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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묘(文廟) 대성전

작품명
서울문묘(文廟) 대성전
소재지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지정종목
사적 제143호 <br>&nbsp;&nbsp;대성전, 명륜당, 동ㆍ서무, 삼문(보물 제141호)
장르구분
유교건축
개요
성균관대학교에 가면 정문 옆에 유림(儒林)회관이 있고 이곳에서 유교사상을 강좌하고 있어 전통사상을 배울 수 있으며, 바로 그 안쪽에 서울 문묘가 있다.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된 석전대전(釋奠大典)도 이곳 문묘에서 봄ㆍ가을에 시행하고 있어 전통의례도 관람할 수 있으며 그 밖에 많은 전통문화 행사도 주관하고 있다. 입구에는 영조(英祖)대에 당쟁을 없애기 위해 세운 탕평비(蕩平碑)와 비각(碑閣)이 1942년에 이 곳으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 이 곳 문묘 일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요 건축물인 대성전(大盛殿)과 명륜당(明倫堂),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그리고 남(南)의 삼문은 '서울 문묘'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 문묘인 성균관(成均館)은 고려의 최고 유학(儒學) 교육기관인 국자감, 국학, 숭문관의 전통을 이어받은 개경(開京) 성균관에 이어 조선의 새로운 도성인 한양에 자리하게 된 것으로, 이후 개성의 성균관은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鄕校)로 바뀌어 남아 있다. 서울 성균관은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다가 1400년(정종 2)에 화재를 입어 1407년(태종 7)에 재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에 재건되었고, 동무와 서무, 신문(神門)은 1604년(선조 37)에 재건된 것이다. 창건 당시 묘우(廟宇)를 대성전(大成殿)이라 고쳐 썼다. 그 후 1906년(선조 39)에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재건되고 1626년(인조 4)에는 정록청(正錄廳)과 식당, 존경각(尊經閣), 양현고(養賢庫) 등이 재건되었다. 그 후 1664년(현종 5)에는 명륜당 서쪽에 비천당(丕闡堂)을 세우고 일양재(一兩齋)와 벽입재(闢入齋)를 세웠다. 숙종대에 계성사(啓聖祠)를 영건(營建)하였으며 경종 즉위년인 1720년에는 숭절사(崇節祠)를 설립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 18)에 영조의 친필로 탕평비(蕩平碑)를 반교(泮橋, 학교 입구의 다리)옆에 세웠고, 이듬해에 왕이 성균관에 나와 대사례(大射禮)를 행하고 나서 이때 썼던 어궁(御弓)과 제구(諸具)를 보관하는 육일각(六一閣)을 세웠다. 그 후 1869년(고종 6)에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졌고 1936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문묘는 공자(孔子)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전묘후학(前廟後學)이란 전개의 법도에 따라 남쪽에 제례(祭禮)영역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남쪽 정문인 신삼문(神三門)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그 뒤쪽에 교학(敎學)영역인 명륜당과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어 이들이 중심 골격이 되며 여기에 많은 부속건물로 이루어진다. 문묘의 배치는 남문인 신삼문(神三門) 안에 행랑과 연결되는 중문이 있으며 중문 내정(內庭)에 동무와 서무가 좌우에 있고, 그 중앙 안쪽에 대성전이 있어 제례공간을 이룬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집으로 매우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여기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5성(五聖)과 주자(朱子) 등 16위의 중국 성현, 18위의 한국의 성현들을 배향하고 있다. 전면 1칸을 퇴칸으로 개방하고, 그 안쪽 벽에는 살창과 판문을 달았다. 나머지 3면은 모두 벽을 쳐서 감실형(龕室形) 공간을 이루었다. 화강석 5벌대의 정교한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얹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으며, 넓은 기둥사이에 다포계 포작들을 얹어 공포대를 형성했다. 팔작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두와 잡상들을 장식하여 최고 위계의 건물임을 상징한다. 단청은 가칠단청으로 위엄있고 소박하여 유교의 성전임을 나타낸다. 대성전 정면 좌우에 배치된 11칸씩의 긴 동무와 서무는 측면 1.5칸의 구조로 앞의 퇴칸은 개방하였고, 신실(神室)의 내부는 11칸의 기다란 통칸으로 처리했다. 초익공계 맞배지붕의 단순한 구성이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중당(正中堂)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서협실(東西夾室)을 나란히 건립했다. 정중당은 대청마루이며, 동서협실은 온돌방으로, 여기서 강학(講學) 교육이 행해졌다. 정중당의 지붕이 동서협실보다 한단 높아 형태적 위계가 뚜렷한 삼산형(三山形) 건물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모두 맞배지붕이며. 잘 다듬은 화강석 기단 위에 건립됐다. 정중당은 이익공계 구조, 양 협실은 초익공계 구조이다. 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성으로 중앙 기둥열 3칸에 판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초익공계와 다포계가 절충된 특이한 구조형식을 채택한 맞배지붕 집이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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