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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놋다리밟기(경북 무형문화재)

작품/자료명
안동놋다리밟기(경북 무형문화재)
전승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지정여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구분
민속놀이
개요
놋다리밟기는 안동시를 비롯 의성군, 군위군 의흥, 안동 금소동, 영양 청기, 영덕 노물 등 경북지역에 널리 분포되었던 정월 대보름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다. ‘놋다리’ 라는 말은 ‘시냇물위에 놓은 다리’라는 뜻으로, 놀이의 유래는 고려말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리를 피해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데리고 안동으로 피난할 때 예천을 지나 풍산을 거쳐 소야천(所夜川)나루에 당도했다. 이 나루를 건너야 안동으로 갈 수 있는데, 마침 물이 불어 신발을 벗고 건너야 했다. 이때 마을의 부녀자들이 개울로 들어가 허리를 굽혀 다리를 놓아 왕과 노국공주가 발을 적시지 않고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흐름
놋다리밟기는 약 1910년 이후에 중단되었고, 그 후 각 마을이나 가정에서 소규모로 애기놋다리가 성행하였는데 이는 1929년경까지 전승되었다. 안동의 놋다리밟기는 크게 ①성밖 웅굴놋다리 ②성안놋다리(삼웃들놋다리, 관아앞놋다리) ③금소동 놋다리 등 3개로 나뉘어 있다.
내용
놋다리밟기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집안에서 권장하였으며, 여성들의 세시놀이로 여성들이 해방감과 여흥을 즐길 수 있는 대동놀이로 늦은 시간에 끝나도 아무 문제없었다고 한다. 안동에서는 성밖과 성안에서 각기 두 패로 나뉘어 놀았으나 성밖 놋다리밟기는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① 성밖 웅굴놋다리 음력 정월 15일 저녁 동부의 부녀자들은 현 옥정동 초당집 마당에 모이고, 서부는 현 법상동 잿집마당에 모여 공주를 모시는 놋다리 밟기를 한다. 공주는 7~8세 정도의 여자아이로 가문이 좋고 어여쁘며 총명한 소녀로, 노란 저고리에 다홍 치마를 입고 휘양을 쓰고 털토수(털吐手)를 꼈다. 초당집 마당과 잿집 마당에 부녀자들이 모이면 놀이가 시작된다. 놀이의 순서는 ①둥둥데미-②실감기-③놋다리밟기-④줄놋다리밟기-⑤양파합대(兩派合隊) 로 구성되어 있다. ㉠둥둥데미 둥둥데미 노래를 부르며, 손을 잡고 원형을 만들어 돌다가 앉으면, 선두가 일어서서 손위를 넘고 원형으로 돈다. 어화유리 둥둥데미 둥둥데미 어화유리 저달봤나 난도봤다 저빌봤나 난도봤다 저길봤나 난도봤다 ㉡실감기 둥둥데미가 끝나면 실처럼 겹겹이 감긴 상태에서, 실감기 노래를 부르며 가장 가운데 있는 선두가 이동하여 감긴 형태를 풀어 큰 원을 만든다. 집실로 감아라 당대실로 풀어라 ㉢놋다리밟기 원을 만들면 모두 원안쪽을 향해 치마를 어깨까지 뒤짚어 쓰고 엎드린다. 