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세우영

작품/자료명
세우영
음반정보
21세기KBS-FM시리즈30 <김기수 작품집>, 1999
작곡가
김기수
장르구분
창작국악
내용
<세우영>은 실내악 편성의 작품으로, 우리는 전통적으로 실내악을 세악(細樂)이라 했다. 세악은 선비들의 사랑방인 율방(律房)에서 연주되었고,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곡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현대창작곡이나, 조선조 지식층들의 세악적인 음악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곡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금, 거문고, 아쟁, 장구의 4중주곡이나, 특히 대금의 비중이 높다. 1장은 정악계통의 한국음악이 그렇듯이 이 곡의 시작도 느린 속도로 시작하고 대금이 주선율을 연주한다. 그리고 나머지 세 악기가 대금의 여운을 이어간다. 이 부분은 백제에 대한 연민을 그린 대목이라고 해석한다. 2장은 도드리장단과 비슷한 느낌으로 시작되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살아 숨쉬는 백제로 대표되는 민족의 정기를 그려내고 있다고 해석된다. 3장은 타령 장단의 변형으로 시작하며, 힘이 있고 밝은 느낌이 강하다.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은 부분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세우영>의 또다른 제목은 <자잘비 아래>이며, 김기수는 말년에 자신의 작품의 제목을 모두 한글로 바꾸기도 했다.
예술가
김기수(1717.11.22~1986.10.19) 국악창작의 효시가 되는 인물. 이왕직 아악부 (지금의 국립국악원) 출신인 그는 원래는 대금전공이었으나, 일찍이 작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기수 작곡의 <황화만년지곡>(1939)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이 곡은 당시 이왕직 아악부생이라면 누구나 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과제곡이었다. 그는 평생 우리민족의 역사와 삶을 국악관현악에 옮기려 했다. <정백혼>(1952), <송광복>(1952), <개천부>(1952), <회서양>(1953), <파붕선>(1954)과 같은 초기작품이 있고, 그의 마지막 작품은 우리 민족의 개국과 관련한 <당굴(檀君)> (1985)이다. 그의 실질적인 최초의 작품은 <세우영(細雨影)>으로 봄이 타당하다. 자발적인 의지로 썼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작품에서 작곡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김기수는 일제강점기 만주로 이주해서 그 곳에서 교편을 잡고 한글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잠시 귀국했던 1941년 8월, 백제의 서울이었던 부여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을 담아냈다. 1945년 <고향소(顧鄕韶)> 1951년 부산에서 창설된 국립국악원에 의해 초연 1952년 <정백혼(精白魂)> 3·1운동에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추모곡 1954년 <파붕선(破崩線)> 6·25이후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쓴 곡
관련멀티미디어(전체0건)
이미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