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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풀이

작품명
돌풀이
구분
1980년대 초중반
작품소개
<돌풀이>는 온갖 폐행에 시달려온 제주도 대정골 화전민들이 부패한 세정에 항거하여 수차에 걸쳐 봉기했던 철종 12년(1862) 임술년의 제주민란(강제겸란)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이 말해주듯이 돌을 서로 돌려받아 자생의 의지를 하나로 모았다는 ‘윤석서중(輪石誓衆)’은 오늘날 삼다도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돌의 역사적 의미를 재확인케 해준다. 그들이 맨발로 딛고 일어선 돌밭은 생존투쟁의 역사적 현장이다. 그리고 그것은 <태손땅>과 같이 외세와 반민중적 집단에 억눌리는 한반도를 표상한다. 초감제의 맞이굿을 통해 난리에 죽어간 민중의 원혼을 불러 위무·공양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이 마당굿은 제주도 농어민의 건강한 삶을 춤과 일노래의 신명으로 드높이고 영감놀이, 땅뺏기놀이, 기마전 등 극중놀이를 원용하여 지방토호, 관리, 외세 등의 수탈과 농간을 특유의 풍자적 은유로 질타한다. 민중봉기의 뒤끝에 주동자가 처형되고 마지막 할망의 피맺힌 절규가 상여행렬 속에 메아리치는데 관중과 함께 부르는 상여소리를 통해 민중항거의 역사가 오늘의 다짐으로 현재화된다. 역사적 사건을 현재화한 이 마당굿은 지역적 토속성을 보편화한 점도 돋보이지만 진휼거리 등 암울하고 처절한 삶을 하나의 놀이로서 양식화함으로써 비극성을 극복하는 민중적 삶의 표현을 얻어낸 점이 크게 주목된다. (……) <한국의 민중극>, 채희완·임진택 편, 창작과비평사, 1985
작품내용
[앞풀이(초감제)] 원래 초감제는 제주도 굿의 처음에 모든 신(神)들을 굿판에 모셔들이는 청신의례(請神儀禮)이며 굿을 하는 이유를 신에게 전달하는 앞풀이다. 심방이 신칼과 요령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 굿하는 날짜와 장소를 알리고 난리통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혼들을 불러들여 빼앗긴 땅의 내력을 신원한다. [첫째 마당]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다가 잠깐 쉰다. 토호 1, 2와 사또가 등장하여 탐라고을의 모든 것을 세금으로 거둬들이겠다고 한다. 사또와 토호들은 세금으로 거둬들인 것들을 중국상인에게 팔아 돈을 그러모은다. 심방은 사또에게 넋을 드려야 죽지 않는다고 말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또를 이리저리 가지고 논다. [둘째 마당] 조세거리 : 토호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마을 사람들에게서 조세를 거둬들인다. 뚝심이 좋으면 좋다고, 얼굴이 예쁘면 예쁘다고, 늙었다고, 젊었다고, 똑똑하다고 세금을 매긴다. 화전거리 : 마을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고 있다. 토호들이 조상 대대로 갈아먹던 밭과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던 밭을 빼앗아간다. 진휼(賑恤)거리 : 마을 사람들이 배고픔에 허덕이며 등장하여 쓰러진다. 토호들이 진휼을 한다며 멀건 죽을 나눠준다. 마을 남자가 비축미 400석을 풀라고 하자 토호들은 죽 솥을 쏟아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한다. [셋째 마당] 윤석(輪石)거리 : 토호들과 사또 일당이 마을 사람들을 피해 도망친다. 마을 사람들이 돌을 돌려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성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호선만재거리 : 사또 일당이 도망친다. 마을 사람들은 일단 몸을 추스리고 다시 싸운다. [넷째 마당] 민란이 진압되고 주동했던 마을 남자가 사또 앞에 잡혀 들어온다. 마을 남자는 진짜 죄인을 가리라며 제주의 바당(바다)과 땅은 제주 사름(사람)이 임자라고 말하며 죽는다. 늙은 할망이 성 안에 들어와 아들을 찾다가 죽은 마을 남자를 발견하고 운다. 상여소리와 함께 심방이 마을 남자를 상여에 태우고 상여노래를 부른다.
출연/스태프
스태프 작/공동창작 연출/공동연출
예술단체
수눌음 (……)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제주지역에도 마당극의 형태로 현실을 풍자한 극 공연운동이 전개되었다. 제주지역의 마당극 공연은 황석영과 제주대학교 극예술연구회 구성원(문무병, 김수열 등)들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80년 8월 2일, 3일 양일에 걸쳐 마당극 <땅풀이>를 당국의 허가를 받고 공연하였다. 나아가 김수열이 같은 해 10월 광주에서 극단 광대(당시 회장 김정희) 회원들을 만나면서 5·18과 제주 마당극과의 연결이 이루어졌다. 제주지역의 첫 마당극 주체들은 곧바로 소극장을 확보하고 극단 ‘수눌음’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제주도의 토지 투기문제를 다룬 <땅풀이>, <태손땅>, 1932년 해녀들의 항일투쟁을 다룬 <잠녀풀이>, 대몽항전을 다룬 <항파두리놀이> 등 역사물 등을 다루면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까지도 4·3에 대한 접근은 불가능하였다. (……) 1983년 10월 31일 제주대학생 시위와 연관되어 ‘수눌음’이 해체된 이후, 1987년까지 마당극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 마당극 주체들은 ‘한올래’와 ‘눌’을 조직하여 광주 ‘토박이’와의 만남, 현기영 소설 <일시풀이>의 대본작업 등을 하였으나 본격적인 공연을 하지는 못했다. 1986년 공연하려던 <1901년 이재수란>은 경찰당국의 공연장 봉쇄로 좌절되었다. 결국 제주지역 마당극의 부활은 1987년 6월항쟁 이후로 미루어졌다. 같은 해 7월 ‘제주문화운동협의회’가 조직되자 산하에 마당극 조직인 놀이패 ‘한라산’이 창립되었다. (……) ‘4·3극과 역사적 기억’, 박찬식, <기억 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 역사비평사, 2004
비평
(……) 제주의 놀이패 ‘수눌음’은 창립 이후 <땅풀이>, <항파두리놀이>, <돌풀이> 등의 작품을 연이어 내놓았는데, 그들은 제주도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굿과 민요를 표현의 원천으로 삼아 마당연희의 한 전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굿에 대한 그들의 천착은 가히 경외스러울 정도였으며 그들은 처음부터 자기네들의 연희행위를 ‘마당굿’이라는 명칭으로 불렀고 또 그러한 명칭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제주도 마당굿은 일단 ‘좁은 의미의 마당굿’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 - ‘80년대 연희예술운동의 전개 – 마당극·마당굿·민족극을 중심으로’, 임진택, <창작과 비평> 69호, 창작과비평사, 1990.가을
관련도서
<기억 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 역사비평사, 2004 <창작과 비평> 69호, 창작과비평사, 1990.가을 <한국의 민중극>, 채희완·임진택 편, 창작과비평사, 1985
연계정보
-잠녀풀이
-태손땅
-항파두리놀이
관련사이트
놀이패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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