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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놋다리밟기

작품/자료명
안동놋다리밟기
지정여부
김순염
구분
민속놀이
흐름
안동 놋다리밟기는 기와밟기라고도 불리며, 경상북도 안동지방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부녀자들이 즐기던 민속놀이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동교, 인다리라고 부르기도 한다.놋다리밟기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왕비 및 궁녀들과 피난을 갈 때 그 일행이 청주를 거쳐 당시의 복주(福州, 현재의 안동)로 피난을 가면서 안동의 소야천 나루터에서 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이 나루를 건너야만 안동으로 갈 수 있었으나 마침 물이 불어서 신발을 벗고 건너야만 했는데 마을 부녀자들이 개울로 들어가 등을 굽혀 다리를 만들어 그 위로 공주를 건너게 하였다. 그 뒤 왕실이 다시 환도한 후 그 일을 기념하여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에 이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서 놋다리밟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안동지방 풍속에는 동네 여자들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떼를 지어 성밖에 나가서 모두가 엎드려 줄을 짓는데 앞뒤가 연결되어 끝없이 잇댄다. 그리고 어린 소녀 한 명을 엎드린 사람들의 등 위로 걸어가게 하고 좌우에서 그를 부축하여 서로 소리를 주고 받으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치 다리 밟는〔踏橋〕시늉과 같다. 이때 처녀아이가 먼저 "이것이 무슨 다리요?"하고 소리쳐 물으면 엎드린 사람들이 일제히 "청계산 놋다리요" 라고 대답한다. 한길을 따라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밤이 샌 뒤에야 그만둔다.” 라고 되어 있다. 한편 신라시대의 답교놀이가 변형되어 놋다리밟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놋다리밟기는 1920년경 무렵부터 조금씩 쇠퇴하여 전승이 거의 중단되었다가 1960년대에 안동여고에서 성안놋다리밟기를 지도하기 시작한 이래, 1973년에는 안동 경안여상에서 성밖놋다리밟기를 복원·재연하고 있으며, 1978년에는 안동 길원여고에서 금소동의 놋다리밟기를 전승하고 있다. 안동놋다리밟기는 1984년에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용
안동 놋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젊은 여자들에 의해 연행되는 민속놀이로 정월에 노는 다른 놀이들과 같이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보름날 저녁에 놀이 지역은 금남의 구역으로 선포되고, 곱게 단장한 젊은 여자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를 들은 마을의 여자들이 모여들어 놀이가 시작된다. 놋다리밟기는 모두 일렬로 늘어서서 허리를 굽힌 뒤 앞 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아 다리를 만드는데 이것을 ‘놋다리’라 한다. 다리가 만들어지면 미리 선발된 공주를 그 위로 걸어가게 하고 공주는 노래 소리에 맞춰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맨 앞에서 앞소리패가 선창을 하면 그 뒤를 따르는 뒷소리패가 후렴을 받는데 이 때 불려지는 노래는 시집살이노래, 베틀노래 등 다양하다. 이렇게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놀이를 즐긴다.
안동시내에서 전승되는 놋다리밟기
안동시내에서 전승되는 놋다리밟기의 경우 성안놋다리와 성밖놋다리가 있는데, 정월 대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미리 지정된 장소에 모여 놀이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지만 구체적인 놀이양식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성밖놋다리
성밖놋다리의 경우 동부는 초당집(지금의 안동시 옥정동), 서부는 잿집(지금의 안동시 법상동) 마당에 집결하여 공주를 선출하고 부녀들이 서로 손을 연이어 잡고 원형을 이루어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앞사람부터 차례로 그 뒷사람과 잡은 손을 타 넘으면서 또아리 모양의 원을 그리면 안쪽으로 감아돈다. 이것을 둥둥데미라고 한다. 둥둥데미가 끝나면 또아리 모양이 완성되는데 이어서 실감기 노래를 부르면서 선두부터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풀어낸다. 둥둥데미는 공민왕이 포로가 된 형상이고 실감기는 공민왕이 포로에서 풀려나오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실감기가 끝나면 원래의 큰 원이 되는데 모두 안쪽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저고리가 더러워지지 않게 어깨 위까지 걷어올려 뒤집어쓴다. 이때 구부리는 사람들은 주로 신분적으로 하층민들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원형을 둘러싸고 서서 놋다리 노래를 부르는데 두 패로 갈라 교환창을 하면 공주가 좌우에 부축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천천히 만들어진 놋다리를 한바퀴 돈다. 이렇게 하는 놋다리를 웅굴놋다리라 한다. 웅굴놋다리를 마치면 선두는 원형에서 이탈하여 큰 길로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줄놋다리이며, 앞소리꾼 두 사람이 서고 엎드리는 사람들은 웅굴놋다리와 마찬가지로 어깨가 맞닿게 옆으로 서서 허리를 구부린다. 상류층의 부녀자들은 처녀, 새댁, 중년, 노인 층의 차례로 행렬 양쪽에 늘어서서 뒷소리를 부르되 공주 뒤쪽에서 따라간다. 한 번에 여러 지역에서 각기 놋다리밟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놋다리패끼리 만나게 되면 마찰없이 비껴가기도 하고 합세하여 공주를 한명만 세워 놋다리를 계속하기도 한다. 특히 성안의 놋다리패와 만나게 되면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고 줄놋다리를 마치고 난 후에는 신짝던지기, 얼얼이청청, 널뛰기 등을 하며 밤새도록 즐기다가 헤어진다.
