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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체명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개요
1985년 3월 30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순수 민간교향악단으로 출범했다(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홍연택). 그동안 코리안심포니는 매년 정기연주회와 청소년음악회, 오페라와 발레 연주, 지방순회연주 및 기획연주회 등 연평균 80여 회 이상의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 1987년부터는 국립극장과 전속 관현악단 계약을 맺어 국립오페라, 국립발레, 국립합창의 반주를 도맡아왔으며, 그리고 2년 후인 1989년에는 문화체육부로부터 사단법인체로 승인받기도 했다(초대 이사장 전봉초 취임). 1989년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음악행사로 잠실체육관에서 5천여 명의 합창단이 출연한 ‘대합창연주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1995년 2월 1일에는 제2대 이세중 이사장의 취임과 함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인터컨티넨탈 호텔). 총 50여 장의 음반을 출반하였고 1995년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공연’, 1999년 ‘호세 카레라스 내한공연’, 2001년 ‘3테너 내한공연’ 등 세계 저명 연주자들의 음악을 담당하였다. 한국음악평론가협의회 주최의 제7회 국민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민간교향악단의 선두를 달리던 코리안심포니는 2001년 3월, 창단 16주년을 맞이하여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면서(초대 이사장 이영조, 초대 단장 이운환 취임) 예술의전당 상주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2003년 2월 제2대 이사장 김민 취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국내 음악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민간직업교향악단의 운영 가능성을 보여줌과 함께, 민간교향악단의 시금석 역할을 감당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규모
- 상근단원 수: 82명 - 상근직원 수: 5명
연간공연횟수
- 정기연주회: 6회 - 비정기연주회: 90회
활동내역
1985년 창단연주회 1986년 아시안게임 개막 예술제 <시집가는 날> / 한·일 오페라 페스티발 <노르마> <나비부인> 1987년 신년음악회 / 주한외국인을 위한 밤 / 수재의연금 모금 대음악회 1988년 구미 코오롱공단 음악회 /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음악제 1989년 제1회 5,000명 대합창 연주회 / 포항종합제철 공단연주 / 코오롱 구미공단 음악회 1990년 제2회 5,000명 대합창 연주회 / 평화의 날 수상 기념음악회 / 올림픽 기념음악회 1992년 서울평화의 상 시상식 연주 1993년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기념연주회 오페라 <시집가는 날> 1994년 조수미 독창회 1995년 3·1절 기념 음악회 /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 / 메세나 음악회 / IPI총회 연주회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연주회 / 지방순회연주 ‘사랑의 음악여행’ 1996년 지방순회연주 ‘사랑의 음악여행’ 1997년 지방순회연주 ‘사랑의 음악여행’ 1998년 예술의전당 개관 10주년 기념음악회 / 한국오페라 50주년 기념음악회 / 코리안심포니와 친구들 2000년 예술의전당 오페라축제 / 신영옥 독창회 2001년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3테너 콘서트 / 홍혜경 초청연주회 / 조수미 초청연주회 2002년 알라냐 & 게오르규 연주회 / 신영옥 초청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
예술가
홍연택(洪燕澤, 1927. 12. 28~2001. 5. 17) 홍연택은 1927년 12월 28일 황해도 은율 출생으로 1953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 후, 오스트리아 빈아카데미음악원에 유학하여 지휘를 공부하였다. 귀국 후 1972년 국립교향악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수많은 오페라, 교향곡, 발레 등을 지휘함으로써 우리나라 교향악계와 오페라계에 본격적인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또한 국내 창작곡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고 국내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된 수많은 관현악 작품을 연주·초연함으로써 창작활성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1973년부터 뉴욕에서 심포니를 지휘한 것을 필두로 하여 홍콩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만교향악단 등 해외의 여러 교향악단 초청으로 객원지휘를 맡기도 했다. 이와 같은 심포니운동 이외에 작품활동에 있어서도 남다른 정열을 보인 그는 칸타타 <조국의 영광>, <형제여 손을 주게> 등을 작곡·발표하였으며 오페라 <논개>, <시집가는 날> 등을 작곡하여 1988년 오페라 <시집가는 날>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으며, 문화예술상, 음악동아대상, 6인 비평가그룹 오늘의 음악가상, 제2회 한국음악대상,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한편 1980년에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으로 임명되어 6년 동안 음악행정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1989년에는 건국 이래 최대의 음악행사로 알려진 5,000명 대합창 연주회의 예술총감독 겸 지휘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음악계에는 물론 문화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85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교향악단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성장시키고 2001년 5월 17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포스터
리뷰