이는 저고리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주로 하인이나 종들이 원형으로 구부렸고, 처녀, 새댁, 중년층, 노인층은 원형으로 주위에 둘러 서서 놋다리노래를 불렀다. 이때 공주는 구부린 등위를 밟고 원을 한 바퀴 돌고, 공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에서 손을 잡아 지지대를 만든다. 공주가 한 바퀴를 돌면 선두는 한줄로 만들어 중심가로 이동한다. 어느윤에 놋다리로 청계산에 놋다릴세 이터전이 뉘터이로 나라임의 옥터일세 이기와가 뉘기와로 나라임의 옥기왈세 기어데서 손이왔노 경상도로 손이왔네 무슨꼭깨 싸여왔노 어깨꼭개 싸여왔네 멫대칸을 밟아왔노 쉰대칸을 밟아왔네 무슨옷을 입고왔노 백마사주 입고왔네 무슨바지 입고왔노 지죽바지 입고왔네 무슨띠를 띠고왔노 광목띠를 띠고왔네 무슨보선 신고왔노 타래보선 신고왔네 무슨행전 치고왔노 자치행전 치고왔네 무슨갓을 쓰고왔노 통양갓을 쓰고왔네 무슨풍잠 달고왔노 옥각풍잠 달고왔네 무슨관자 달고왔노 옥관자를 달고왔네 무슨동곳 꼭고왔노 산호동곳 꼭고왔네 무슨갓끈 달고왔노 구슬갓끈 달고왔네 무슨도포 입고왔노 남창의를 입고왔네 손이시러 어이왔노 양모토시 끼고왔네 입이시러 어이왔노 모개쪽을 물고왔네 물이깊어 어이왔노 인다리를 밟아왔네 무슨말을 타고왔노 백대말을 타고왔네 무슨안장 실고왔노 순금안장 실고왔네 무슨반에 채려주도 재죽반에 채려주데 무슨수저 노았드노 은수저가 노았드네 멫접시를 채렸드노 칠첩으로 노았드니 어데다가 밥담았도 식기굽에 담아주데 어데다가 반찬주도 접시굽에 담아주데 어데다가 김치주도 중발굽에 담아주데 어데다가 숭융주도 삼칭쟁반 굽쟁반에 뚜에엎어 갔다주데 놋다리야 놋다리야 ㉣줄놋다리밟기 동부와 서부는 각각 행렬로 나뉘어 현 목성교 서문뚝다리로 이동한다. 선두는 선창자인 노인 부녀자 두 명이 서고, 뒤로 구부린 하인들이 어깨가 맞닿게 옆으로 서서 허리를 구부린채 이동하며, 후창자들은 처녀, 새댁, 중년층, 노인의 순서로 공주 뒤쪽에서 시작하여 대열 양쪽에 일렬로 늘어선다. ㉤양파합대(兩派合隊) 동부와 서부가 서문뚝다리에서 만나면 합쳐져 한 줄로 만들어 공주를 한 명만 세워 놋다리밟기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서로 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꼬깨싸움’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②성안줄놋다리 성안놋다리에는 ‘삼웃들 놋다리’와 ‘관아앞 놋다리’ 두 종류가 전해진다. ㉠ 삼웃들놋다리 삼웃들은 현 안동시청이 있는 안동의 중심가로 과거에는 안동부에서 가장 큰 광장이 있었다. 이 곳에서 정월 대보름 저녁을 먹은 후 근처 사는 여성들이 모여 놋다리밟기를 하며 즐겼다. 참가여성은 주로 아이가 없는 새댁이나 노인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삼웃들놋다리는 ‘줄놋다리’ 로만 구성되며, 공주라는 호칭이 없는 대신 7~8세 되는 소녀가 삼회장까치 저고리를 입고 털토수를 끼고 놋다리를 밟았다. 젊은 새댁들이 허리를 구부려서 놋다리를 만들고, 앞사람의 허리에 메인 명주수건(노랑색 물을 들인 것)을 잡고 머리를 앞사람의 옆구리에 댄다. 좌우에 50~60세 정도의 부녀자들이 3~5명씩 대열과 직각으로 늘어 서서 놋다리 노래를 불렀다. 소녀가 등을 밟고 지나가면 뒷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 대열을 계속 잇는다. 