 계속될는지 써 보지 않고는 알지 못하니 거기에 얼마나 불충실함과 무성의함과 철저치 못함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급기야 써서 그것을 잡지사나 신문사에 내놓는 부끄러움이란 다시 말할 여지없다. 그래서 그것을 한 번 내놓고는 다시 읽어보는 때가 극히 적다. 이와 같이 나의 창작생활이 계속된다 하면 나는 그 창작이라 하는 것을 내버려서라도 양심의 부끄러움이 없게 하고 싶다. 더구나 안으로 가정, 밖으로는 사회로 그리 마음대로 되는 운명에 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리 든든하고 풍부한 천품을 타지 못한 나로서 무엇을 깨닫고 느끼고 사색하는 것이 아직 부족한 때, 붓을 잡는다는 것이 잘못이라고까지 생각을 한다. 더구나 아직 수양시대에 있어야 할 나에게 무슨 요구를 하는 이가 있다 하면 그런 무리가 없을 것이요, 또는 나 자신이 창작가나 또는 문인으로 자처를 한다 하면 그런 건방진 소리가 없을 것이다. 어떻든 무엇을 쓴다는 것이 죄악 같을 뿐이다. -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 나도향, <나도향 전집 상>, 집문당, 1988
관련도서
<나도향 전집>, 집문당, 1988 <나도향>, 윤홍로, 건국대출판부, 199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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