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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방직 노동쟁의 사례극

작품명
조선방직 노동쟁의 사례극
구분
1980년대 초중반
작품소개
1981년 11월 1일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에서 개최한 노동제 행사의 2부 순서에서 원풍모방 노동조합 탈춤반이 공연한 작품이다. 이 공연은 이전 공연들에 비해 등장인물의 형상화 수준이나 사건전개 과정에서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1~2과장에서는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묘사한 고난의 춤과 강일매, 이승만, 김창룡, 전진한 등이 자신의 권력을 표출하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3과장에서는 강일매가 조선방직 사장으로 취임하고 점점 심해지는 탄압 속에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을 벌이다 실패한다. 조선방직 쟁의사건을 소재로 한 공연이 끝나자 참여했던 7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었는데 일제하의 조선방직 쟁의사건은 그 당시 현실을 그대로 재반영하는 것 같았고, 노동자들은 새삼 현실을 인식하며 울분을 삼켰던 것이다. 1981년 11월 공연 이후 여러 곳에서 재공연 교섭이 들어왔으나 여건이 맞지 않았고, 같은 해 12월 13일 전주에서 열린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지도자 대회에서의 마지막 날과 한국신학대학에서 초청공연을 가졌다. <민족극 대본선 3 – 노동연극 편>, 민족극연구회 엮음, 풀빛, 1991
작품내용
[1 양반과장] 조선방직 사장, 어용 노총위원장, 조직폭력배, 국회의원, 이승만 대통령이 등장하여 거들먹거린다. [2 노동자과장] 전쟁으로 피난을 가는 와중에서도 사장은 공장을 돌리지만 노동자들은 꽁보리밥 한 그릇도 먹지 못하고 배를 곯는다. [3 노사분쟁] 사용자 측이 조직폭력배 120명을 신규로 채용하고 대신 노조 간부들을 해고한다. 이에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자 이승만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경찰을 동원해 진압한다. 노동자들은 힘없이 다시 일터로 향한다.
출연/스태프
스태프 작/공동창작 연출/공동연출
공연단체
원풍모방 노동조합 탈춤반 1980년 5월 말,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노조원들이었다. 노조원 1,700명은 4백70만 원을 모아 6월 초 광주의 대주교 윤공희에게 직접 전달했다. 당시의 공포 분위기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풍모방 노조는 70년대에 활동한 민주노조 가운데서도 가히 전설적인 노조였다. 원풍노조는 전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돼 단체행동이 일절 금지된 72년, 파업농성을 통해 10년간의 어용노조를 청산하고 민주노조를 출범시켰다.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한 74년에는 노조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한국전쟁 이후 초유의 사례를 만들며 회사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80년 봄에는 ‘한국노총 민주화와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전국궐기대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70년대 최강의 민주노조였던 원풍노조도 5공화국의 노동계 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82년 해체되고 말았다. 참고: ‘실록민주화운동: 원풍모방 노동자들’, <경향신문>, 2004.3.14
비평
(……) 현실 상황과 극중 상황과의 넘나듦은 극중 상황이 현실 상황과 반드시 일치되게 설정된 경우가 아니어도 그 효과를 발휘한다. (……) 1981년 원풍모방 노동조합 탈춤반에 의해 공연되었던 <조선방직 노동쟁의 사례극>도 해방 직후 조선방직의 상황을 극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로 참가했던 원풍모방 노동자들과 관중들에게 수십 년 전의 사건과 바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원풍모방 사건은 완전히 겹쳐져서 경험되었다. 그 공연 도중 한 관중이 극중에서 조선방직 노동조합을 떠나는 노조원 인물에게 현실 속에서 노조를 떠난 원풍모방 노조원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지 말라고 울부짖었고, 관중들은 온통 통곡하다시피 울었다고 한다. (……)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조선방직 쟁의의 역사적 의의: 1951년 9월 이승만과 개인적 관계가 돈독하고 귀속재산인 동화백화점의 관리인이었던 강일매가 노동자 6천 명으로 최대 규모의 귀속기업체 방직공장이었던 부산 조선방직 사장으로 취임하여 자기세력을 부식하고 노동자를 해고함으로써 발생한 조방쟁의는 부산정치파동과 맞물리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노동운동사에 영향을 미쳤다. 강일매는 자기세력을 부식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한 뒤 조선방직 노동조합을 어용화하기 위하여 1951년 12월에 노동조합 간부를 해고하였고, 노동자들은 이에 대항하여 강일매의 사임을 요구하였다. 대한노총은 조방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1952년 1월 강일매 사장의 파면 등을 주장하였는데, 대한노총 내의 주종필 등은 강일매가 이승만의 지지를 받는 것을 알고 조방쟁의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며 대한노총정화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대한노총의 분열은 부산정치파동과 연결되었다. (……) 국회에서는 2월 29일 강일매 사장의 퇴진을 결의하는 등 조방쟁의대책위원회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조방쟁의는 1952년 3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강경대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3월 10일 송원도의 동의로 쟁의대책위원회에서는 파업을 결의하였고, 다음날 전진한 대한노총위원장은 3월 12일에 파업에 돌입할 것과 국제자유노련, 국제노동기구 등에 호소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승만은 3월 11일 즉각 담화를 발표하여 공업과 정당운동을 갈라놓겠다고 역설하였다. 조선방직 노동자들은 12일 파업에 들어갔으나 정부의 강경한 대응책에 전진한은 13일 파업을 중지하고 생산보국에 충성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국제기관에 호소하는 것도 보류하겠다고 말하였다. 600여 노동자가 직장을 잃는 등 노동자가 큰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투항한 것이었다. (……) <조봉암과 60년대 – 상>, 서중석, 역사비평사, 1999
관련도서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조봉암과 60년대 – 상>, 서중석, 역사비평사, 1999 <민족극 대본선 3 – 노동연극 편>, 민족극연구회 엮음, 풀빛, 1991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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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원풍모방 놀이마당 ’79
-해태제과 노동쟁의 사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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