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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 영화

정치적인 격변과 함께 시작된 1980년대 영화계는 이전 시대의 침체가 지속된다. 경직된 영화정책과 더불어 컬러 텔레비전으로 한국영화는 적지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대중의 기호와 동떨어진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고, 관객의 감소는 제작의 부진과 문을 닫는 극장을 속출하게 했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영화인의 노력을 통하여 1984년 영화법이 개정되어 영화의 제작 자유화가 실현되었다. 반면 영화 수입 자율화로 인한 외화의 직배와 이를 저지하려는 영화직배 저지운동이 벌어졌다. 또한 영화계의 세대교체와 이로 인한 젊은 감각의 현실비판적인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소재와 표현의 자유가 점차 넓어지는 계기가 마련된다. 국제영화제에서의 잇단 수상도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와 같은 1980년대 영화계의 상황과 제반 조건은 우리 영화가 점차 자생력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진흥공사에서 1984년 설립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인재양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199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부활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1980년대 초반에는 1970년대 활약하던 중견감독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피막>으로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을 받은 이두용 감독은 <물레야 물레야>로 칸느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주목할만한 시선에 선정되었다. 정진우 감독은 <자녀목> 등 향토색 짙은 작품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1980년대 가장 왕성한 활동으로 역작을 쏟아낸 임권택 감독은 <만다라>, <길소뜸>,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장호 감독은 <바람불어 좋은 날>에 이어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 사회성 짙은 영화를 선보였으며,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배창호 감독도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의 작품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큰 수확은 새로운 방향감각을 가진 신예감독의 대거 진출을 들 수 있다. 1983년 정지영, 엄종선, 하명중, 윤삼육 감독과 1984년 이미례, 선우완, 이황림, 유진선, 1985년 장길수, 신승수 감독이 데뷔했다. 1986년에는 곽지균, 이규형, 김유진, 최원형, 이봉원, 김행수, 지영호 감독이, 1987년에는 장선우, 유영진, 이석기, 조금환, 석도원 감독이, 1988년에는 박광수, 이명세 감독이 등장했다. 1989년에는 무명의 배용균 감독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제42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6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이 해에 강우석, 박종원, 곽재용 감독 등이 영화연출에 뛰어들었다. 이밖에도 1979년에 데뷔한 박철수 감독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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