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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작품명
유관순
제작
계몽영화협회
감독
윤봉춘
장르구분
1946년~1954년
출연/스태프
*출연 고춘희, 이선경, 이일선, 박순봉 *스태프 제작/방의석, 기획/조중헌, 감독/윤봉춘, 각본/윤봉춘,이구영, 촬영/손용진, 조명/김성춘, 편집/윤봉춘
내용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 쟁취를 위한 시위가 한창 일 때, 유관순은 친구들과 더불어 거리로 뛰쳐나와 독립 만세를 외친다.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된 후 풀려 나와, 그 길로 짐을 챙겨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 그곳에서 일본 빚쟁이한테 시달리는 아버지를 보며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다시금 통감한다. 고향 장터에서 집회를 주도하며 태극기를 흔들다 경찰서로 끌려간 후, 혹독한 고문 끝에 결국 19세의 나이로 운명한다.
예술가
*윤봉춘(1902~1975) 함북 회령 출생. 죽마고우인 나운규가 추천한 <들쥐>에서 단역배우로 출발한 후, 1930년 <도적놈>을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한다.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어용영화 제작에 반대해 시골로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해방 이후 한국 영화 재건에 앞장선다. 과묵하면서 절제있는 연기와 애국정신으로 초창기 영화인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영화를 예술로서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 창구로서 이해한 전도사다. 한국 위인들을 수 차례 영화화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작품정보
도적놈(1930) 윤봉길 의사(1947) 백범 국민장 실기(1949) 논개(1956) 유관순(1959) 황진이의 일생(1961)
리뷰
*작품해설 16mm로 제작된 작품으로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열 여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독립 만세를 외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유관순 열사에 관한 전기영화다. 이 이후로 독립운동을 다룬 극영화 제작이 잇따랐으며, 윤봉춘 감독은 이 작품을 1959년도와 1966년도에 개작해서 총 세 차례나 영화화했다.
관련도서
<나는 살아서도 영화인이며 죽어도 영화인>, 윤봉춘, 한국필름보관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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