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종묘 영녕전(永寧殿)

작품명
종묘 영녕전(永寧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지정종목
보물 제921호
장르구분
관영건축
개요
종묘(사적 125호)는 조선 이씨 왕조의 역대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뒤 봉안된 추존왕 부처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종묘의 전체 영역은 종로구 훈정동 1-2의 55,659평과 와룡동 2번지 844평, 도합 56,503평에 이른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한 직후, 왕궁보다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립하여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최고의 기념물로 삼았다. 왕실의 위패를 봉안하는 정전과 영녕전이 중심 건물이고, 제사를 지내는데 필요한 제궁과 전사청, 향대청과 악공청 등의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이 정전과 영녕전을 통틀어 종묘라고 부르지만, 당초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라 하였고, 영녕전은 별묘라고 따로 불렀다. 종묘 창건 때에는 정전 7칸만을 건립하여, 태조의 4대조까지 추존하여 모셨다. 그러나 점차 재위 임금이 늘어남에 따라, 세종대에는 정종의 신위를 모실 신실이 부족하게 되어 새로운 별묘를 본전(本殿) 4칸에 좌우로 1칸씩의 협실(夾室)을 붙여서 건축하여 본전 4칸에 추승된 4대조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것이 영녕전이다. 그 이후에는 정종, 단종 등 단명했던 임금들과, 덕종(성종의 생부)이나 장조(정조의 생부) 등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 33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현재의 규모는 중앙의 본전 4칸, 동협(東夾) 6칸, 서협(西夾) 6칸의 총 16칸 규모의 기다란 건물이다. 또한 동서 양 끝에 월랑(月廊)들이 붙어서 정전의 구성과 유사하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영녕전 원래 본전 4칸에 좌우 협실 1칸씩, 총 6칸으로 창건되었다가, 본전 4칸은 변하지 않고 좌우협실만 2칸으로, 4칸으로, 다시 6칸으로 확장되어 현재에 이른다. 종묘 정전은 서쪽 끝을 고정하고 동쪽으로 확장된 데 비해서, 영녕전은 중앙 본전을 고정하고 양 옆으로 협실들을 확장하여 차이를 보인다. 영녕전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고 전돌을 깔아 전면을 포장하였으며, 상월대 전면에 석계를 설치하여 정전과 같은 형식을 취했으나 그 규모는 작다. 둥근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제실 앞에 완전히 개방된 앞툇간을 두었다. 기둥 상부에는 창방을 돌리고 이익공을 두어 지붕을 받고 있다. 익공의 내부는 초각된 보아지를 두어 대들보를 받쳤으며, 대들보 몸에 붙여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전툇간은 개방되어 각 칸마다 판문을 달았으며 문 외부에 발을 쳤다. 내부에는 감실을 만들고 중앙에 신장(神欌)을 설치하여 정전과 유사한 형태를 취했다. 영녕전이 정전 건물과 다른 점은 신문 좌우에 칠사당과 공신당이 없고 본전과 좌우 협실에 위계 차이가 있으며, 뒤쪽의 각 기둥 사이를 모두 전벽으로 처리했으나 기둥을 노출시킨 점이다. 건물 뒤편은 2단의 화계를 두었으나 조경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서울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문화재 서울편>, 홍대형, 기문당,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2건)
이미지 2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