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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석(鄭熙錫)

예술가명
정희석(鄭熙錫)
분야
연주자
생애
정희석은 서울 토박이로 종로구 계동에서 1917년 8월 25일에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화학당 부설 유치원에서 조기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수송초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이때 친척아저씨의 바이올린 연주에 이끌려 바이올린을 해보겠다는 막연한 결심을 굳힌다. 그는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에 매달릴 수가 있었는데 현재의 경기고등학교인 경성 제1고보에 진학하면서 독학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안성교 선생을 찾아 체계적인 바이올린 공부를 할 수 있었고, 4학년에 올라가서는 연희전문학교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는 등 차차 그의 재능이 알려지게 되었다. 연희전문에 입학한 후 그는 계정식 박사를 사사하는 동시에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독주자로 활약하는 등 연주생활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41년 3월, 연희전문 문1과를 졸업한 후 일본음악학교 기악과 본과 3학년에 편입, 그 이듬해 4월에 졸업하였다. 1944년 제1회 독주회 이후 그는 10회의 독주회를 기록했는데 마지막 독주회는 1970년 9월 정진우의 피아노로 국립극장에서 가진 연주회였다. 10회의 독주회 중 5회의 독주회는 대만에서 가진 것으로 1952년 11월 대만의 초청으로 2년 동안 그곳에 체류하면서 40명의 문하생을 양성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약력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 1942년 일본 고등음악학교 기악과 졸업 1942년 일본 동경 송죽(松竹)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주자 1944년 경성(京域) 중앙방송국 관현악단 악장 1946년 고려교향악단 악장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1967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상훈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5년 교육공로표창 1976년 은관문화훈장 1982년 국민훈장 동백상 1984년 대한민국예술원상
공연
1944년~1951년 독주회 8회 1945년 서울3중주단 창단(피아노: 윤기선, 바이올린: 정희석, 첼로: 이강렬) 1950년 서울교향악단 협연 1952년 자유중국 대북(臺北)에서 독주회 1957년~1959년 뉴스트링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 1964년~1969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5회 지휘 1968년~1969년 대구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지휘 1970년 독주회 바이올린 소나타의 밤 1987년 고희기념(연세동문 오케스트라 지휘)
저서
<라 폴리아>, Corelli, 정희석 편, 1971 <샤콘느>, Vitalli, 정희석 편, 1981
리뷰
(……) 그는 매 독주회 때마다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고 동시에 항상 새로운 레퍼토리의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 중 1955년 5월, 곽은수의 피아노로 배재고등학교 강당에서 가진 독주회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우리 가곡 <고향>, <산들바람>, <동심초>, <봉선화>, <가고파> 등을 접속곡으로 편곡, 연주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크라이슬러 풍의 소품에다 우리 가곡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 얼을 가미시킨 독특한 레퍼토리를 확대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품만을 다룬 것은 아니어서 그날의 후반에는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연주가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느끼게 한다. 또한 정희석의 업적은 연주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 또는 지휘자로서의 능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1946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1967년까지 재직하면서 이화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해마다 2회의 정기연주는 물론 오페라 등을 무대에 올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대학 오케스트라를 궤도 위에 올려 놓았다. - ‘음악을 향한 신실한 열정의 바이올리니스트’, 한상우,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대한민국예술원, 1998
관련도서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대한민국예술원, 1998 <기억하고 싶은 선구자>, 한상우, 지식산업사, 2003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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