성안놋다리
성안놋다리는 삼웃들파(지금의 안동시 삼산동 조흥은행 근처)와 관아앞파(구 안동군청)로 다시 나뉜다. 삼웃들파에서는 보름날 저녁에 노래를 잘 부르는 노인들이 먼저 놋다리 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누비면 젊은 부녀자들이 삼웃들로 모이고 놋다리를 구성하여 행로가 넓고 걷기 편한 길을 따라 성내를 두루 도는 줄놋다리를 하였다. 이때 공주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7, 8세의 소녀를 올려 놋다리를 밟게 하였다. 놋다리는 젊은 새댁들이 앞사람의 허리에 맨 노란색 명주수건을 잡고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앞사람의 옆구리에 붙이고 늘어뜨려 만든다. 놋다리 양쪽에는 머리를 틀어올린 50, 60대의 중노인들이 가로 늘어서서 우측이 앞소리를 하면 좌측이 뒷소리를 받는다. 역시 밤늦게까지 즐기다가 헤어진다. 관아 앞에 모인 여자들은 별다른 앞놀이 없이 줄놋다리를 한다. 앞사람의 허리를 안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붙이는 것은 삼웃들파와 같으나 허리에 수건을 매지 않는 것이 다르다.
금소동 놋다리
금소동의 놋다리밟기는 대보름날 밤에 부녀들이 몇 명씩 어울려서 “어화루여 놋다리야”를 부르면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돌면 점차 큰 행렬을 이루고 이렇게 밤늦게까지 1, 2동의 부녀들이 제각기 골목길을 원을 그리며 돌다가 헤어진다. 16일에 다시 이렇게 마을을 돌다가 마을 안 텃논에 모여서 꼬깨싸움을 하는데 꼬깨싸움은 소녀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끌어내리는 것이다. 금소 1, 2동은 제각기 동부 또는 서부야 이겨라를 외치며 풍물을 치고 기세를 돋우는데 늘 동부가 이겼다고 하며, 그래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무동싸움을 놋다리싸움이라고도 하였으며, 진 편은 두 마을의 경계지점인 ‘구무다리’에서 장대를 여러 개 가로 들고 서서 이긴 쪽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면 이긴 쪽은 이를 밀어젖히고 지나간다. 이긴 쪽은 다시 환호성을 지르고 풍물을 잡으며 즐기며 구무다리까지 지애밟기(줄놋다리밟기와 같은 것)를 하고는 되돌아온다.
안동 놋다리밟기 노래 가사
안동 놋다리밟기에서 불려진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느 윤에(사이에) 놋다리로(놋다리냐) 청계산에 놋다리로 공민왕의 놋다릴세 이 터전이 뉘 터이로 나라임에 옥터일세 이 기와가 뉘 기와로 나라임에 옥기왈세 기 어데서 손이 왔노 경상도로 손이 왔네 무슨 꼬깨(고개) 싸와 왔노(싸워서 왔느냐) 예계꼬깨(예개고개, 안동 입구에 있는 고개 이름) 싸와 왔네 멫대 칸을 밟아왔노 쉰대 칸을 밟아왔네 무슨 옷을 입고 왔노 철갑 옷을 입고 왔네 무슨 바질 입고 왔노 자죽 바질(명주가 섞인 바지) 입고 왔네
다른 지역의 놋다리밟기
한편, 놋다리밟기는 안동지방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하게 전승되었는데, 의성의 기와밟기(꽃게싸움)는 남북으로 편을 나눠 각각 여성들로 이루어진 풍물잡이가 마을을 한바퀴 돌며 풍물을 치면 부녀들이 모여들어 기와밟기를 한다. 양쪽이 서로 싸워서 상대편을 쓰러뜨려 승부를 내기 때문에 공주는 힘이 센 사람이 맡는 것이 보통이다. 이 외에도 영천, 상주, 영덕 등의 경북지역에서 놋다리밟기가 전승되는데 크게 원무형, 병렬형, 행렬형 등으로 나눈다. 경남 지역의 동래에서는 재밟기라 하여 소녀들이 열 지어 엎드리고 정해진 아이가 등을 밟고 지나간다. 또 거창에서는 소년들이 하는데, 동래지방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노래는 부르지 않고 앞사람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고 양 허벅지를 두 손으로 잡아서 엎드리는 점이 다르다. 맨 앞사람이 밟기를 시작하여 다시 꼬리에 붙기 때문에 계속 순환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 전라도 지역에서도 놋다리밟기가 전승되었는데, 일렬로 엎드리되 뒷사람부터 밟기를 시작하여 앞에 가서 붙는 형식이었으며, 엎드린 쪽에서 선창을 하면 밟는 이가 뒷소리를 받았다. 전라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놋다리밟기의 경우 추석날 밤에 하는 강강술래의 부수놀이로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승자 정보
안동 놋다리밟기의 기능보유자는 가창자인 김순염으로 안동 권씨 종가집 며느리이며, 1988년에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관련도서
<안동 놋다리밟기의 연구>, 金宅圭, 成炳禧 外, '韓國民俗硏究論文選 2',김택규, 성병희 공저, 일조각, 1982 <놋다리밟기>, 최상수, '한국민속대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韓國文化人類學 7>, 임재해, 韓國文化人類學會, 1985, '놋다리밟기의 유형과 풍농기원의 의미' <안동문화의 수수께끼, 놋다리밟기와 강강술래, 무엇이 같고 다른가>, 임재해, 지식산업사, 1997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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