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개암사 대웅보전(開岩寺 大雄寶殿)

작품명
개암사 대웅보전(開岩寺 大雄寶殿)
소재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지정종목
보물 제292호
장르구분
불교건축
개요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에 묘련(妙蓮) 왕사가 개창하였고 676년(신라 문무왕 10)에 원효(元曉)와 의상(義湘) 두 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1414년(태종 14)에 다시 사찰을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36년(인조 14)에 계호(戒浩)대사가 대웅보전을 중건하였고 1657년(효종 8)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며 1783년(정조 7)과 1913년에는 대웅보전을 중수하였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봉안한 전각으로 대웅이란 말의 뜻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한 것이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컫는 데서 유래한다. 개암사 대웅보전은 이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자연석 허튼 층 쌓기로 쌓은 석축 위에 낮은 외벌대 기단을 두고 민흘림 원주를 세웠으며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여 축부(軸部)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의 주상포(柱上包) 외에 어간에 기둥 사이에도 배열된 다포계(多包系) 형식인데 바깥에 드러난 첨차를 연꽃과 줄기모양으로 투각(透刻)하고 주두를 하엽(荷葉) 모양으로 깎은 점은 매우 독특하다. 창호는 전면 중앙에 4분합, 좌우의 협간은 3분합의 꽃살문을 달았으며 측면의 전 협간에는 세살 출입문을 달았는데 근래에 다시 만든 것들이다. 지붕은 팔작 형식이며 전후면 모두 서까래 위에 부연(浮椽)이 달린 겹처마이다. 내부에는 전후면 평주(平柱)에 통간으로 대들보를 걸치고 그 위에 동자대공을 올려 종보(宗樑)를 받쳤으며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았다. 대들보 밑에 세운 고주(高柱)에 의지하여 후불벽(後佛壁)을 꾸몄고 그 앞에 수미단(須彌壇)을 설치하여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을 봉안하였다. 수미단 상부에는 복잡한 다포계 공포와 운룡(雲龍)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닫집을 설치하여 장엄을 더하였다. 천장은 일반적인 소란반자이나 층급이 있는 형식으로 중앙부분은 높고 바깥쪽은 약간 낮다. 대들보에 걸친 충량(衝樑) 머리의 용두와 공포 제공의 끝에 장식된 용두와 봉황은 매우 정교하며 화려하다. 내소사 대웅전(來蘇寺 大雄殿)이나 위봉사 보광명전(威鳳寺 普光明殿)과 마찬가지로 외관은 장중하고 비례는 안정되어 있지만, 수법과 내부공간은 화려한 장식에 치우쳤다. 여기서 백제계의 안정감과 다포 중기의 장중함과 조선 후기의 장식적 경향을 동시에 추측할 수 있다. 개암사 위로는 500여 m 떨어진 곳에 울금 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세 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중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았다고 하며, 이 주변의 주류성은 백제 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도면 및 이미지
연계정보
관련도서 <전국 건축문화자산 전북편>, 건축가협회, 1999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1994 관련사이트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련멀티미디어(전체4건)
이미지 4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