(……) 15년 전 홍연택 감독을 중심으로 몇몇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모여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한 민간예술단체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일이었다. 누가 활동을 보장해주겠다는 것도, 어떤 사람이 재정을 영구히 책임지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교향악운동에 대한 애착과 자신들의 의욕만 믿고 맨주먹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부터 형극의 길은 시작된 것이다.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창단 당시 음악계에서 보는 시각은 거의 대부분이 반신반의했고 거의가 얼마 가지 못하리라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오페라는 물론, 합창단과의 협연, 협주곡의 밤, 갈라콘서트를 비롯히여 노래의 반주, 자선음악회 행사장의 연주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연주하는 단체가 되었다. 말 그대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다만 연주횟수의 기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연주기능에 있어서도 마치 물살이 센 강물에 떠밀려 갈고 닦아진 오묘한 수석이 탄생하듯 시련을 극복하고 열심히 기능을 닦은 결과가 민간교향악단의 상징적인 입지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의 선봉장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우수한 합주기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원들이 합심해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일 것이나 단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홍연택 감독의 남모른 고민과 헌신적 노력 또한 빠트릴 수 없다. 단체의 운영비와 단원들의 인건비 마련을 위해 정부기관을 비롯 행정, 사회단체, 기업체들을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탄원도 하고 호소도 하면서 지원을 청탁하는 모습은 눈물겨울 정도였고, 이로 인해 그는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IMF를 비롯, 문을 닫아야 할 절박한 상황에도 그들은 강한 의지로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다. 코리안심포니가 교향악운동에 끼친 업적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근현대작품은 물론 바그너, 말러, 브루크너 등의 대형작품 등 일반적으로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을 과감히 연주하는 등 레퍼토리 확대와 국내 창작품의 초연 등으로 국내 작곡진흥에도 기여하는 작업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코리안심포니의 앞으로의 과정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확고한 재정을 보장받는 재단법인체로의 변신이고 또 하나는 국제무대로의 진출이다. - ‘황무지에서 자생한 민초의 울림,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의 선봉장’, 김형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 15주년 기념연주회 프로그램>, 2000년 3월 (……) 지난 1985년 홍연택 선생을 상임지휘자로 맞으며 창단된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의 15년은 청소년기이지만 교향악단의 15년 연륜은 성큼 원숙의 경지로 치달아가는 시기다. 그리고 그 코리안심포니의 ‘15년 연륜’은 이미 원숙한 음악미를 구사하고 있다. 한 교향악단의 성장배경에는 직간접적으로 문화적, 사회적인 여건이 많은 작용을 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성원이 크면 클수록 반대급부로 사회에 미치는 여파는 더욱 지대하다.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 아직 교향악운동을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으나, 그런 어려움 중에도 코리안심포니의 15년을 한국교향악의 중심에 세우기까지의 고충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으뜸은 단연 경제적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단원들에 대한 예우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장소확보 등에서부터 그 어려움은 시작된다. 특히 교향악의 특성상 연습의 시간이 많을수록 음악미나 앙상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조성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게 마련이다. 음악만을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도 모자랄 그 귀한 시간을 환경조성에 빼앗기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코리안심포니가 그동안 들려준 음악미는 항상 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특히 각 작곡가의 작품에 따른 성격이나 음악적 미의식을 올바르게 전해줄 수 있었던 사실은 한국음악계를 위해서나 음악미의 올바른 가치전파를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 모든 것이 지휘자 홍연택 선생을 위시한 단원들의 최고의 음악가를 위해 자신을 불사르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코리안심포니의 진정한 위상은 한국 오케스트라의 르네상스를 선도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지난 1998년 말 불어닥친 IMF사태로 인하여 다소 침체기를 맞기는 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도 이제 민간오케스트라가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오케스트라에 관심있는 모두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것은 IMF 전까지 수없이 생겨난 그 많은 오케스트라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 표본이 코리안심포니요, 척박한 환경과의 고통스런 싸움의 선봉에 서서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었던 것도 코리안심포니였다. 특히 각 시나 KBS 등에서 지원하는 교향악단이 비교적 경제적 어려움 없이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감안할 때, 음악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코리안심포니가 보여준 모범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것은 예술가들의 긍지를 꿋꿋이 지켜나가려는 단원들의 의지와 지휘자 홍연택 선생의 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국내음악계에 우뚝 선 코리안심포니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니 돌이켜볼 때 코리안심포니의 15돌은 매우 뜻깊은 의미를 한국음악사에 새길 것이다. (……) - ‘세계 속의 코리안심포니를 기다리며’, 문일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 15주년 기념연주회 프로그램>, 2000년 3월
연계정보
-논개-홍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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