보통 저녁 11시경까지 놀았으며, 역시 1910년 이후에 중단되었다. 이 역시 놋다리를 밟아야 대풍이 든다고 믿어 마을 여성들의 참가율이 매우 높았다. 놋다리에 청계산에 놋다리에 원은윤에 놋다리에 기워되어 손이완노 경상도서 손이완내 거머하로 손이완노 얘게꼬께 싸와완내 놋다리에 청계산에 놋다리에 무슨말을 타고완노 백대말을 타고았네 놋다리에 무슨갓을 쓰고왔노 용단가슬 쓰고완내 귀가실어 워얘완노 명주풀심 싸고완내 입비실어 워얘완노 문어전복물고완내 놋다리에 청계산에 놋다리에 무슨옷을 입고완노 광대철육 입고완네 무슨웃을 입고완노 타래보선 신고완내 무슨버슨 신고완노 육날비틀 신고완내 무슨신을 신고완노 ㉡ 관아앞 놋다리 삼웃들놋다리와 유사한 형태로, 줄놋다리만 진행한다. 성안놋다리에서도 동서부가 있었다. 음력 정월 15일 저녁 부녀자들이 광아앞 광장에 놋다리밟기를 하러 모인다. 놀이는 자시(子時)이전에 끝낸다. 뒷사람은 앞사람의 허리를 안고 고개를 좌로 돌린다. 선두에 창립한 50대 이상의 노인이 서고 그 뒤에 처녀, 새댁들이 허리를 구부려 놋다리를 만든다. 창립은 관아풍속으로 나이가 50여 세쯤되고 친손, 외손을 볼 나이가 되면, 비녀를 꽂은 머리를 풀어 앞으로 돌려 여자상투를 만드는 것으로 이것을 창립, 관례(冠禮)라고 했으며, 안동에서는 1930년대까지 존재했다. 놀이는 허리를 구부린 사람들의 등 위로 두 소녀가 부축하는 여자의 지지를 받으며 걸어가고, 등을 밟힌 사람은 다시 앞으로 가서 대열을 이어 나갔다. 창립한 50대 노인들이 대열의 선두에서 선창하면 40대의 부녀들은 대열의 좌우를 따라가며 후창한다. 놀이에는 남성은 접근을 할 수가 없다. ③금소동 놋다리 금소동은 안동시 외곽에 위치한 마을로, 이 마을은 예부터 안동포 재배와 생산의 주산지며 놋다리밟기 놀이가 20세기초까지 전승되었다. 놋다리밟기는 ‘지애밟기’, ‘놋다리싸움’이라고도 한다. 금소동놋다리는 놋다리밟기, 얼얼이청청, 실감기실풀기, 꼬리따기, 꿀집짓기(대문놀이), 꼬깨싸움 등의 놀이가 있다. ㉠놋다리밟기(지애밟기) 이 놀이는 주로 음력 정월 6일에 많이 했다. 일자형의 줄놋다리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그 위를 14~15세 소녀가 양쪽에서 부녀자들의 손을 잡고 등을 밟고 걸어가면 선창과 후창의 놋다리노래를 부르며 간다. 이 놋다리행렬은 마을의 경계인 ‘구무다리’에 이르면 되돌아 온다. 손이왔네 손이왔네 그어디서 손이왔노 경상도서 손이왔네 무슨말을 타고왔동 백대말을 타고왔대 무슨안장 실고왔노 순금안장 실고왔네 무슨반에 채려주도 재죽반에 채려주데 무슨수저 노았드노 은수저가 노았드네 멫접시를 채렸드노 칠첩으로 노았드니 어데다가 밥담았도 식기굽에 담아주데 어데다가 반찬주도 접시굽에 담아주데 어데다가 김치주도 중발굽에 담아주데 어데다가 숭융주도 삼칭쟁반 굽쟁반에 뚜에엎어 갔다주데 놋다리야 놋다리야 ㉡얼얼이청청 얼얼이청청은 부녀자들이 원을 지어 앉아 서로 손을 잡는데, 앞쪽이 사람부터 차례로 일어나며 잡고 있는 손을 타넘으면서 계속해서 줄이 이어가면 큰 원이 된다. 얼얼이청청 얼얼이청청 달넘세 달넘세 또 하나 달넘세 달넘세 달넘세 또 하나 더 하나 달넘세 달넘세 ㉢실감기, 실풀기 놀이 각기 손을 잡고 달팽이 모양으로 선두부터 겹겹이 감아 들면서 노래부르고, 선두부터 풀면서 뛰면서 노래한다. 