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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

작품명
장한몽
제작
계림영화협회
감독
이경손
장르구분
1919년~1934년
출연/스태프
*출연 김정숙, 주삼손, 심훈, 강홍식, 정기탁, 나운규, 남궁운, 이규설, 김명순 *스태프 제작,기획/조일제, 감독,각본/이경손, 촬영/서천수양(일본), 편집/서천수양(일본)
내용
이수일과 심순애는 서로 백년해로를 약속했지만 지금의 순애는 평양갑부 김중배의 애첩이 되어 있었다. 이수일은 순애가 단지 금전적인 궁핍 때문에 김중배에게 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한을 풀기 위해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 고리대금업자의 밑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은다. 한편, 순애는 수일 때문에 몸져 눕는다. 그 소식을 들은 수일은 순애에게로 달려간다. 순애는 그 곳에서 수일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알고 수일과 앞날을 기약한다.
예술가(감독)
*이경손(1905~1976) 서울 출생, 부친이나 식구들이 신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탓에 개화의 물결에 눈을 일찍 떴다. 경성신학교(京城神學校)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한 적도 있었던 이경손(李慶孫)은 해외로 도피할 기회만 엿보다 인천 해원 양성소에 입학하여 항해과를 수료하였다. 졸업 후 ‘조선우선’에 입사해서 일본과 블라디보스톡을 오가는 ‘부산호’에 견습 선원으로 승선했다. 그러나 2년간 승선 근무를 했어도 좀처럼 망명의 기회가 보이지 않자 이를 포기하고, 영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경손은 일본에만 입항하면 시간을 내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영화계 진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후 선원 생활을 청산한 이경손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 <심청전>, <장한몽>, <춘희> 및 <숙영낭자전> 같은 작품을 제작해서 침체된 우리 사회에 민족정신을 싹트게 했다. 1927년경 ‘카카듀’라는 다방을 차려 하와이에서 온 미모의 여인과 같이 운영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하는 최초의 다방이었다. 이 다방은 이경손이 직접 차를 끓여 더욱 유명하였으며 실내장식 또한 인도식으로, 마포에다 조선가면을 걸어놓고 촛불을 켜고 간판에는 붉은 칠을 한 바가지 세 쪽을 달아놓아 경성가두에서 더욱 이채를 띄었다. 그러나 경영에 익숙치 않은 까닭에 불과 수개월 만에 문을 닫고 이경손은 1931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영화계에서 일하다가 다시 태국으로 가서 사업가가 됐다고 한다.
작품정보
심청전 (1925) 개척자 (1925) 봉황의 면류관 (1926) 장한몽 (1926) 산채왕 (1926) 춘희 (1928) 숙영 낭자전 (1928)
리뷰
*작품해설 조일재가 건립한 계림영화협회의 제1회 작품으로서 일본인작가 오자끼 고오요오(尾崎紅葉)의 <금색야차>를 번안, 당시 많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이다. 삼개월에 걸쳐 제작한 당시의 대규모 영화로 주삼손, 김정숙 등이 출연하였다. 그러나 주삼손이 촬영도중 부상을 당하여 영화중반 주삼손을 닮은 심훈으로 주연을 교체하는 2인 1역의 기록을 남긴 영화이기도 하다 . *평론 조선영화로는 처음 보는 걸작품으로 9천원을 들여 박은 영화- 이 영화는 배우들의 기술이라던가 촬영 등이 작년도에 촬영한 명화들 뿐 아니라 미공개된 작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고 또 일본서 제작한 일본영화보다도 못하지 아니하다. 삼개월의 장시일을 두고 촬영하였으며 최후의 종막을 촬영하기 위하여 회원들이 평양에 출장 중인데, 육칠일 후에는 경성서 먼저 공개한다고 한다. (<동아일보>, 1928년 2월 28일)
연계정보
-복지만리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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