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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 해탈문(道岬寺 解脫門)

작품명
도갑사 해탈문(道岬寺 解脫門)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지정종목
국보 제50호
장르구분
불교건축
개요
월출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도갑사는 신라시대에 도선 국사(道詵 國師, 827∼898)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 말에 크게 중흥되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 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갑사사적(道岬寺寺蹟)>에 의하면 도갑사는 661년 신라 무열왕대에 창건되었고 신라 말 고려 초 도선 국사에 의하여 크게 중흥하고 조선 성종 4년(1473)에 해탈문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 뒤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성
도갑사의 사역(寺域)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하천이 있고 이를 건너 해탈문의 옆으로 진입하게 된다. 계단을 오르면 서향한 해탈문을 맞이하게 되고 그 문을 지나 약한 경사로를 따라가면 대웅전 앞뜰에 다다르게 된다. 이 뜰에는 중앙에 석등이 있고 그 양편에 3층과 5층의 석탑이 놓여있다. 이들 바깥쪽으로는 요사채와 승방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는 중문(中門)이 있었을 것이라 하며 사찰의 동서축 양쪽으로 회랑지(廻廊址)와 유사한 유구가 노출되어 원래는 신라식 가람을 연상케 하는 회랑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해탈문(解脫門)은 불전 바로 앞에 세우는 문으로 불이문(不二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닌 경계를 말하며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내며, 일체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하여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처님의 이치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해탈문은 1960년 중수공사 때에 발견된 종도리 장혀에 쓰여진 상량문에 의하면 신미(信眉), 수미(守眉) 두 스님의 발원으로 성화(成化) 9년(1473)에 입주(立柱)를 하였다는 기록이 밝혀졌다. 원래는 사천왕문의 기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현재는 금강역사상을 안치한 사찰의 정문역할을 한다. 중앙 칸은 통로로서 좌우 칸보다 약간 넓고, 좌우 칸을 2칸으로 나누고, 금강책(金剛柵)을 세워 그 안에 금강역사상을 봉안하였다. 이 문은 주심포계의 맞배집인데 그 구조적 특징은 대량 위에 우미량을 두고 이 우미량이 종보를 받고 있는데 종보의 뺄목은 밑에서 소로로 받치고 계자눈을 조식한 점 등이 관룡사 약사전(觀龍寺 藥師殿)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또 종보 위에 작은 화엽대공과 인자대공을 두어 고식(古式)을 나타낸다. 공포는 헛첨차 위에 초공살미를 돌출시켜 외목도리를 받되 행공첨차를 두지 않고 소로와 장혀를 바로 받치고 있다는 점은 부석사 조사당의 기본적 형식과 같은 점을 보이고 있지만 여기서는 쇠서 끝이 당초무늬의 보아지로 조각되어 보를 받고 있고 헛첨차에 당초문 첨차를 사용한 것도 좀 다른 점이다. 기둥머리에서는 창방과 헛첨차가 사궤맞춤이 이루어지고 있고, 주두에서는 송광사 국사전(松廣寺 國師殿)과 유사한 형태의 주심첨차와 초제공살미가 십자 맞춤된다. 특이한 점은 공포의 출목이 구조적으로는 2출목이면서 형태상으로는 1출목으로 된 것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또 마루보를 받치고 있는 포대공의 양식이 기둥머리에 있는 공포와는 전혀 달라서 마치 다포건축양식의 공포와 같은 형태로 된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예는 우리나라에서 드문 경우이다. 따라서 해탈문은 주심에 소로를 놓지 않고 공포재를 결구시키는 방법에 상당한 고심을 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어, 다포계 공포의 결구방식이 주심포에 채용되는 과도기적인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전남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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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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