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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작품명
화엄사 각황전
소재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지정종목
국보 제67호
장르구분
불교건축
개요
화엄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연기(緣起)조사에 의하여 창건되었고, 자장(慈藏)율사에 의해 증축되었던 대가람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벽암(碧巖)선사가 1606년부터 재건하여 지금과 같은 큰 절이 되었다. 각황전은 1702년(숙종 28)에 계파대사(桂波大師)가 중건한 중층의 대불전(大佛殿)으로 전내에는 삼여래(三如來)·사보살(四菩薩)을 모시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각황전은 통일신라시대에 건조된 것으로 생각되는 석축 위에 조성된 대지에 주축선과 직각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가구식으로 잘 짜여진 석조 기단 위에 선 웅장한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팔작지붕 다포집이다. 가구구조 형식은 기둥머리에 창방을 끼고 그 위에 평방을 돌리고 있으며 평방 위에는 기둥 위와 기둥사이에 공포를 올렸고 공포는 상하층이 모두 내외이출목으로 되었다. 내부는 맨 위 천장까지 터 있는 통층으로 되었고 초층(初層)은 짧은 퇴보로 안쪽의 고주와 바깥쪽의 변주가 연결되었다. 천장은 고주를 끼워 우물 천장이 가설되었으나 그 주변이 굽어 경사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적은 수법이다. 공포 양식은 외부첨차가 곡이 심한 쇠서(牛舌)로 시대가 떨어짐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체적인 느낌은 매우 복잡한 공포가 처마 밑에 꽉 차 아주 화려한 느낌을 준다. 또한 공포의 부재가 두툼하고 건실하여 안정된 감을 준다. 신라 때에는 건물내벽에 대리석으로 화엄경을 석각(石刻)하여 장치하였으나 그 후 불타버리고 현재는 건물 불단 밑에 그 파편이 따로 수장되고 있어 옛날 화엄학의 대도량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화엄사 사적기에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중건년대는 숙종25년(1699)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4년간에 걸쳐 완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각황전 본래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다. 중창 때 각황전 현판을 걸어 지금까지 각황전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몸을 일컬어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장육전에는 석가여래의 모습 만한 장육의 금색불상을 봉안했을 것이고, 그 부처님은 지금의 좌불과는 달리 입불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인 모습이 장중하고 안정되었으며 가구의 치목과 짜임이 우수한 건물이라 하겠다. 또한 규모의 면에 있어서도 여수 진남관에 버금가는 건물이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전남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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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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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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