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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음악사의 대들보

예술가명
근현대음악사의 대들보
분야
연주자
개요
대학 교수로 수많은 피아니스트를 양성하였으며, 연주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2002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연주를 하여 16세에 첫 연주를 한 이래 약 80년간을 연주가로서 활동을 하였다는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의 피아노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아노 연주와 교육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희석은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교수로 활동하면서 한국음악발전에 공헌을 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로는 1944년 제1회 독주회를 개최한 이래 10회의 독주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중 5회는 타이완에서 개최를 하였다. 매회 독주회 때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또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에 힘쓰는 한편 한국적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일환으로 한국가곡을 바이올린 곡으로 직접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이화오케스트라를 창단하였고, 1967년 연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서는 연세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등 대학 오케스트라 창단에 산파 역할을 하였으며, 또 직접 지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 한편 바이올린 전공 교수로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전봉초는 우리나라의 첼로 분야와 실내악 분야를 개척한 개척자인 동시에 대학교수, 음악협회 이사장, 예총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 음악예술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48년 제1회 독주회를 개최한 이래 약 20여 회의 독주회를 개최하였고, 실험학회를 비롯하여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3중주단인 프리마 트리오, 서울대 4중주단과 3중주단, 바로크합주단 등 실내악 창단에 산파 역할을 하였고 또 실내악 운동을 주도하였다. 광복 이전에는 잠시 만주의 신경교향악단에서 활동을 하였고, 광복 후에는 고려교향악단과 서울교향악단에서 첼로 주자로 활동을 하였다. 1952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을 하면서 첼로의 아카데미즘 확립과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동 대학의 학장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정년 후에는 음악협회 이사장과 예총 회장직을 지내면서 한국음악의 발전과 국제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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