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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의 수용 시기

작품/자료명
양악의 수용 시기
장르구분
1910년 이전
개요
한편 양악의 도입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최남선에 의해 이루어졌다. 최남선은 1929년 ‘서양 음악이 언제부터 어떻게 조선인에게 알려졌는가’라는 글에서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한, 서양 음악 이론의 수용과정과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서양 음악에 관한 견문록을 취급하였다. 이에 의하면,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1795년)를 통해서 서양 음악의 기초이론이 단편적으로 소개되었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1834-1839년)을 통해서 서양 음악의 보표, 음자리표, 변화표, 음표 등의 종류, 명칭, 발음, 의미 등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김노가제는 중국의 북경에서 느꼈던 서양 음악의 인상을 <연경기(燕京記)>(1792년)에, 홍대용은 북경에 설치된 가톨릭교회의 오르간에 관한 인상을 <담헌집(湛軒集)>(1762년)에, 박지원은 서양 음악을 들었던 인상을 <열하일기(熱河日記)>(1778년)에 소개했다. 최남선의 기록은 최초의 양악연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후 전개되는 한국양악사 연구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후학들은 대부분 최남선의 기록을 근거로 해서 한국양악사의 제1장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으며, 현재에는 한국양악의 초기의 수용과정을 논할 때, 최남선의 문헌기록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체계화시키는 것이 상식과 같이 되어버렸다. 그와 함께 최근에는 나운영이 제시한 바와 같이, 최남선에 의해 언급된 실학자들에 의한 서양 음악 이론의 수용을 한국양악사의 기점으로 보는 설도 대두되었다. 한국양악의 기점에 관한 논의를, 수용의 주체 또는 수용자와 전달자의 관점에서 보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래에 따른 서양 음악의 수용은 외국인에 의한 ‘수동적 도입(전달)’으로 또한 군악대 창설과 <직방외기>, <오주연문장전산고>로 인한 서양 음악의 수용은 한국인에 의한 ‘능동적 도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대적 관점에서의 서양 음악 출발점을, <직방외기>(1631년경)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370년 전이고, 가톨릭 전래에 따른 시점으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이고, <오주연문장전산고>로 보면 160여년 전이고, 프로테스탄트의 전파와 군악대 창설에 따른 시점으로 보면 100여년 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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