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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 영화와 전성기의 부활

1991년 ‘영화의 해’로 시작한 1990년대 한국영화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영화 사전 심의가 위헌 판결을 받았으며, 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된 이래 성공을 거두어 다른 지방 대도시로 파급되고 있다. 정치적인 표현이나 과도한 성묘사를 문제로 등급보류를 받는 영화들이 등장했으며, 반세기동안 금지된 일본영화가 개방되기도 했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한 스크린 쿼터 축소 움직임에 반발한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이 전개되었고, 복합상영관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영화 배급 체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신인감독이 대거 등장하여 영화가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형식으로 무장하고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해외유학파와 영화동아리와 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신예들이 입문하면서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시도되고 있다. 1990년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은 사회성 짙은 영화로 평가받았다.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과 신승수 감독의 <수닭>은 해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1992년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996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 등이 특히 주목받았다. 1997에는 신세대 취향의 소재와 구성을 보여준 장윤현 감독의 <접속>과 1998년에는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선보였다. 1999년부터는 많은 제작비를 들인 블록 버스터 영화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244만 관객을 동원한 이듬해인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기록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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