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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만세

작품명
자유만세
제작
고려영화사
감독
최인규
장르구분
1946년~1954년
출연/스태프
*출연 전창근, 황려희, 유계선, 전택이 *스태프 제작,기획/최완규, 감독/최인규, 각본/전창근, 촬영/한형모, 조명/김성춘, 음악/조백봉, 녹음/조종국, 미술/전경준, 효과/심재훈, 편집/양주남
내용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한 남자가 일본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 다급해진 김에 어느 집에 뛰어들어 몸을 숨기는데, 그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간호사였던 여자의 치료를 받으며 남자는 사랑에 빠지지만, 둘은 곧 이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광복을 며칠 앞두지 않은 어느 날, 남자는 경찰에게 발각되어 총을 맞고 쓰러진다.
예술가
*최인규(1910~?) 함북 회령 출생. 신의주에서 형인 최완규와 고려영화협회를 창립하여 이창용을 책임자로 위촉하고, 국내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의 전국 배급을 맡는다. 당시 평범한 회사원이던 김신재와 결혼하여 후일 부인을 영화배우로 데뷔시켰으며, 일제 말기 친일적인 영화 성향으로 물의를 빚기도 하다가 6·25 전쟁 중 납북된다.
작품정보
국경(1939) 수업료(1940) 집없는 천사(1941) 자유만세(1946) 파시(1949) *김성춘 조명기사. 우리 영화계의 조명 기술을 개화시킨 선구자이다. <자유만세>를 위시해, 수 많은 명작들의 조명을 담당하다가 1961년 사재를 털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뷰
*작품해설 본격적인 최초의 항일영화로 해방을 맞은 한국 국민들에게 크나큰 공감과 감동을 준 작품이다. 영화를 본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 ‘자유만세, 한국만세’란 휘호를 선사했다고 전해진다. *평론 신상옥 감독은 <자유만세>에서 드디어 영화가 ‘잘 들리고, 잘 보이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지적을 한다. 신상옥에게 <자유만세> 이전까지의 한국영화들은 거의 '전달의 매체'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들리고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한 매체', 즉 활동사진 이상이 아니었다. 바로 최인규의 영화를 거치면서 한국영화에서 드디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되었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한상준)
연계정보
관련도서 <주간한국>, 1965년 8월 15일자, ‘톱셀러 <성춘향> 최초 홈런은 최인규의 <자유만세>’ <주간조선>, 1987년 3월 8일자, ‘한국영화인물 85년 103–자유만세 중국 상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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