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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華嚴寺 大雄殿)

작품명
화엄사 대웅전(華嚴寺 大雄殿)
소재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정종목
보물 제299호
장르구분
불교건축
개요
화엄사 대웅전은 경내에서 각황전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일주문으로부터 이루어진 축선에서 타소 이탈되어 위치한다. 건물의 전면에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대석단(大石壇)과 석계(石階)가 있다. 이 건물은 각황전과 함께 조선중기이후 건축으로 대표적 건물이라 하겠다. 화엄사 사적기에 의하면 본 건물은 임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6년(인조 14)에 벽암선사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벽암선사는 인조가 즉위한 후 남한산성을 쌓는데 공을 세우고 이후 훼손된 사찰들을 재건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화엄사가 완성되었을 때 나라에서는 화엄사에 선종대가람이라는 교지를 내렸다. 왕실의 비호 아래 중창된 사실을 표방하기 위해서 대웅전 현판은 원종(元宗)의 친동생으로 인조의 유일한 친숙부였던 의창군 광(珖)이 쓰고 그 사실을 낙관으로 드러내었다. 이는 억불체제 아래에서 왕실의 힘을 빌려 사격(寺格)을 높이고 관리와 유생들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화엄사라는 대가람의 대웅전으로는 다소 적은 편이나 부처님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보면 계곡을 지나 멀리 섬진강의 주변풍경을 느낄 수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기둥사이 간격을 모두 동일하게 하였고 또 기둥이 높아 기둥열이 매우 정연하다. 다포형식인 공포는 내외 삼출목으로 외부에는 쇠서부분에 장식적 요소가 증가되고 내부에서는 대들보는 받친 공포의 살미첨차가 한 몸으로 합쳐져서 장식판처럼 변형되었다. 전면 기둥 사이에는 각각 세 짝의 문을 달았으며 그 위에는 교창을 만들었다. 지붕의 가구(架構)를 위하여 불단 후면에 3개, 불단 전면 좌우에 각 1개씩의 고주(高柱)를 배치하여 대들보를 받쳤다.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주위의 바깥 둘레칸을 중앙부분보다 한층 낮게 만들었다. 이는 불단부분을 높게 하여 장엄을 주기 위함이다. 불단에는 화엄종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좌우로 모셔 법·보·화 삼신불을 이루고 있고 협시보살을 한 분도 모시지 않았다. 불상은 조선시대 것으로는 크고 제작도 우수하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불멸의 원리 자체를 상징하기에 법신(法身)이라 한다. 그 왼쪽 즉, 바라보기에 오른쪽에 있는 노사나불은 보살로 있으면서 원과 행을 닦아 얻은 인연으로 이룬 보신(報身)이라 하므로 보관을 쓴 보살상으로 표현하였다. 법신 오른쪽의 석가모니불은 이념적인 불신이 실제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 몸을 나타내 보인 것이기에 화신(化身)이라 한다. 불상의 위에는 정(丁)자 모양의 닫집을 3개 달았는데 전체가 매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전남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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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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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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