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종묘 정전(正殿)

작품명
종묘 정전(正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지정종목
국보 제227호
장르구분
관영건축
개요
종묘(사적 125호)는 조선 이씨 왕조의 역대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뒤 봉안된 추존왕 부처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종묘의 전체 영역은 종로구 훈정동 1-2의 55,659평과 와룡동 2번지 844평, 도합 56,503평에 이른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한 직후, 왕궁보다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립하여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최고의 기념물로 삼았다. 왕실의 위패를 봉안하는 정전과 영녕전이 중심 건물이고, 제사를 지내는데 필요한 제궁과 전사청, 향대청과 악공청 등의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이 정전과 영녕전을 통틀어 종묘라고 부르지만, 당초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라 하였고, 영녕전은 별묘라고 따로 불렀다. 우리나라 종묘의 기원은 매우 오랜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종묘의 제도가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왕경(王京)의 배치는 ‘좌묘우사 전조후시(左廟右社 前朝後市)’라는 중국 주나라 법식을 따라 배치하였다. 이중 전조후시는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좌묘우사의 원칙은 지켜 종묘를 서울의 오른쪽에 두었다.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궁궐과 함께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광해군 원년(1609)에 재건된 것으로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중 49위의 위패를 19실에 봉안하였다. 정전의 부속건물로는 조선 역대 공신 83인이 배향된 공신당(功臣堂)과 칠사당(七祀堂)이 있다. 칠사당은 월대 아래쪽 남신문 서쪽에 칠사당이 있고, 반대편에는 공신당(功臣堂)이 있다. 칠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공신의 배향묘인 공신당은 정면 1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전은 원래 정중실 7칸으로 창건되었으나 재위 임금들이 늘어남에 따라 11칸, 15칸, 19칸으로 3차례에 걸쳐 증축되었다. 여기에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19위의 왕 부처 위패들이 봉안되어 있는데, 서쪽 제1실에 태조 부부를, 동쪽 끝인 19실에 순종 부부를 모셔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순서로 봉안하고 있다. 정전의 증축 방향도 당연히 서쪽을 고정하고 동쪽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정중실이 늘어나면서 동쪽 익사와 월랑의 위치도 따라서 변동되었으며 앞의 월대도 넓혀지고 월대에 딸린 계단의 위치와 담장과 정문의 위치도 바뀌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종묘 정전은 정면 2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졌다. 이중 정중실(正中室)은 19칸이며 좌우 익실(翼室)이 3칸씩이다. 동익실의 끝에는 남쪽으로 5칸의 배례청이 있으며, 서익실 끝에도 서월랑을 두어 정전 건물은 전체적으로 ‘ㄷ'자형식이다. 전툇간은 완전히 개방해 건물의 깊이를 강조하고 제례행사에 편리함을 제공하였다. 전툇간은 방형과 원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초석에 원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에 이익공을 놓아 결구하였다. 내부는 중앙에 고주를 두개 세우고 그 위에 대들보를 걸고 종향을 올린 다음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쳤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홑처마에 지붕의 각 마루는 양성을 하여 취두, 용두, 잡상을 얹었다. 종묘 정전 건물앞에는 넓은 월대가 조성되어 있고 월대에서 정전 앞까지는 2열의 방전을 깔아 신도를 두었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4건)
이미지 4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