집실로 감아라 당대실로 감아라 명주올이 감아라 실올이 감아라 집실로 풀어라 당대실로 풀어라 명주올이 풀어라 실올이 풀어라 ㉣꼬리따기(지달배기) 20명 정도의 부녀자가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줄을 선다. 선두가 가장 뒤의 꼬리를 잡으러 달려 가고, 꼬리쪽은 잡히지 않으려고 사방으로 피한다. 이때 앞사람의 허리를 잡은 모든 사람은 손을 놓을 수 없다. 잡힌 사람은 열에서 나와 앉고, 그 수의 많고 적음으로 승부를 낸다. ㉤꿀집짓기(대문놀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높이 치켜들어 ‘동대문’을 만들면, 여러 사람이 허리를 잡고 일렬로 그 문을 통과한다. 문은 맨 끝에 선 사람을 잡는다. 잡힌 사람은 대문의 뒤에서 서며, 되풀이하면서 꼬리를 다 딴다. (행렬이 대문을 지나갈 때) 어느문으로 대령할꼬 남대문으로 대령하지 문이 낮아 엇찌할꼬 그나따나 대령하지 돌적없어 못 건닐세 그나따나 대령하지 문열어 다고 어떻다고 동대문을 대등하소 돌적없어 못 건닐세. 어디 갔디노 서을 갔디네 (꼬리를 잡았을 때) 꿀로 갈로, 밥으로 갈로 밥으로 간다 ㉥꼬깨싸움(놋다리싸움) 정월 대보름 저녁 부녀자들은 2~3명씩 한 조가 되어 놋다리밟기 노래를 부르며 모인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다가 ‘터논’에 모이면 금소 1동과 2동 부녀자들이 격렬한 꼬깨싸움을 한다. 14~15세 가량의 소녀을 덩치가 큰 부녀의 어깨위에 앉히고 그 앞에 30명 가량의 부녀자들이 둘러싸서 상대편 마을의 소녀를 어깨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싸움을 한다. 이때 부녀자들은 서로 응원소리를 높이고, 꽹과리, 북, 장고, 징 등을 가지고 와 응원을 한다. 이 싸움에서 동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고, 항상 동부가 이겼다. 이 싸움은 흔히 ‘꼬깨싸움’ 혹은 ‘놋다리싸움’이라고도 한다. ㉦구무다리싸움 패한 쪽은 곧 마을 경계인 ‘구무다리’로 이동하여 20명 가량이 긴 막대기를 들고 상대편이 통과하지 못 하도록 진을 친다. 승리한 쪽이 도달하면 또다시 밀고 밀리는 싸움을 한다. 승리한 쪽은 10명씩 어깨동무를 하여 뚫고 나간다. 싸움이 끊나면 모두 한바탕 신명나게 논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慶北禮樂誌>, 慶尙北道, 嶺南大學校, 1989 <安東民俗資料誌>, 安東郡, 1981 <傳統文化의 脈>, 慶尙北道敎育委員會, 1987 <안동역사문화기행>,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푸른역사, 2002 · 관련사이트
용어해설
홍건적(紅巾賊) : 머리에 붉은 건을 두른 도적'이라는 뜻으로, 중국 원나라 말기에 허베이 성 일대에서 일어난 반란군의 무리이다. 고려 공민왕 때 고려에 침입하기도 하였다. 관아(官衙) : 관원이 모여 나랏일을 돌볼 수 있는 건축물을 말하는데, 순 우리 말로 '마을'이라고도 한다. 또 관아를 공서(公署), 공아(公衙), 관부(官府), 관청(官廳), 관서(官署)라고도 하였는데 특히 공해(公解)라는 말은 국가적인 공무를 집행하는 건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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