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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오라토리움 2번-이문근

작품/자료명
미사 오라토리움 2번-이문근
작곡가
이문근
장르구분
1954년~1979년
내용
한국 가톨릭 전례 음악에서 아주 특이하게 우리의 얼이 투영된 작품이다. 특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가락은 죽은 이를 위한 애곡의 소리와도 흡사한 가락이다. 그래서 흔히 ‘대영광송’을 빼고 연미사 때 많이 사용한다. 훈련된 합창단을 위한 곡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의 제사에 모두 동참한다는 의식을 그의 미사곡을 통해 심어주는 곡이다. 공의회 이후 가사는 번역된 우리말로 사용된다. 멜로디는 한국적이고 리듬은 2ㆍ3박자를 혼용하고 있으며 단순하다. 가사를 붙이는 데도 ♪♪♩에 ‘그리 스도 여’란 다섯 글자를 포함시킬 수 있게 만든 흔적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더욱이 반주기능을 염두에 두고 쓴 화성은 교회음악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세속의 냄새가 나지 않는 화성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한국적 가락, 정서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호소하는 작품이다.
예술가
이문근 (1918~1980) 영세명은 요한. 작곡가. 신부. 충북 단양 출생. 순교자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철저한 천주교 집안의 신앙 분위기 안에서 성장하였다. 11세 때 인천 박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933년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현 동성중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소신학교 과정인 을조로 선발되었다. 성심대신학교, 덕원신학교, 대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949년 로마로 유학하기까지 명동성당 보좌신부로 사목 활동을 하였다. 이 기간동안 현 가톨릭합창단의 전신인 혼성합창단의 반주자로 활동하였고, 1945년부터 대신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한편 1948년에는 자작곡 5곡을 포함해서 최초의 4부 합창 성가집인 <가톨릭 성가집>을 출판했다. 1949년 로마의 교황청 음대로 유학을 가서 1952년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로 석사학위를, 1955년에 작곡과 디플롬을 받았다. 1955년 귀국하여 1964년까지 가톨릭신학대학 교수를 지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잡지 <가톨릭 청년>에 ‘교회음악사’를 25회 게재하였다. 1957년 <정선 가톨릭성가집>을 출판했고, 1964년에서 1967년까지 가톨릭신학대학 학장을 지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명동 대성당 10대 주임신부이자 부주교로 있었고, 1977년에는 <회갑기념작품집>을 발행하였다. 그의 교회음악 작품으로는 4편의 미사곡과 다수의 각종 성가곡들이 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교회음악에의 한국음악 적용이라는 토착화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1980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지도신부로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작품목록
성가 1. 성녀 소화 데레사 (신원식 작사) 2. 복자찬가 (최민순 작사) 3. 병인 순교 복자 (최민순 작사) 4.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노래 (최민순 작사) 5. 혼배미사 (최민순 작사) 6. 민족 복음화의 노래 (김남조 작사) 7. 성모 마리아 (박춘순 작사) 미사곡 1. 어린이를 위한 미사곡 2. 연미사를 위한 미사곡 3. 일반 미사곡 3편 종교가곡 1. 두메꽃 (최민순 신부 시) 모테투스 1. Te Deum 2. Lugebat autem Judam 작곡집 1. <정선 카톨릭 성가집> (1957년) 2. <회갑기념작품집>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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