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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가-김인식

작품/자료명
학도가-김인식
작곡가
김인식
장르구분
1910년 이전
내용
1910년 한일합방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가 많이 나와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워졌다. <망국가>, <거국가>, <한양가>, <학도가> 등의 애국창가들이 어른, 학생, 아이 할 것 없이 목놓아서 소리 죽여가며 몰래 불렀다. 가사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려워 모르는 아이들도 무엇을 위해 부르는 노래인지는 알아서 아이들도 몰래 부르곤 했다. 가사만 우리 것이지 곡조는 외국곡에 그대로 붙인 것이 많았는데 수요를 충당할 만한 작곡가가 그리 많지 않아서이다. 우리 나라 작곡가로 최초라고도 하는 김인식은 학생시절 서양 선교사로부터 음악을 배워 작곡과 오르간, 금관악기 등을 배웠고 배재학당에서 음악교사를 하면서 작곡했다. <학도가>는 그의 첫 번째 노래책 <최신창가집>에 실려있는 곡이다. 작사는 이상준이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작곡자는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가사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벽상의 괘종을 들어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가니 인생의 백년가지 주마같도다.
예술가
김인식 (金仁湜 1885.9.19~1962) 작곡가. 음악교육가. 평북 강서출생.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와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덕학교에서 창가를 배웠고,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6세 때 선교사 부인 헌트(Hunt)와 당시 정의여학교 교장인 스눅(Snook)에게 성악을 배웠다. 그 뒤 선교사 그람리에게 코넷을 배우는 한편 독학으로 바이올린 연주법을 터득했다. 22세 때인 1907년 서울로 올라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의 전신)가 설립한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 중학부의 음악교사가 되었고,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본격적으로 후진을 양성하여 홍난파, 이상준 등과 같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 뒤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 합창을 지도하였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합창단인 경성합창단(京城合唱團)을 결성하였다. 이보다 앞서 1905년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 평양 서문 밖 소학교에서 연합운동회가 열렸을 때 <학도가>를 작사ㆍ작곡한 바 있는데, 이 노래는 우리나라 창작 창가의 효시가 되었다. 1908년 기호학교 음악교원, 1909년 관현(觀峴) 휘문의숙 창가교사, 1910년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 풍금교사를 지냈고, 계속해서 기호학교(畿湖學校 : 중앙중ㆍ고등학교의 전신)ㆍ진명ㆍ오성ㆍ경신ㆍ배재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밖에 헨델의 <메시아>의 번역을 위시하여 많은 찬송가의 가사를 번역하였으며, 1913년 <영산회상>, <여민락> 등 전통음악을 오선보로 채보하였고, <애국가>, <전진가>, <국기가> 등을 작곡하였다. 1940년 은퇴, 1962년 피난지 대구에서 세상을 떠났다.
작품목록
창가 1. 학도가 2. 표모가 3. 소년남자가 4. 애국가 5. 전진가 6. 국기가 편저서 1. <보통가곡집> (박문서관, 1911년) 2. <교과 적용 보통창가집> (보급서관, 1912년) 3. <조선구악영산회상> (창문당,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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