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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紹修書院)

작품명
소수서원(紹修書院)
소재지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2
지정종목
사적 제55호
장르구분
유교건축
개요
풍기읍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931번 지방도로로 약 8km 올라가면 나오는 순흥면에서 부석사 방면으로 2km 정도 계속 올라가면 우리 나라 최초로 공인된 사학기관 소수서원이 나온다.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에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를 설립하였다가 1543년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되었고,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550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임금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에게 명하여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성리대전 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공인된 교육기관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으로, 그 뒤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士林)들의 정치·사회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있으므로 소수서원의 설립과 발전 내용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그대로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文成公廟), 명륜당(明倫堂), 일신재(日新齋), 직방재(直方齋), 영정각(影幀閣), 전사청(典祀廳), 지락재(至樂齋), 학구재(學求齋), 서장각(書藏閣), 경렴정(景濂亭)과 탁연지(濯硯池),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국보 제111호인 회헌영정(晦軒影幀), 보물 제485호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717호인 주세붕 영정(周世鵬影幀)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강학(講學)의 중심인 명륜당은 동향을 하고 배향의 중심 공간인 사당(祠堂)은 남향이다. 기타 전각들은 어떤 중심축을 설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어 곧바로 명륜당의 남쪽 측면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과 온돌방 및 마루방으로 되어 있고 대청·온돌방·마루방 주위로 툇마루를 둘렀다. 장대석(長臺石)을 바른층쌓기 하여 만든 높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에서 앙서 하나를 내어 기둥 위에 놓인 주두(柱頭)와 결구시킨 초익공(初翼工)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架構)는 5량(五樑)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마루보를 받치고, 마루보 위에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각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을 달아 구분하고 있다. 이 동서 양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 및 협실 앞의 툇마루로 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 정면에는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 하였으나, 후면에는 거친 사고석으로 바른층쌓기 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첨차(首遮)를 놓아 몰익공식으로 하였는데, 첨차의 모양은 단순하며, 뒷면 귓기둥은 헛첨차가 돌출되었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앞뒤 평주 위에 걸고 간결한 동자기둥을 세워 마룻보를 걸었으며, 이 위에 판대공(板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문성공묘는 명륜당의 서북측 따로 쌓은 담장 속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맞배집으로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원형의 주좌(柱座)가 있는 다듬은 초석이 있고 그 위에 배흘림 원기둥을 세웠다. 또한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밑면에 초각한 첨차와 소로(小累), 그리고 끝이 날카로운 쇠서를 내어 결구한 초익공식(初翼工式)을 이루고 있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전면 고주(高柱)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차로 짜인 동자기둥을 놓아 마루보를 받치고,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그 밖에 서고·전사청·고직사(庫直舍) 등은 모두 사당 담 밖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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