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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초(全鳳楚)

예술가명
전봉초(全鳳楚)
분야
연주자
생애
전봉초는 3·1 운동의 만세소리가 진동하던 1919년 3월 18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전리순과 이해원의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 7세,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맹산 북창으로 이사하게 되자, 그 역시 맹산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전봉초는 이때부터 하모니카를 부는 등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음악의 길을 걷게 된다. 4형제가 예술에 소질을 갖고 있어, 형들을 통해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특히 화가였던 큰 형님과 작곡가 김동진이 숭실학교 동기동창이어서 처음에는 김동진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그는 숭실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에 매달렸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김태연의 첼로 연주를 듣고는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태연으로부터 약 2년간에 걸쳐 첼로를 배우다가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동경제국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권위 있는 첼로교수였던 오무라의 제자가 되었다. 일제시대였지만, 스승 오무라는 차별을 두지 않고 열심히 지도해, 그는 음악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 NHK교향악단의 전신인 일본교향악단의 객원주자 자리를 맡게 되고, 킹레코드사의 임시주자로서 녹음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연주활동을 할 수 있었다. 1946년 5월에 월남한 그는 현제명이 이끄는 고려교향악단에 입단했다가 서울교향악단이 창단되자 자리를 옮겼고, 배재강당에서 제1회 독주회를 개최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첼로 독주회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힉 교수직과 더불어 연주회를 이어가는 전문 연주가로서의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독주회 20회, 교향악단과의 협연 7회, 바로크합주단의 지휘 21회, 그리고 실내악 운동 등의 연주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약력
1943년 일본 동경제국음악학교 졸업 1943년 만주국 신경교향악단 및 서울교향악단 수석주자 1952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1974년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 부회장 1981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운영위원 1982년 서울시 문화예술진흥위원 198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4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추진위원 1985년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1986년 사단법인 코리안심포니 이사장, 제10차 아시아경기대회 평가위원 1989년 전쟁기념사업회 자문위원회 부의장 19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운영위원 1988년~1990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회장 1992년 재단법인 안익태기념재단 이사장
상훈
1963년 5월 문화예술상 1975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0년 금관문화훈장 1980년 교육공로상 1996년 예술문화대상
공연
1948년~1987년 첼로독주회 20회 1951년~1984년 실험악회, 서울3중단, 서울대 4중주단원으로 80여 회 실내악 연주 1960년 IMC(국제음악협의회) 한국대표참가 1965년~1975년 서울 바로크합주단 창단 및 19회 지휘 1984년 첼로 오케스트라 연주회 1985년 IMC(국제음악협의회) 한국대표참가 1987년 일본 일·한협회 초청연주회(교도) IMC(국제음악협의회) 한국대표참가 1993년 악단생활 50년 첼로연주회 서울시향, KBS, 광주시향, 부산시향 등과 협연 8회 동남아 문화친선사절단 일원으로 독주 및 3중주(베트남, 타이, 홍콩, 필리핀, 오끼나와)
저서
<롱현오십년낙수(弄絃五十年落穗)>, 전봉초, 1989
리뷰
(……) 전봉초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학장을 역임했으니 교육자임에 틀림없지만, 교육자이기 전에 연주가였으며 또한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초창기 우리 음악계에서 특히 첼로라는 악기에 대한 인식이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첼로 연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뿐 아니라, 첼로에 대한 이해는 물론 어떻게 하든지 연주행위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주장을 펴보이려는 그의 집념은 많은 성과를 얻었던 것이다. 특히 1960년 제8차 세계음악협의회 대표로 참가했다가 당시 유럽에서 바로크 음악을 중심으로 실내악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많은 실내악 악보를 구입해 들어와 서울대 음대에 실내악 과정을 만드는 한편, 실내악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1965년에는 바로크합주단을 창단, 지휘자로 취임했다. 전봉초는 그때까지 국내 음악계에서 전혀 생소하게 느껴졌던 바로크시대 음악들을 중심으로 수준 높은 실내악 레퍼토리들을 집중적으로 무대에 올림으로써 본격적인 실내악 운동의 불을 붙였던 것이다. 바로크합주단은 전봉초의 지휘하에 21회의 정기 공연을 기록한 후,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서울음대 교수로서 바로크합주단의 악장을 역임한 김민이 리더로 새롭게 출발, 지금까지 실내악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 ‘한국 첼로의 선각자’, 한상우, <한국예술총집 음악편>, 대한민국예술원, 1998
관련도서
<기억하고 싶은 선구자>, 한상우, 지식산업사, 2003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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