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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

작품명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지정종목
보물 제225호
장르구분
관영건축
개요
서울에는 현재 5개의 궁궐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사적121호)과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덕수궁(德壽宮), 경희궁(慶凞宮)이다. 조선 건국 초기, 태종은 한양으로의 재천도 이후 도성 안 동쪽에 다시 제2 궁궐인 창덕궁을 창건하고 여기서 머물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창덕궁 역시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17세기 전반기의 오랜 복구 작업을 거친 뒤, 고종에 의해 경복궁이 다시 재건되기까지 경복궁을 대신하여 정궁으로서의 궁궐 역할을 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화제로 계속 중수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80% 정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중요한 건물들만 남아있다. 인정전은 1405년 창덕궁이 조성되면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0년에 중건했다. 그러나 1803년(순조 3)에 다시 불에 타 이듬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는 한말에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후에 일부를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양성된 각 마루에 당시 국장(國章)이던 이화(梨花) 문장을 새겨 넣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인정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 2층 팔작지붕의 중층 건물로 창덕궁의 정전이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서 조금 들어가면 금천교와 직각으로 만난다. 금천교(錦川橋)를 건너 진선문(進善門)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인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을 만나고, 인정문을 들어서면 인정전이 행각으로 둘러싸인 넓은 뜰 가운데 남향을 하고 앉아 있다. 인정전의 월대(月臺)는 2중으로 구성되었으며, 지대석 위에 장대석을 두벌대로 쌓고 그 위에 장대갑석을 놓아 조성하였다. 월대 전면 중앙, 양 측면에 돌계단이 있어 월대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중앙의 석계우석(石階隅石)은 그 끝을 짐승머리형으로 조각하였고, 가운데 답도(踏道)에는 봉황을 두 마리 새겼다. 월대 위에 장대석을 한단 더 높이고, 그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초석 높이와 같게 고막이돌을 짜 돌렸다. 기둥은 모두 원주로 하층은 10개의 평주(平柱)와 10개의 고주(高柱), 그리고 4개의 우고주(隅高柱)로 구성되고, 중앙 후면 고주와 평주열 사이에 옥좌가 놓였다. 상층도 18개의 병연주와 하층에서 올라오는 우주와 고주로 구성되었다. 공포의 짜임은 상하층 모두 내4출목, 외3출목으로 크기가 약간 과장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고주 사이를 대들보가, 4면의 툇간에는 고주와 평주간을 퇴보가 지나도록 하였다.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고주내의 정간(正間) 천장과 툇간의 천장과는 규모를 달리 하여 고주간 천장에는 천장 위쪽으로 감입(嵌入)하는 형식의 천개(天蓋)를 다포로 받치고 금색의 구름무늬 사이에 한 쌍의 봉황을 투각하였다. 처마는 겹처마, 각 마루는 양성을 발랐고 취두(鷲頭) ·용두(龍頭) ·잡상(雜像) 등을 배치하고,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끼웠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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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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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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