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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체명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
개요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한국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와 유럽 연주자들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문화적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신개념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자는 희망 아래 1997년 서울 국제음악제를 통해 ‘Euro-Asian Philharmonic Orchestra’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였다. 이 때의 데뷔연주에 참가했던 한국의 젊고 유능한 연주자들이 현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유라시안필하모닉의 진지하면서도 유연한 음악적 태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료관객수에서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199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단연주회가 전석 매진을 기록하였으며, 유료관객 동원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1999년엔 전국 문예회관연합회 초청 전국순회연주에서도 전석 매진행진을 기록하며 문화적 소외지역으로 머물러오던 지방 클래식 무대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데에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1999년 12월 31일 포스코센터 1층 아트리움에서 열린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 연주의 대성공은 클래식 음악회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불식시킨 신선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토벤 페스티벌’과 ‘차이코프스키 페스티벌’은 유라시안필하모닉을 대표하는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잡아 포스코 아트리움의 특설무대를 통해 매년 계속되고 있다. 2000년 서울 ASEM 국제회의 개막 및 폐막 연주는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음악적 지향이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 대표적 사건으로 손꼽힌다. 세계 25개국 국가원수가 참가하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유라시안필하모닉은 지휘자 금난새의 비전과 감각, 젊은 단원들의 패기 넘친 열정을 과시하며 세계의 청중들을 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창단 이래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는 ‘문화를 매개로 한 기업체와의 제휴’ 또한 이 분야의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2001년 이후 계속되어온 삼성전자와의 제휴를 비롯하여 2002년 제일제당과의 호혜적인 협력모델은 기업-예술단체 간 상호발전을 기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2000년부터 국립중앙도서관과 공동주최로 지성관객을 위한 연 10회 이상의 도서관음악회를 개최하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상주하고 있다.
규모
- 상근단원 수: 73명 - 상근직원 수: 7명
연간 연주횟수
- 60여 회
활동내역
2000년 서울 ASEM 개막 및 폐막 연주회 연주 / 가족음악회(2회) / 베토벤 페스티벌(5회) / 도서관음악회(10회) 2001년 베토벤 페스티벌(5회) / 청소년음악회(7회) / 도서관음악회(10회) / 가족음악회(5회) 2002년 청소년음악회(3회) / 베토벤 교향곡 전곡연주회 / 차이코프스키 페스티벌(6회) / 도서관음악회(9회) 2003년 러시안 페스티벌(3회) / 베토벤 교향곡 전곡연주회 ‘위대한 베토벤’(9회) / 중국 순회연주 2004년 금난새의 테마가 있는 음악회(4회) / 금난새의 행복이 흐르는 음악회(4회) / CJ 클래식 시리즈(20회) / 포스코 심포니 페스티벌(6회) / 도서관음악회(10회) / 오페라 시리즈 ‘사랑과 죽음’ / 캠퍼스 심포니 페스티벌(5회)
예술가
금난새(1947. 9. 25~) 지휘자 금난새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음대에서 라벤슈타인을 사사하였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콩쿠르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룬 뒤, 1920년 국립교향악단 전임지휘자, 1981년 KBS교향악단 전임지휘자, 1992년 독일 챔버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2001년 청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거쳐 수원시향의 지휘봉을 잡으며 정상급 지휘자로 인정받았다. 그가 연주회 때마다 선보인 ‘파격’과 ‘독특한 시도’는 클래식 음악회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음악회에 재미난 해설을 곁들이고 때론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들여 지휘봉을 넘기기도 하고, 연주할 곡목을 미리 알리지 않는 깜짝 음악회를 연출하는 등 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 음악을 청중 가까이에서 살아숨쉬게 만들었다.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지휘자 금난새를 스타덤에 올린 대표적인 간판 프로그램이다. 1994~1999년까지 6년간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7년 유러피안마스터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거쳐 모스크바필하모닉오케스트라, 프라하방송교향악단, 독일 캄머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였으며, 1998년 ‘벤처 오케스트라’라 불리우는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금난새는 지휘자 겸 음악감독이자 ‘벤처 오케스트라’의 CEO로 늘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한다. ‘도서관 음악회’, ‘베토벤 페스티벌’, ‘포스코 로비콘서트’, ‘굿모닝 클래식’ 등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철저한 고객지향의 서비스 정신에서 나온 대표적 프로젝트들로 민간오케스트라 운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기업 메세나 협의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문화창출이 기업의 경쟁력임을 환기시키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문화사업에 참여하도록 이끌고 있다.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센터 콘서트 - 심포니 페스티벌 포스터
리뷰
