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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 대조전(大造殿)

작품명
창덕궁(昌德宮) 대조전(大造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지정종목
보물 제816호
장르구분
관영건축
개요
서울에는 현재 5개의 궁궐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사적121호)과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덕수궁(德壽宮), 경희궁(慶凞宮)이다. 조선 건국 초기, 태종은 한양으로의 재천도 이후 도성 안 동쪽에 다시 제2 궁궐인 창덕궁을 창건하고 여기서 머물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창덕궁 역시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17세기 전반기의 오랜 복구 작업을 거친 뒤, 고종에 의해 경복궁이 다시 재건되기까지 경복궁을 대신하여 정궁으로서의 궁궐 역할을 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화제로 계속 중수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80% 정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중요한 건물들만 남아있다. 대조전은 여러 차례의 화재와 재건을 반복하면서 건물의 규모나 형태가 많이 변경되었다. 1405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광해군 때 중건했다. 하지만, 인조반정 때 다시 소실되어 1647년에 다시 지었고, 1833년 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했다. 마지막으로 1917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자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을 옮겨와 대조전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순조 34년에 재건될 때에는 정면이 9칸이었고, 가운데 3칸은 돌출하였으며 지붕도 협간보다 높은 형태였다고 하나, 1920년에 교태전을 옮겨오면서 건물의 규모가 36칸으로 커지면서 평면 구성도 달라졌다. 지붕의 어칸 3칸이 돌출되었던 형태도 협간과 나란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단층 건물로 중앙 3칸이 대청이고, 좌우에는 온돌방이 있다. 어간 3칸과 같은 넓이로 방형의 단층 월대(月臺)가 건물 전면에 마련되고, 이어서 그보다 약간 높은 장대석 기단이 있어 그 위로 방형의 초석과 기둥이 서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이 거실이 되고 나머지는 툇칸이 되어 다락 혹은 복도로 이용된다. 전면 어칸 3칸의 퇴는 개방하였다. 외부로 노출된 기둥은 네모기둥이고, 안쪽에 있는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기둥 윗몸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두었는데 수서의 끝은 날카롭고, 기둥 사이 창방(昌枋) 위에는 화반과 운공들을 두어 도리 장여를 받치고 있다. 안쪽의 고주(高柱) 위에 8각형 주두를 놓은 것이 이채롭고, 대들보 위는 우물천장을 가설했다. 현재 대청은 쪽마루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정전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변형된 것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용마루를 가설하지 않아 내전임을 나타냈다. 합각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한 다음 용두와 잡상으로 장식했다. 대조전 뒤쪽으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행각을 두어 경훈각(景薰閣)과 연결했으며, 또 장대석 바른층쌓기한 석단들을 두고 그 위쪽으로 담장을 쌓아 아름다운 후정을 조성했다. 특히 검은색 벽돌과 붉은색 벽돌로 무늬를 놓은 굴뚝이 석단 위에 서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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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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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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