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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屛山書院)

작품명
병산서원(屛山書院)
소재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지정종목
사적 제260호
장르구분
유교건축
개요
안동에서 약 30분 하회방면으로 가다 하회입구에서 6km 들어가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 알려져 있는 병산서원이 있다. 1613년(광해 5)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류성룡(柳成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본래 이 서원의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淵岳書堂)으로 풍산 류씨(柳氏)의 교육기관이었는데, 1572년(선조 5)에 류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이황(李滉)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유성룡의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 1629년(인조 9)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그의 셋째 아들 유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863년(철종 14)에 ‘병산’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 5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일제시대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 다시 지어졌고 사당도 1937년 다시 지어졌다. 그리고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성룡의 문집 등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경내의 건물로는 존덕사, 입교당(立敎堂), 신문(神門), 전사청(典祀廳), 장판각(藏板閣), 동재(東齋), 서재(西齋), 만대루(晩對樓), 복례문(復禮門),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묘우(廟宇)인 존덕사에는 유성룡을 주벽(主壁)으로 유진의 위패가 배향되어 있다. 경사지 아래쪽의 외삼문[復禮門]을 들어서면 왼쪽에 연못이 있고 건너편 높은 석축의 계단을 오르면 보기 드물게 큰 만대루가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누 밑을 지나 계단을 다시 오르면 마당 건너편에 강당과 그 앞 양측에 동·서재가 마주보고 있는 강학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동재 뒤편 담장밖에는 주소(廚所)인 'ᄆ'자형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강당 뒤편에는 사당[尊德祠]을 앉힌 사당 공간이 전체의 중심축에서 약간 벗어난 오른쪽 높은 곳에 별도로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전면 담장 가운데에 내삼문이 나있다. 사당 영역 좌측에는 장판각을, 우측에는 전사청을 두었다. 문루(門樓)인 만대루는 향사나 서원의 행사시에 고자(庫子)가 개좌와 파좌를 외는 곳으로 사용되며,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에 무익공 3량가 팔작지붕으로 꾸민 누각이다. 2층 누마루 주위에는 계자각 난간을 돌렸고, 그 밖에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는 물길을 끌어 만든 천원지방(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강당인 입교당은 팔작지붕인데,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중앙 3칸에 대청을 두고 그 좌우측에 각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동·서재는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칭적 구성의 건물로 각기 정면 5칸, 측면 1.5칸 크기의 납도리 5량가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존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에 처마는 겹처마이며, 특히 기단 앞 양측에는 8각 석주 위에 반원구의 돌을 얹어놓은 대석(臺石)이 있는데, 이는 자정에 제사를 지낼 때 관솔불을 켜놓는 자리라 한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경북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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