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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조사당(神勒寺 祖師堂)

작품명
신륵사 조사당(神勒寺 祖師堂)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지정종목
보물 제180호
장르구분
불교건축
개요
여주읍의 동북쪽에 나지막한 봉미산이 있고 이 산의 꼬리가 여강에까지 뻗어 안벽을 이루는 그 남쪽 기슭에 신륵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신륵사가 대규모 사찰이 된 것은 1376년(고려 우왕 2)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입적한 후 1379년(고려 우왕 5)에 각신, 각주 등이 이 절을 크게 짓고 나옹선사의 부도를 세웠기 때문이다. 1440년(세종 22)에 중수(重修)하였으며 1472년(성종 3)에 국가에서 확장하여 영릉(英陵)의 원찰로 삼고 200여 칸의 보은사라 개칭하였다.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이,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僞學)·천심(天心) 등이 중수하였고, 1858년(철종 9)에 다시 중수하였다. 신륵사라 이름 짓게 된 것은 신기한 미륵, 또는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부렸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다. 동대 위에 있던 전탑 때문에 고려에는 벽절이라고 불렸다. 신륵사의 서북편에 위치한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3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이 건물은 조선 예종 때 중수된 기록으로 보아 이 즈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불단 후벽 중앙에 나옹(懶翁), 그 좌우에 지공(指空) 및 무학(無學)대사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남향한 낮은 석단(石壇) 위에 세워져 있는 단층의 작은 당우(堂宇) 조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다포집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전면을 제외한 3면이 벽으로 마감하였는데, 측면의 한칸만은 외짝의 정자살문을 달아 따로 출입구를 만들어놓았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과 측면의 비례를 1.07:1로 구성하여 거의 정방형에 가깝고 건물내부에 기둥 없이 천정을 모두 우물천정으로 짜서 대들보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장대석을 한벌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주초는 다듬은 초석으로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고 그 위에 평방을 놓았으며, 공포의 짜임은 외2출목, 내2출목으로 살미첨차는 초제공이나 2제공 모두에서 끝이 앙서로 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교두형(翹頭形 :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으로 되어 있어, 조선 초기의 다포식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면과 후면 기둥 사이에 간포 네 개씩 걸쳤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정면에는 여섯짝의 띠살창호를 달았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경기도편>, 건축가협회, 1999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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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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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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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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