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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昌慶宮) 통명전(通明殿)

작품명
창경궁(昌慶宮) 통명전(通明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지정종목
보물 제818호
장르구분
관영건축
개요
서울에는 현재 5개의 궁궐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사적121호)과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덕수궁(德壽宮), 경희궁(慶凞宮)이다. 창경궁은 원래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던 곳으로, 1418년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고쳐지었다. 그러다가 성종조에 대왕대비와 대비를 모시기에 부족한 궁궐을 보충하기 위해 수강궁터에 새로이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창경궁은 서울의 다른 궁궐과 같이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광해군이 주요 건물들을 중창하였다. 통명전도 그 때 같이 재건되었으나, 이괄의 난(인조2)과 정조(1790) 때 다시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 내부에 있는 '통명전(通明殿)' 편액 글씨는 순조의 친필이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창경궁의 가장 중심되는 내전(內殿)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익공집이다. 창경궁의 내전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통명전의 앞에는 장대석을 쌓은 월대가 조성되어 있고 그 위에 드므를 놓았다. 월대 앞면은 3조의 돌계단을 설치해 오를 수 있도록 하였고, 월대 상면에는 전돌을 깔았다. 월대의 왼쪽은 양화당(養和堂) 기단과 통하도록 시설되었으며,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지당(池塘)의 돌다리에 연결되도록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통명전의 기단은 월대 위에 다시 장대석을 놓아 형성하였고 그 위에 사각형 초석과 사각기둥을 놓았다. 건물의 중앙 3칸은 앞면과 뒷면을 퇴칸으로 개방하였다. 내부는 북서쪽 일부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우물마루로 개조되었는데, 최근 좌우의 온돌방을 복원하였다. 공포는 이익공 계통으로, 주간에는 장화반(長花盤)만 놓았다. 큰 부재들에는 모루단청을 하고, 우물천장의 청판에는 모란문양을 그려 넣었다. 용마루는 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짜임이 없는 '무량각(無樑閣)'의 형태이다. 내림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두와 잡상 등을 배치하였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통명전 남쪽 바로 옆에는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조성한 지당이 있다. 남북 길이 12.8m, 동서 길이 5.2m의 장방형 연못이다. 연못의 4벽은 장대석으로 쌓았고, 둘레에 돌난간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돌렸다. 지당 위족에는 길이 5.94m, 폭 2.56m의 간결한 돌다리를 동서로 설치했다. 이 지당의 물은 북쪽 4.6m 떨어진 샘에서 넘쳐나는 물을, 직선으로 설치한 석구(石溝)를 통해 폭포로 떨어지도록 고안했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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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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