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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 선정전(宣政殿)

작품명
창덕궁(昌德宮) 선정전(宣政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지정종목
보물 제814호
장르구분
관영건축
개요
서울에는 현재 5개의 궁궐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사적121호)과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덕수궁(德壽宮), 경희궁(慶凞宮)이다. 조선 건국 초기, 태종은 한양으로의 재천도 이후 도성 안 동쪽에 다시 제2 궁궐인 창덕궁을 창건하고 여기서 머물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창덕궁 역시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17세기 전반기의 오랜 복구 작업을 거친 뒤, 고종에 의해 경복궁이 다시 재건되기까지 경복궁을 대신하여 정궁으로서의 궁궐 역할을 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화제로 계속 중수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80% 정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중요한 건물들만 남아있다. 선정전은 창덕궁 조선 초기 편전으로 건축되었으나,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으로 불탔다. 현재의 건물은 인조반정 때에 소실된 것을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仁慶宮)을 헐어 1647년에 중건한 것이다. 과거 기록에 의하면, 선정전 주위에 서행각 19칸, 북행각 10칸, 남행각 11칸이 있다고 하나 현재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선정전 앞의 복도각은 1997년 공사로 복원된 것이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궁궐의 편전은 왕의 공식 집무를 보는 전각이다. 왕이 신하들과 만나 국사를 의논하기도 하며,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기도 하고,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국조보감에 의하면 성종2년에 선정전에서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으며, 성종 8년에는 왕비가 친잠례(親蠶禮)를 행하기도 하였다. 명종8년에는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청정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순조 이후에는 주로 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했다. 선정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작은 건물이며,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집이다. 1단의 낮은 월대와 외벌대 기단을 이중으로 설치한 위에 원형의 초석과 기둥을 세웠다. 전면 월대의 두 모서리에는 주술적 의미에서 화재를 예방한다는 드므를 놓았다. 기둥은 12개의 평주(平柱)와 2개의 고주(高柱)로 구성되는데, 앞에만 고주를 세워 툇칸을 전면에 두었다. 공포는 내3출목, 외2출목으로, 외부는 제공이 중첩되었고, 내부는 3출목 부분에서 나온 초각물이 천장을 받는 형태로 처리했다. 단청은 온화한 색조의 반초머리의 모루단청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꾸미고 각 마루는 양성하지 않고 취두와 용두를 올렸으며 사래 끝에는 토수를 두었다. 지붕은 푸른 색의 청기와로 덮었다. 내부천장은 우물천장을 기본으로 하고, 중앙의 후편에 보개(寶蓋) 천장을 가설했다. 보개내 천장에는 구름 사이를 나는 한 쌍의 금색 봉황이 양각되어 있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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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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