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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玉山書院)

작품명
옥산서원(玉山書院)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지정종목
사적 제154호
장르구분
유교건축
개요
옥산서원은 화개산·자옥산·무학산·도덕산 등 4개의 명산이 에워싼 명당에 자리잡고 있고, 중심대·탁영대·관어대·영귀대·영심대 등 5대(臺)로 불리는 반석이 계곡을 꾸미고 있는 4산5대의 경승지이다. 이 서원은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로서 '조선 5현'의 하나로 추앙받고 있는 회재 이언적을 제향한 서원이다. 1572년(선조 5)에 경주 부윤 이제민(李齊閔)과 도내 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원 자리를 정하고 묘우(廟宇)를 건립하였고, 다음해에 서악의 향현사에 있던 위패를 모셔왔으며, 1574년(선조 7)에 ‘옥산(玉山)’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서, 임진왜란 병화에도 피해 없이 보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언적의 친필과 저서를 비롯하여 역대 명인들의 서적과 글씨들을 4천여 점이나 소장 하고 있어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치가 높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서원의 공간구성은 무변루가 중심이 되는 진입부, 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강학부, 사당이 중심이 되는 제향부 및 부속사 등 4개 영역으로 구분되며 전학후묘의 배치법을 착실히 따르고 있다. 구인당 후측에는 내삼문(內三門)인 체인문이 있고, 체인문을 둘러싼 담장 안에 체인묘와 제기실이 자리잡고 있다. 서원의 중심부 남측에는 부대시설인 고직사(庫直舍)·판각(板閣) 등이 있으며, 담장 밖으로 남측에 경각, 북측에 신도비각이 있다. 구인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형식이며, 다듬은 돌로 바른층쌓기의 기단을 구성하고 있다. 기단 위에는 주좌(柱座)를 둥글게 돋게 만든 초석들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굽면이 사면으로 끊긴 주두(柱頭)를 놓고 앙서가 두 개 뻗은 부재를 기둥 윗몸에서 내고, 안쪽으로는 보아지형태로 하여 주두와 보머리를 결구함으로써 마치 이익공(二翼工)처럼 보이나, 부재의 구성방법은 초익공식(初翼工式)이라 할 수 있다. 가구는 오량(五樑)으로, 대들보를 앞뒤 평주(平柱) 위에 걸고, 이 위에 파련각(波蓮刻)이 된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다시 첨차(首遮)와 소호로 이루어진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이 우물마루로 된 대청과 좌우는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인당 전면의 동서 양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민도리집 계통의 건축물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중층 맞배기와집으로, 1층의 어간(御間)은 대문을 달고, 양측은 2층 온돌방의 구들과 아궁이로 이루어져 있다. 2층의 중앙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을 두고, 이 양측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하나씩 두었다. 대청과 온돌방 둘레에는 툇마루를 두고 계자 난간을 둘러 개방하였다. 구조는 초익공식으로 오량가구를 이루고 있다. 중심 전각인 체인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다듬은 돌 바른층쌓기 한 기단 위에 초석들을 놓고 두리기둥들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하나를 내어 초익공식을 취하고 있으며, 가구는 오량이고, 겹처마를 이루고 있다.
영상자료
자료제공 : 李心會(여강이씨 종친회)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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