(……) 금 감독은 스스로 벤처기업 CEO임을 자처한다. KBS교향악단과 수원시향을 거쳐 그가 지난 1998년 창단한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역시 ‘벤처형(型) 악단’을 표방하고 있다. 그의 악단은 지난해 유료관객 동원수 1위(6만여 명·4~12월)를 기록,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정상급에 올랐다. ‘금난새식(式) 경영술’이 주목받는 것은 대중동원의 성공 때문만이 아니다. 정부·지자체에 손벌리지 않고는 악단 운영이 불가능하던 풍토에서, 그는 오케스트라도 기업처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티켓 판매나 기업체 계약을 통한 자체수입만으로 훌륭하게 악단을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라시안 필하모니의 ‘본사’는 도서관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1층. 금 감독이 내민 명함엔 ‘음악감독 & CEO’란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유라시안 필은 주식회사가 아닌 비영리사단법인이다. 그런데도 CEO임을 고집하는 것은 악단을 ‘경영’하겠다는 의지표현인 셈이다. “정식 단원이 45명인데, 월급 주고 꾸려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금 감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고객 기반과 수익원을 창출해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며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라시안필은 약 14억원을 벌었다. 그중 절반 가량은 공연 수입금이고, 나머지는 기업체와 계약해서 받은 후원금이다. 후원금이라지만 한 푼도 공짜로 받지 않는다. 기업 홍보 등을 위해 공연을 해주고 그 개런티로 받는 것이다. 예컨대 유라시안필은 삼성전자의 가전브랜드 ‘지펠’과 ‘파브’의 홍보를 위해 매년 2번의 공연을 해준다. 공연에선 지휘자 금씨의 악보를 종이 대신 평면스크린(PDP)으로 대체해 제품 홍보를 노리는 식의 아이디어가 동원되곤 한다. 음악과 비즈니스의 절묘한 결합이다. “5년 전 수원시향(상임지휘자)을 그만두고 유라시안 필을 창단했는데, 10여 명의 단원이 저를 따라 나왔습니다. 이들을 책임지려면 돈을 벌어야 했지요.” 금 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컨셉트를 ‘공격 경영’으로 잡았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모험을 감수한다는 ‘벤처형 오케스트라’의 슬로건 아래, 관객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이쪽에서 관객을 찾아가 끌어들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번듯한 콘서트홀이 아니어도, 도서관 강당이며 시민회관처럼 관객이 모일 공간은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6~7시간을 내리 연주하는 마라톤 콘서트며, 지금은 명물이 된 서울 포스코빌딩 1층 로비의 ‘로비 음악회’가 이렇게 탄생했다. 교향곡을 들으며 새해를 맞는 제야(除夜)음악회를 처음 시도해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오케스트라가 백화점이라고 칩시다. 고객이 있는데 백화점이 연말이라고 영업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정관념을 깨는 적극적 발상이 ‘금난새식 경영’의 첫 번째 키워드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철저한 고객지향성으로 소화해 비즈니스로도 성공시킨 것이다. 도서관에 거점을 튼 발상부터 엉뚱하다. 소리가 나선 안될 도서관과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는 상극(相剋) 아닌가. 그에 따르면 우연히 중앙도서관의 큼직한 강당을 보고 이거다 싶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당을 연습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물론 공짜는 없다. 대신 1주일에 한 번 도서관 이용객을 위해 로비에서 연주회를 열어주기로 했다. 음악 값으로 집세를 낸 것이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 채산을 맞추는 금난새의 ‘기업형 오케스트라’ 모델은 이렇게 자리를 잡아나갔다. 금난새 씨의 ‘오케스트라 경영’은 모험(벤처) 정신이 핵심이다. KBS교향악단을 12년간 장기 집권한 그는 1992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로 옮기면서 CEO적 발상에 눈을 떴다고 했다. 이때를 그는 ‘삼성전자 CEO에서 지방 중소기업으로 옮긴 셈’이라고 비유한다. “일류 대기업의 CEO도 좋았겠지요.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도산 직전의 회사를 회생시키는 것이 진짜 CEO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는 모험 쪽을 선택했고, 성공했다. 1년에 10번쯤 연주회를 ‘의무 방어전’ 감각으로 열던 침체된 지방악단을, 연간 공연실적 60회의 활기찬 조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모험정신은 결국 창업(創業)으로 이어져, 1998년 ‘월급쟁이 CEO’를 청산하고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했다. 51세 때였다. 그의 입에 습관처럼 밴 말은 ‘청중이 원하는 것’이다. 번듯한 콘서트홀이 아니라고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지방 소도시의 시민회관이건, 빌딩숲이건, 청중이 모이는 곳이면 바로 그곳이 무대라는 것이다. 매주 한 번 꼴은 단원들을 이끌고 지방에 내려가곤 한다. 유라시안 필하모닉은 지난해 42회의 지방공연을 통해 웬만한 도시를 다 누볐고, 올해도 이미 36회를 소화했다 연주회 후 청중에게 설문지를 돌려 반응을 피드백하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특유의 방식 역시 그의 ‘고객 속으로’ 철학에서 비롯됐다. 작년만 해도 설문지를 3,000매 회수해 레퍼토리며 공연 아이디어를 짜는 데 활용했다. 그는 “데이터를 가진 회사와 없는 회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는데, 관객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무대에 오를 때면 고객 앞에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 심정이 되지요.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으니 드셔 보시라는….” 기업 뺨치는 철저한 고객 지향주의. 고객을 샅샅이 연구해 숨은 니즈(욕구)를 찾아낸다는 CEO 철학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열린 49번의 공연 중 절반이 넘는 27회가 완전 매진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84회 중 41회가 매진이었다. 유라시안필하모닉엔 연공서열이 없다. 통상 오케스트라에선 고참 선배가 맨 앞줄을 차지하지만, 그는 정반대로 신참이나 객원 연주자를 앞에 앉히곤 한다. 효율성을 따지면 당연한 배치라고 그는 말한다. “지휘봉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연주를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서툰 신참을 뒤쪽에 앉히는 것이 관행이었으니 연주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 악단엔 군번(軍番)이 없습니다.” 기업이 비즈니스를 글로벌 규모로 전개하듯 그의 목표도 ‘글로벌 오케스트라’다. 조만간 중국 순회연주에 나설 예정이고, 언젠가는 세계 각국의 일류 연주자를 모아 다국적오케스트라를 조직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유라시안’이란 이름도 그래서 지은 것이다. (……) - ‘CEO 금난새 “벤처 오케스트라”’, 박정훈, <조선일보>, 2003년 9월 18~19일
연계정보
-충무아트홀(Chungmu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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